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아는 그 한국화
문방사우로 이해하는 동양화
동양에서는 예부터 문방사우라 하여 붓, 종이, 먹, 벼루는 문인들의 서재에 함께 하는 친구였다. 글씨와 그림을 쓰고 그리는 기본 도구가 동일했던 것이다. 추사가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동일한 도구인 붓을 사용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양화는 붓으로 그린 선(線)의 예술이다. 하여 근본적으로 필법에 있어서 글씨와 그림이 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사람들이 쉽게 글씨를 배우기 위해 붓펜을 사용한 캘리그라피를 배우기도 하지만 겉핥기식으로 체험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할 것은 붓이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에서 예술작품 창작에 사용된 도구로 붓은 생김새도 다르고 사용하는 재료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서양은 다채로운 색을 사용했다는 것이고 동양은 문방사우의 세 번째 친구인 먹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은 그림에 색을 사용했지만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문인화는 사람의 정신수양을 위한 그림으로 먹을 주로 사용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글씨를 쓸 때도 심신수련과 인격도야의 방법으로 예술활동을 했으며 마음을 담는 것이었기 때문에 눈에 드러난 형태에 구속되지 않았고 색채에도 집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색이 배제된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 선호되었다.
먹색은 검은색이다. 색으로서 보면 검은색은 빛이 사라지고 모든 색이 섞인 결과물로 물리학적으로 보면 가시광선 아래 식별되지 않는 색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먹, 즉 검은색은 색이 없는 것이 아니다.
먹의 색이라 하여 동양화법에는 삼묵법이 있다. 농묵, 중묵, 담묵이라 하여 진한 먹부터 맑은 먹까지 표현하는 방법인데, 한 붓에 이 세 가지 먹색을 다 담아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미술학원에 가면 소묘를 처음 배울 때 연필로 명암의 단계 표현을 시작하는 것을 봐도 검은색을 효율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푸른 대나무도 노란 국화도, 붉은 모란이나 연꽃 등 다양한 대상을 모두 수묵으로 표현한 것은 외향에 치중하지 않고 사물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동양의 정신이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가장 대조적인 기법 중 한 가지는 원근법에 대한 접근인데 서양의 경우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고 빛과 그림자로 사물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명암을 통해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하고 원근법을 사용해 공간감을 나타냈다. 서양화에서는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투시원근법이 있었지만 동양에는 삼원법이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 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마음에 담겨진 그대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고안된 화법으로 풍경을 바라본 시점에 따라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이는 한 화폭에 여러 시점이 사용되어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서양의 것보다 관념적이고 자연을 복합적이고 다원적 각도에서 관조했다는 동양의 사상이 점철된 화법이다.
또한 동양화에는 여백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문방사우 두 번째 친구 종이가 맡은 역할이기도 하다. 여백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배경이 되는 종이 그대로 남겨두는 방법인데, 이는 그리지 않았거나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려진 형상보다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오주석은 이러한 여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꼽았다. 또한 그는 여백을 무한히 크고 넓어서 그려낼 수 없는 그 무엇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화폭 안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으며 화가의 혼이 떠돌고 있다고 표현했다. 여백에 마저 예술가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또한 동양화 기법 중 유백법(留白法)이라 하여 흰색 눈을 그린 방법인데 서양화처럼 흰색을 칠해 눈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눈이 쌓인 부분을 비워두고 다른 부분을 그려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더욱이 격조 높은 기법으로 보았으며 자연을 받아들인 옛 사람들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덧붙여 종이 즉 화선지는 물을 어느 정도 머금을 수 있는지에 따라 발묵의 효과가 달리 나타난다. 종이와 먹의 저항으로 그림이 그려지며, 몇 겹의 종이가 겹쳐져 있는지에 따라 종이의 두께가 결정되고 이 역시 먹의 발묵과 연관된다. 일반적으로 매끈한 면을 앞면이라 하여 이 면에 작업을 하지만 작가의 의도에 따라 뒷면에 작업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어떤 종이를 어떤 기법으로 활용할지는 수많은 작업을 한 뒤의 숙련함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도구의 마지막 벼루은 먹물을 머금는 도구다. 요즘에는 먹을 간다는 행위가 생략되고 편의를 위해 먹물을 구입해 사용하지만 문인들에게 벼루는 먹을 가는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인격수양에 중요한 순간으로 쳤다. 먹을 간다는 것은 먹과 벼루의 대화라 할 수 있는데, 먹을 벼루에 힘을 줘 빠른 속도로 갈아서도 안 되고 삐딱하게 갈아서도 안 된다. 바른 자세로 올곧은 성품을 가다듬어 먹과 벼루를 맞붙여 둥근 원을 그리며 먹을 갈아 그 고고한 심연의 시간을 가져야 고운 빛깔의 먹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벼루는 네 친구 중 가장 오래도록 문인의 곁을 지키는 도구로 붓이 가장 빨리 닳고 그 다음이 먹이며 벼루가 마지막이다. 가장 고요한 물건이다. 하지만 공자가 논어에서 고요하게 살아가는 자가 장수한다고 하였으니 사물에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