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畵)・ 그림을 그리다
화는 삼절사상이 완성될 수 있도록 한 마지막 주제다. 삼절사상은 그림이 완전히 심미적 표현도구로 자리 잡고 난 다음인 송대에 출현한 것으로 그림이 시와 글씨의 지위로 올라서서야 삼절사상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역사가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림은 문자보다도 먼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때부터 함께 했다고 해도 무방한데, 흔히 예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 원시시대 벽화부터 거론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라스코 동굴벽화다. 이 벽화는 세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에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안에는 다양한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특히 황소 그림이 대표적인데 황소의 생김새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 벽화는 주술적이거나 제의를 위해 그려졌다는 주장들이 전반적이며 이는 고대 예술이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행위와 연관해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대표적인데 이 암각화에는 많은 수의 고래가 표현되어 있다. 이는 고래를 사냥하는 방법이나 풍요로운 수렵에 대한 기원을 하기위해 이런 모양을 새겼을 것이라는 설이다.
예술 기원설 중 한 가지로 제의 기원설이 있는데, 인간적인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함을 의식하여 제의가 발생했고,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을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려는 의식이었다. 인간에게 자연은 두려운 존재였으며 폭풍이 몰아치거나 지진이 일어나는 등 자연재해를 마주하는 것은 생명을 잃을 위험과 직결되는 공포였다. 사나운 맹수의 공격을 벗어나야 하는 것도 포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바라봄에 있어 인간 외적인 전지전능한 존재를 상상했을 것이며 제의로서 주술행위를 통해 안전함을 기원했을 것이고 이를 신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그려 기록한 것이 벽화로 남아 전해지는 것이다.
서설이 길어졌는데 이처럼 인류에게 동 ㆍ서양 예술의 기원은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되었지만 각자 다른 철학적 사고체제 아래 발전되어왔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예술은 모방의 기술이다. 플라톤은 시공을 초월한 비물체적이고 초감각적인 영원적 실재이며, 참다운 본체를 가진 존재를 이데아라고 상정하고,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은 이데아의 모방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예술활동은 이데아를 모방한 이 세계를 다시 한 번 더 모방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이러한 예술활동을 하는 시인이라는 예술가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서양은 예술을 인간 외적인 세상을 표현하는 기술,기법으로 받아들였으며 예술가는 이 세상에 대한 재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조명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사물을 바라볼 때 마음을 담아 바라보았으며 인간이 만든 예술품이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앞서 이야기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수양의 도구로서 예술 창작 행위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여 전업화가가 아니더라도 교양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예술의 분야인 시와 그림, 글씨에 능통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절 사상에 대해 풀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글과 그림’은 하나다.’라는 것이다. 이는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으로 서예와 회화의 원류가 같다는 뜻인데 서법과 화법의 밀접한 관계와 발달사를 말한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추사 김정희가 난을 치듯이 글씨를 연습하고 글씨를 쓰듯이 난초를 그린다 하였던 것처럼 그림과 글씨를 함께 수련해야 한다는 자세다. 추사는 부작란도<不作蘭圖>에서 난초를 그리는데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법으로 하였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