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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30. 2021

글씨를 쓴다는 것

- 문자와 예술, 마음을 담다

글씨를 쓴다는 것      


 글씨의 소재가 되는 문자의 발생이 상형문자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것을 보면 문자의 발생은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본 세계를 표현해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 세계의 닮음이 이미지 즉 형상으로 그려져 문자로까지 발전된 것이다. 한자가 상형문자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니 한자를 예로 들면, 나무 목(木)이라는 한자를 보자. 나무의 뿌리와 가지를 형상화 하여 이 것은 나무를 표현하고 뜻하는 글자인 ‘나무 목’ 이 만들어져 사람과 사람 간 나무라는 대상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은 언어다. 이 언어를 정착시키기 위해 문자를 만든 것이고 이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시각전달기호로 전달되어 왔다. 이 시각전달기호를 바라본 예술적 시각이 바로 서예(書藝), 즉 글씨를 쓰는 예술이다. 

한국에서 캘리그라피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디자인분야에서 폭발적인 사용이 이루어졌지만 그 근간은 전통서예에서 왔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상현은 진부하게만 여겨지던 우리의 서예가 디자인과 접목되면서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는 이름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통예술로 알려져 왔던 서예가 그 속에 담긴 생명력과 원동력으로 현대 디자인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속에서 다시 태어나 새 영역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캘리그라피의 정체성을 얘기할 때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하며 그 근본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옛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다. 

글씨는 글을 쓴 솜씨인데, 글이란 것은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이 되기도 하지만 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의 부호이기도 하다. 이 부호가 문자이며 과거 서양과 동양 모두 그림문자, 상형문자로부터 그 역사가 출발한다. 서양의 경우 원시시대의 그림문자에서 그 시초를 찾으며, 동양은 중국의 갑골문이라는 상형문자로부터 포문을 연다. 

문자를 기록하는 기술로서 글씨가 발전했는데 서양의 경우 글씨를 쓰는 행위가 종교적인 차원에서 성경을 필사하거나 코란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일을 도맡아왔다. 이는 중세에 와서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체와 그림을 활용해 글씨를 쓰는 것으로 이어지며 글씨 쓰는 것을 단순히 기술만이 아닌 예술적 경지로 이끌었다고 한다.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도 필경사라는 직업군이 손 글씨의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서양은 인쇄술의 등장으로 인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마르틴 루터(Luther·1483~1546)가 성경을 대규모로 보급하여 종교개혁을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물론 인쇄술은 동양에서 먼저 발명되었다. 하지만 한자라는 문자가 가진 복잡한 구조의 한계성으로 인해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려웠다고 한다. 서양은 아마도 인쇄술 뿐 아니라 도구로서 기술이 발전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으며 이를 토대로 제2기술의 등장을 앞당겼으며 영화의 발명이라는 쾌거를 이루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예술성의 획득은 동양적 사유체계 안에서 보다 알맞다는 의견이며 무엇보다 글씨를 쓰는 기술로서 서예를 예술적 경지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동양에서 바라본 정신수양과 인격도야의 측면에서 예술을 바라본 태도다.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글씨를 쓰는 일을 단순히 정보의 기록으로만 보지 않고 자기수양이나 아름다운 글씨라는 창작의 영역으로 보아온 역사를 볼 때, 동양의 캘리그라피는 단순히 ‘손으로 쓴 글씨’라는 의미보다는 글씨를 써온 인간의 유구한 창작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서양에서보다 동양에서 ‘인격도야’의 의미로 예술을 이해한 배경을 토대로 발전해온 서예의 예술성이 가지는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설명이다. 

옛 글에 서여기인(書如基人)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인데 사람의 외모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품이나 교양, 학덕이 어떠한지가 글씨와 같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됨됨이, 그릇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례로 매국노의 대표로 알려진 이완용은 그 글씨가 아주 수려했다 한다. 하지만 그의 글씨가 아무리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춰다 한들 그 글씨가 진정한 글씨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동양에서 예술을 바라볼 때 ‘인격도야’를 중히 여긴 것을 보면 합당한 일이며 글씨를 통해 마음을 다듬고 정서를 함양해 올바른 인성을 기르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쓰는 대표적인 서체 5개를 오체라 하는데 이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다. 가장 인간의 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서체가 초서라고 알려져 있는데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해석의 방향이 열려있어서는 아닐까 한다. 이규복은 초서를 서예의 예술 경지에 있어 최고라고 표현한다.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서예의 예술성이 가장 부흥했으며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등장이 서예를 문자의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품격과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예술로서 인식시켰다. 

글씨 예술로서 한국의 캘리그라피를 이해하려면 우리나라에서 서예의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허나 우리나라의 경우 서예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정확한 시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자의 유입과 동시에 서예도 같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여 한글서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말을 기록한 것이 글이고 이 글을 멋있게 쓰는 기술이 글씨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바로 한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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