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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Sep 22. 2022

내향적인 인간의 핀란드인 친구 만들기

내향적인 사람이 더 내향적인 집단과 문화를 만났을 때

2017.11.15


한국에서 사는 동안 이사를 딱 두 번 했다. 마지막으로 한 두 번째 이사 이후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핀란드를 떠나는 순간까지 한 동네에 살았다. 같은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꽤 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여태까진 나를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핀란드에 와서 앵무새처럼 항상 나를 소개해야 했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조금은 쿨한 아시안'으로 나를 포장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귀찮았다. 추운 이 땅에서 수업이 끝나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기 바빴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학교 수업에서 그룹 프로젝트를 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설사 그룹 프로젝트를 같이 해도 나는 부표처럼 떠다니는 존재였지만 핀란드 친구들은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미 지지기반이 있는 그들이 굳이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쓰면서까지 나와 친해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핀란드 겨울은 지독하다. 추위보다 어두움이 지독하게 인간의 마음까지 파고든다. 해를 보지 않는 인간은 식물처럼 시들시들해진다. 몸을 움직이는 일도 귀찮고 그래서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함 때문에 이불 안을 파고들게 되고, 그렇다 보면 핀란드의 방 한 칸, 이불속 무인도에서 표류하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2017년 겨울, 성탄절 즈음. 모두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명절에 홀로 남은 외국인은 서럽고 외롭다.


이번 겨울은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침대에서 나와 움직이기로 했다. 여러 전공에게 열려있는 예술대 교양 수업과 핀란드어 수업을 등록했다. 핀란드인이 절반이 넘는 강의실은 억지로 토론을 진행하지 않는 이상 조용했다. 토론이 끝나고 쉬는 시간엔 적막이 흘렀다. 그들은 토론 수업이 끝나면 침묵하거나 자리를 떴다. 무리 지어 다니는 이들도 없었다. 토론 도중에는 매우 심각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학부 1학년생도 들을 수 있는 꽤 재미있는 예술 교양 수업이었다. 날카로운 100분 토론을 하는 수업이 아니었다. 나만 은은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로선 메마른 웃음을 간신히 지어내는 그들이 신기했다.


그 수업은 오후 4시 반에 시작해서 6시에 끝났다. 당시 나는 수업이 있는 캠퍼스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저녁까지 운영하는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미로처럼 통로가 곳곳으로 연결되는 캠퍼스를 구비구비 걸어 나와 항상 같은 건물로 향했다. 이와 같은 길을 걷는 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나와 그룹 토론에서 오랜 이야기를 나눈 핀란드 남자애였다. 순박한 눈에 커다란 안경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키는 허리를 두 번 접어 앉아야 할 만큼 컸다. 그도 매번 수업이 끝나면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항상 얘도 혼밥, 나도 혼밥이었다. 갑자기 나는 말을 걸기로 결심하였다.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에선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아는 척하기가 귀찮아서 그 사람 눈에 띄기 전에 다른 길로 뒤돌아 가는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걸 보면 12월 중일 것이다. 날씨도 내 마음도 가장 어둡고 추웠을 때. 수업이 끝날 무렵은 이때였다.


그런 내가 겨우 그룹 토론에서 말 한 번 섞은 친구에게 다가가 같이 식사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핀란드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황한 기색을 표면적으로 내지 않았다. 핀란드인들에게 높이 사는 점은 상대방의 제안, 제스처, 대화에 무심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배려가 깃든 무심함이다. 상대방에게 적당한 공간을 내주는 것이다.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편안해지면 손을 뻗어볼게, 정도랄까? 그렇기에 나는 타인이라는 넓은 범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를 정의하는 상위 카테고리인 국적과 인종을 먼저 내세우지 않아도 됐다. 나를 아시안으로서, 여성으로서 유별나게 대접해주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나와 대화를 나눌 뿐이다. 국적을 대놓고 묻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내가 어디서 살았는지, 무엇을 하다 온 것인지, 사적인 배경을 먼저 묻지 않았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이성적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 순수하게 대화를 받아준다는 것, 나는 그 지점에 홀로 감동했다.

그 친구와 다음 수업이 끝나고도 식사를 같이 했다. 사적인 연락을 따로 주고받지 않았다. 서로 연락처 하나 물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저 우린 우연하게 공유된 시간을 함께 하는 데 의의를 둔다. 친구를 갈망하다가도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나였다. 갈급하다고 먹잇감이라고 상정한 친구를 덥석 잡아먹을 순 없다. 적당한 거리와 그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존중을 편애한다.  

같은 토론 수업에서 또 다른 핀란드 친구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토론 수업에 지나지 않을 내용이라도 나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랬더니 그녀도 흥미로운 눈치다. 바이오테크놀로지 전공에 액팅 스쿨까지 졸업했다는 그녀의 눈빛에서 희로애락이 번뜩였다. 사소한 감정들이 얼굴에 보였다. 핀란드인 스테레오 타입에 철저히 어긋나는 인간상이었다. 여러 핀란드인을 만나다 보면 나도 그들을 핀란드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습관은 무섭다. 한국인과 핀란드인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편이 쉬웠다. 서로의 스테레오 타입에 꼭 맞는 역할을 발견할 때마다 '역시'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 순간은 한국에서 개인주의자로 살았다고 자부한 내 입에서 솔직한 감정 표현이 스스럼없이 나올 때였다. 그들은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더 놀랐다. 나도 모르게 사적인 이야기를 양념으로 대화 군데군데 치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핀란드 기준에서 나는 개인주의자도, 딱히 내향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 핀란드에 오자 나는 사람과 부대끼기를 좋아하며 언제나 음식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하는 한국인이었다.

문유석 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 이 책을 읽으며 박수를 치고 공감했던 나.


뜻하지 않은 만남은 피곤하다. 이성은 당연하고 동성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다음 연결 지점을 서로가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열린 자세로 뜻하지 않은 인연과의 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나인 것을. 내가 사냥을 나간 들, 나는 여전히 초식동물일 것이다. 거리를 둘 것이고 내 방식대로 그들과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친구가 생긴 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갈급하지만 유난스럽지 않게, 외롭지만 절망적이지 않게, 내 꼴 대로 사람을 만나면 된다.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당시에 그룹 워크를 같이  친구는 나에게 '외향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향적' 사람이라고 항변했다. 그녀는 '정말?'이라며 되물었다. 나는  번도  자신이 외향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하고 해야만 하는 대화는 언제나 불편하다. 가깝지 않은 사이라면 4 이상 모이는 모임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가오나시처럼 옅은 미소만 짓다가 온다. 그러므로 완벽히 모르는 사람이 단체로 모인 곳에서는 앉아만 있어도 피곤하다. 그들이 한꺼번에 보여주는 반응과  개인의 특성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말에 모두가 집중하면 부끄럽다. '혹시라도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시작으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하긴 힘들다. 약속이 많은 주엔 반드시  혼자 쉬는 날을 중간에 만든다.  혼자 무언가 사부작사부작할  가장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무엇보다도 MBTI 정식 검사(인터넷 약식 검사 아님 주의)에서  번이나 내향적인 인간으로 판명되었다. 이하, 한국에서  내향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내향성' 증명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의 내향 지표는 북유럽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아예 인사도 트지 않으며 발이 없는 유령처럼 지내는 핀란드인 룸메이트 세 명을 연이어 겪고 나서 깨달았다. 그들은 그 흔한 '하와유? 아임파인땡큐' 조차 나누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방으로 사라졌다. 아마 내가 첫인사를 건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을 것이다. 나의 내향성은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핀란드에서 외향적인 사람을  적이 손에 꼽는다. 그리고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내향적인 사람들 특유의 긴장감이 엿보였다. 편안하지 않은 미소, 여유라곤 찾아볼  없는 뻣뻣한 표현, 적절한 타이밍에 대화를 끊지 못하는 센스 부족, 그로 인해 점점 짜게 식어만 가는 분위기. 나뿐만 아니라 핀란드인도 함께  모든 것들을 발산하고 있었다. 오히려 서로가 말을 하지 않는 순간이 가장 편안했다. 이상하리 만큼 침묵에 대한 임계치가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선 이런 오해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출처:https://twitter.com/inssahalrae/status/1300276709460041728


'내향적'이라는 판단을 내릴 때 기준은 나라 또는 문화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만약 내가 외향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미국에 갔더라면? 아마 그곳은 나에게 스몰토크 지옥이었을 것이다. 말하지 않고 버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지옥 말이다. 끊임없이 말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어둡다'는 오명을 받아야 하는 지옥. 다행히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 나는 거짓 없이 내향적인 인간으로 살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조금 어색한 대화를 나눠도 딱히 튀지 않았다. 내향적인 집단에서 나의 행동 양식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오히려 가끔 외향적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핀란드에서 인간관계도 일도 학업도 연애도,  어떤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자주 겪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철을 보내고 나니 말이 많아졌다. 내가 먼저 말을 떼지 않으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없는 환경에서 무력감과 동시에 이상한 용기를 얻었다. ' 마디 한다고 죽지 않아!  어떤 식으로 판단해도 좋아!'라고 말해야 할까. 이제 한국에서도 나를 '외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회적인 가면을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징표일 수도 있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으며 감성적으로 예민한 나는 신화 속 이야기가 되었다. 가끔 그 신화의 한 챕터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예전 일기장을 꺼내본다. 그 모습이 낯설어질수록 내가 지나온 시간을 가늠해본다. 몇 년 후에 이 글도 낯설어지는 순간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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