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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Oct 05. 2022

연애의 기적은 파티에서 일어난다

인턴십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의 홈파티, 운명의 챕터가 시작됐다

졸업한 직후 핀란드의 이민자를 위한 IT 교육을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인턴십을 했다. 회사는 핀란드의 소규모 스타트업이 모여있는 빌딩의 지하에 있었다. 미국 시트콤에 나오는 카페와 같은 곳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핀란드도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이다) 크고 작은 소파에 삼삼오오 동료들이 앉아있었다.  


내 일상은 이렇게 시작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사우디아라비아 친구가 살사 춤 동작을 연습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영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인지 그는 스몰톡의 귀재였다. 커뮤니티팀 매니저 스페인 친구는 여전히 내 이름의 마지막 음절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내 이름을 크게 부른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친구가 보인다. 그는 사람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구석에 앉아있곤 했다. 그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나타난 베트남 친구는 우리가 같이 갔던 베트남 레스토랑에 또 가자며 말을 건다.


나의 인턴십 생활은 비빔밥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동료와 친구와 친구 아닌 사이 경계를 넘나 들며 삶의 한 부분을 공유했다. 인종과 문화 그리고 일이 모두 섞인 현장이었다. 그날도 일과 일이 아닌 어딘가 사이에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슬랙의 한 채널에 피드가 올라왔다.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광장에서 하는 기후 변화 시위 현장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피드를 올린 사람은 캘리포니아에서 와서 핀란드인 남편과 결혼한 미국인 에스메였다. 그녀는 나의 영어 원어민 공포증 때문에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웃음소리가 모두에게 들릴 만큼 밝았다. 미국 서부에서 온 밝고 쿨한 영어 원어민. 그 사실이 부담스러워서 한 번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근데 그날따라 시위 현장이 궁금했다. 다행히 일본인 친구가 함께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세 명이면 어색하지 않겠지 싶어서 나도 같이 가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시위(?) 현장. 시위라고 하기엔 귀엽고 평화로웠다.
미래의 그레타 툰베리들. 우리나라도 어린 친구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으련만. (일단 나부터 관심을 갖자...)


그녀는 내 생각대로 쿨하고 밝았다. 다만 그녀가 다양한 문화에 노출된 사람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의 부모 중 한 명은 멕시코계 미국인이었고 외가의 뿌리는 홍콩계였다. 그리고 그녀는 핀란드인 남편을 남미 여행 중에 만났다. 여러 문화에 열려있었고 관심이 많았다. 그날 우리는 사무실부터 시위 현장까지 약 2킬로 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나를 홈파티에 초대했다. 겉으로는 '쏘쿨!' 이랬지만 처음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집은 헬싱키에서 북쪽에 위치한 공항 근처였다. 에스포에 있는 우리 집에서 그녀의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서울에서 한 시간은 길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헬싱키에서 한 시간이면 지구에서 화성까지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홈파티 날은 경량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하고 오후 5시면 꽤 어두운 10월 중순이었다. 일부러 반드시 가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대망의 홈파티 날. 휴일에 언제나 그랬듯이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갑자기 왓츠앱 알람이 울렸다.


"오늘 파티에 올 거지? 생각보다 친구들이 많이 못 온다고 하네. 오늘 꼭 와줬으면 좋겠어!"


아니 내가 이런 멘트에 마음이 약한 건 어떻게 알고. 누워서 구글맵을 켰다. 씻고 준비하는데 한 시간 그리고 두 번 갈아타고 가는데 약 한 시간 이상. 헬싱키 중앙역까지 가서 거기서 기차를 타고 역에서 제법 걸어야 했다. 밖을 보니 이미 어둑어둑했다. 멋은 부리고 싶고 춥기는 할 테고 롱코트를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절절한 메시지는 이 모든 귀찮음을 이기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그럼 꼭 갈게! 근데 꽤 늦게 도착할 것 같아'라고 답장했다.


그 무렵 찍은 사진. 사무실 가는 길이 무척 예뻤다.


내가 이미 늦은 시간에 간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때 즈음이면 초대받은 핀란드인은 이미 취해있을 것이고 그들과 이야기 하기 한결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좁은 공간에 문 앞까지 사람들이 맥주를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이미 몇 잔을 걸친 핀란드인과 여러 외국인이 보였다. 이제 나에게 남은 미션은 취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향적인 인간이 파티에 빠르게 흡수되기 위한 전략은 술 밖에 없었다.


에스메는 남편을 소개했다. 이미 취한 듯한 그녀의 남편은 특별한 술 한 잔을 주겠다며 날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부엌으로 가자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한 남자와 누가 보아도 남미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그 둘을 나에게 소개했다.


"여긴 콜롬비아에서 온 마테오, 호르헤야"

 

그녀의 남편은 콜롬비아에서 몇 년 살았다고 했다. 핀란드에서 남미 문화 행사에 갔다가 마테오와 호르헤를 만났다고 했다. 그는 호르헤가 콜롬비아에서 가져온 술을 건넸다. 40도 이상 독주였다. 나는 제정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주 한 샷을 꿀꺽 넘겨버렸다. 호르헤는 박수를 치며 바로 한 잔을 더 건네려고 했다. 옆에서 나지막이 웃고 있는 청년은 바로 마테오였다.


부엌에 들어설 때부터, 소개를 받을 때부터, 그의 얼굴이 너무 익숙했다. 조금 목이 늘어난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 헝클어진 곱슬머리, 덥수룩한 수염, 사슴 같은 눈. 분명히 학교나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간 얼굴이었다. 아니면 내가 낯익은 얼굴이라고 믿고 싶은 걸까? 곱슬머리에 사슴 같이 큰 눈, 해사한 미소. 그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환영에 가까웠다.


나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일단 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거실 소파에 같은 인턴을 하는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일단 술도 마셨겠다, 말을 먼저 걸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일과 단체에 대한 욕을 하는  만국 공통이다. 오스트리아 친구와 조직이 두서없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신나게 욕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지루할 때쯤 곱슬머리의 마테오가 소파 끄트머리에 앉았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기로 했다. 자칫하면 오글거리는 한국 드라마의 대사가  수도 있었다.


"나 너 어디서 본 것 같아, 혹시 알토대학교 나왔어?"


그는 내 질문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대답했다.


"응 맞아 나는 수학과 나왔어. 난 너 알아, 너 유니스포츠에 다니잖아"


유니스포츠는 핀란드의 학생이면 저렴한 가격에 다닐 수 있는 짐이다. 여러 군데에 있는데 내가 다니는 유니스포츠는 알토대학교 오따니에미 캠퍼스에 있는 곳이었다. 내가 놀란 토끼눈이 되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 유니스포츠에서 자주 봤어. 혹시 보라색 레깅스 입지 않아? 하하"


가을의 어느 날 오따니에미 캠퍼스. 유니스포츠 가는 길은 아니다.


검은색 레깅스가 지루해서 골랐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눈에 튀었나 보다. 그 역시 오따니에미에 있는 유니스포츠에 다닌다고 했다. 다행히도 내가 본 환영은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고 했다. 춤추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며 시내에 춤을 배우러 다닌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남미인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살사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배운다는 춤은 현대무용이었다.


현대무용을 좋아하고 수학과를 졸업한 콜롬비아 사람. 특이한 프로필이었다. 조용하고 수줍어 보였지만 뻣뻣하진 않았다. 그의 웃음은 핀란드에서 본 적 없는 따뜻한 햇살이었다. 나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는 청년도 아닌 소년 같았다. 그가 큰 눈을 꿈뻑일 때마다 내가 가보지 않은 콜롬비아를 상상했다. 햇살을 충만히 받고 자라면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목이 늘어난 줄무늬 티셔츠 마저 17세 소년의 옷장 어딘가에 있을 법했다.


내가 그의 눈에서 헤엄치고 있을 무렵 파티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갑자기 술에 취한 무리가 라틴음악을 틀었다. 에스메의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은 웃통을 벗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조용한 미소를 짓던 마테오일어났다. 그는 현대무용이 아니라 라틴댄스를 추었다. 나도 그를 따라 어설프게  동작을 따라 했다.


갑작스레 다른 사람들도 서로 손을 맞잡고 라틴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 마테오는 그렇지 않았다. 소년 마테오는 나의 팔목을 손가락  개로 간신히 들어 올려줄 뿐이었다. 그는 라틴댄스의 스텝을 충실히 가르쳐줬다. 신나는    이후에도 그는 알쏭달쏭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치우침 없이 보여줄  같은 평온한 미소였다.


집에  때가 되었다. 호르헤와 마테오와 같이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호르헤는 중앙역 전에 다른 기차역에서 내렸다. 우리 둘은 중앙역에 내려서 서로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테오의 버스가 오는 시간을 세어보았다. 버스가 도착하 5 , 나는 용기를 냈다. 용기라고 하기엔 캐주얼한 말이었다. 페이스북 친구 추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페이스북을 알려주며 자신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버스가 왔다. 헤어질 인사를 할 찰나였다. 나는 대뜸 포옹을 해버렸다. 만나서 반갑다고 꼭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겼다. 핀란드에 온 지 3년 차. 어두움도 외로움도 나의 용기로 뚫어버리고 싶을 때였다. 틴더라는 가상세계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였다. 장난 같은 말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그럴 바엔 혼자가 되리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그때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소년의 미소를 가진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아니다. 내가 좁고 낡은 부엌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시간과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만약 기후 변화 시위에 가지 않았더라면? 만약 에스메와 내가 통하는 지점을 찾지 못했다면? 에스메가 절절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나의 귀차니즘이 극도로 발동했다면? 가능한 장애물을 손으로 꼽아보았다.


집에서 오따니에미역까지 1.5킬로미터를 걸어서 오따니에미역에서 중앙역까지 기차를 타고 기차역에서 내려서 그녀의 집까지 걸어간 거리를 생각했다. 3년을 구르고 치이고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장애와 시간과 거리를 거쳐 도착한 곳은 '운명'이라는 챕터였다. 연애에  필요한 거창한 말이었다. 나의 핀란드도 그때부터 달라졌다. 핀란드 생활의 2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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