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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30. 2021

한글과 글씨

- 우리의 문자와 현대 글씨문화

한글 창제와 서예     


한글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종 28년,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되었다. 창제 시기와 창제과정이 기록된 유일한 문자로 알려져 있으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다. 훈민정음해례본에 기록된 창제과정은 세종이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문자로 사용할 수 있게 하려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중국의 한자와는 달라 뜻이 통하지 않아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글로 쓰고 나타내지 못함에 이를 딱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 이를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불편이 없이 하여라.”이처럼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선정된 <훈민정음해례본>은 이와 같은 배경 아래 창제된 한글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글의 서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중국의 오체와 달리 한글 서체는 판본체와 혼서체(混書體), 궁체 세 가지로 나뉜다. 이후 민체라 하여 서민들이 쓰던 자유분방한 필체가 등장하지만 우선 초기 한글의 서체를 중심으로 구분된 것으로 보인다. 

판본체는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서체로 판본(板本)이 목판에 인쇄한 책을 뜻하기에 한글창제 이후 만들어진 《훈민정음》,《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동국정운》등의 판본에 쓰인 글자를 기본으로 쓴 붓글씨의 글자꼴이다. 오래된 글자체라 하여 고체라고도 하고, 정음체라고 불리기도 한다. 판본체는 원필과 방필로 다시 구분되는데, 원필은 시작과 마무리가 둥근 서체이며 방필은 네모진 서체를 말한다. 판본체가 한자 전서체를 본받았다고도 보인다. 한자서체도 전서에서 예서로 변화하였듯 한글서체도 둥근 서체에서 네모난 서체로 변화하였는데 사방형 안에 좌우대칭의 균형을 이루고 구성되어있으며 각 획의 굵기가 일정하다. 

혼서체는 필사체(筆寫體)라고도 하는데 다소 경직된 느낌의 판본체를 벗어나 한자의 해서처럼 자유로움을 추구하여 변화한 서체다. 이 필사체가 정리되고 발전한 것이 궁체다. 궁체는 궁녀들에 의해 쓰인 글씨인데 정자는 해서에 가깝고, 흘림은 행서, 진흘림은 초서에 비유할 수 있다. 궁체의 서체는 그 필체가 아름답고 섬세하다. 하지만 난이도가 다소 높아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숨까지 고르며 써야 하는 서체다.      


서민문화와 민체      


우리가 접하고 있는 캘리그라피는 사실 한글 민체의 발전 형태로 볼 수 있다. 민체는 조선 후기 민중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한 서체로 이 민체의 대가로 손꼽히는 사람들 예로 든다면 효봉 여태명과 우이 신영복이라 할 수 있겠다. 신영복의 서체는 어깨동무체라고도 불리며 소주 ‘처음처럼’의 로고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만든 ‘처음처럼’의 로고는 몇 년째 바뀌지 않고 있지만 다른 소주의 로고는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서체가 얼마나 대중들에게 선호되고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민체는 자유분방하고 표현에 구애가 없으며 누구나 쓸 수 있다. 효봉 여태명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궁궐 밖의 백성들이 사용한 글씨로 사람의 삶이 녹아있다 말했다. 민체는 지역별로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며 판본체나 궁체의 단정함과는 다른 사람의 맛이 있다. 그러나 자유분방하고 격식이 없는 서체라 하지만 지나치게 마구잡이로 휘갈겨 쓰게 되면 글씨의 뿌리가 흔들린다. 글씨를 쓰는 사람의 자세가 바른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때문이다. 그리고 서양미술사에서도 피카소가 사물을 분절해서 입체적으로 그린 것이 그림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이미 그의 사실적 묘사 수준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변화였고, 에곤쉴레 역시 기괴하게 어그러진 신체를 그렸지만 그가 완벽한 데생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괴함 속에서도 질서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앞 장에서 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무리했던 내용이 일상의 기록으로서 서민문화였다. 글씨 역시 비록 그 시작은 문인들의 여기적 생활을 위한 정신수양으로 글씨에 담긴 정신이 고고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제약 아닌 제약이 있었지만, 오늘의 글씨는 그렇지 않다. 민체의 한 발전형태로서 이미지와 문자 사이를 자유분방하게 오가고 개성이 넘치며 많은 이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감상을 선물하고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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