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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Oct 28. 2022

우리의 주제가는 이별곡이었다

연애의 기적은 파티에서 일어난다(2) 

에스메의 홈파티 직후 나는 3박 4일 동안 네덜란드로, 테오는 일본으로 약 2주 동안 여행을 떠났다. 우연히 둘 다 여행 가는 날짜가 비슷했다. 내가 헬싱키로 돌아오기 직전에 그에게 여행을 잘하고 있냐며 문자가 왔다. 그는 자신이 일본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줬다. 앞으로 사진을 꾸준히 찍고 싶다며, 일본 여행을 앞두고 카메라를 샀다고 말했다. 그는 나만큼 예술이나 창작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연인이 되었다. 그와 연인이 되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도 나도 마음의 어느 곳 하나를 속일 수 없었다. 서로가 투명하게 보였다. 그의 눈 속에 내가 있고 나의 눈 속에 그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눈 속에 빠짐없이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 시티센터, 소코스 백화점 앞


그는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나 숫자와 철학을 사랑해서 수학과를 갔다.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둘째 막내로 태어나 언어와 인간사에 관심이 많아 영문학과를 갔다. 테오는 부모님의 지대한 관심 밖으로 벗어나고 싶었고 자신과 달리 모두가 시끌벅적한 콜롬비아를 지독히 떠나고 싶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설계한 관문을 잘 통과한 모범생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저 너머 세계의 자유로움을 동경했다. 우리 모두 2016년에 드디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꿈꾸는 이상이 같았다. 둘 다 자유로움에 목말라 있었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없는 헬싱키에서 나갈 일 마저 사라졌다. 그나마 가던 시티센터에도 갈 수 없었다. 지천에 널린 숲과 바다가 자연스레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나무와 바다밖에 없는 곳을 산책했다. 그럴 때 놀잇감은 카메라와 음악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나와 풍경을 여기저기 담았다. 나는 듣고 싶은 음악을 틀었다.


오따니에미 숲 속


어느 날은 서로의 고향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자기네 집 근처에서 찍은 영상이 있다고 보여줬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 이웃 주민이 노래를 커버해서 찍은 영상이었다. 노래는 멕시코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인 나탈리아 라푸르카데(Natalia Lafourcade)의 '¿Para qué sufrir?'였다. 영상에서는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가 햇살과 푸르른 녹음이 가득한 곳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가 아름다워서 테오에게 이 노래를 외워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집에서 슈퍼마켓으로 가는 1.2킬로미터의 거리를 같이 걸을 때마다 이 노래를 외우며 불렀다. 숲과 바다로 산책을 갈 때에도 뜬금없이 이 노래를 불렀다. 내가 이상한 발음으로 스페인어를 말할 때마다 그가 고쳐줬다. 그는 정작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항상 이 노래를 부르자 그도 어느새 가사를 모두 따라 부르게 되었다. 


내가 그 노래의 가사를 모두 외울 수 있게 되었을 때 핀란드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핀란드에 남고 싶을 땐 곁에 날 잡아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떠나야 될 때가 되자 나를 붙잡는 사람이 생겼다. 우리는 어떤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말을 맺지도 않았다. 그다음 해 여름쯤에는 코로나가 없어지고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헬싱키를 떠났다. 


Didrichsen Art Museum 앞에서. 2월쯤, 얼어붙은 바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했다. 이력서를 준비하고 취업을 하고 지옥철을 타고 때로 야근을 하고 핀란드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동안 테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의 삶은 똑같았다. 여전히 숲과 바다로 산책을 나갔으며 우리가 같이 갔던 슈퍼마켓과 카페와 미술관으로 혼자 갔다. 그 자리에 나만 사라졌다. 


나는 그에게 최근에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없기 때문이라고. 더 이상 사진을 예쁘게 찍을 이유가 사라졌다고. 그가 슬픈 표정을 지을 새도 없이 나는 농담으로 그 순간을 가볍게 넘겼다. 그에게 서운함이 쌓여서 혹은 서울에 사는 삶이 고되어서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은 얼어붙었다. 그와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내 마음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서로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여름이 오기 전에 나는 그와 헤어졌다. 


'¿Para qué sufrir?'를 한참 외우고 다닐 때, 어릴 때부터 멕시코에서 살았던 한국인 친구가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를 따라 이 노래를 외우고 있다고 신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 가수 굉장히 유명하지, 근데 그 노래 꽤 슬픈데. 그 가수가 이혼하고 쓴 노래인 걸로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런 노래를 왜 콜롬비아 커플은 그렇게 밝은 얼굴로 예쁘게 불렀을까. 연애에 달콤하게 빠진 나한테는 행복한 얼굴을 한 커플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스페인어를 잘못 발음할 때마다 그가 고쳐주는 게 좋아서, 나의 이상한 스페인어 발음을 귀여워해 주어서, 나는 그 노래의 가사를 보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도 종종 이 노래를 들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가사는 이러했다. (구글 번역기로 돌린 내용이라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Why suffer if you don't have to?

Why be cold if the world makes us feel at home?

Why let everything die?

If that between you and me made us see everything so beautiful

I never imagined that I would get married without papers

I never imagined that after a while I would end up without walls

The house that we saw born, the fish that said goodbye

The nights full of eating, recording those songs until dawn

Why suffer if you don't have to?

Why throw away our letters and photographs?

Why forget that before all our kisses?

We were like brothers, we were like friends with benefits

I never imagined that I would get married without papers

I never knew how to make you happier, I swear

You had to look for yourself, I had to save myself

We had to let it be and I invent this song in the sunset

(중략)


이 가사에 우리의 헤어짐에 대한 답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삶을 살고 나를 지켜야 했고(I had to save my self), 그 또한 나 없이도 자신을 찾아야만(You had to look for yourself) 했다. 우리는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서로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고통받기(suffer)를 선택했다.


연애는 멀리서 보는 예쁜 풍경과 같다


연애를 하면 끝은 두 가지이다. 우리는 영원히 같이 살게 되었답니다 혹은 우리는 영원히 모르는 타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애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자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상대방을 더 이상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헤어짐이 오는 것. 가사가 말하듯 전 애인들의 사진과 편지를 찢어버려도(Why throw away our letters and photographs?) 그 사실을 잊고 다시 고통 혹은 행복을 선택하는 게임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연애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나도 그도 서로의 자유로움을 찾아 떠난 것이다. 그는 핀란드에 남는 것이, 나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와 핀란드 사이를 지탱하던 마지막 끈이 끊어졌다. 핀란드와 나 사이를 풀어내는 이 글에서 그와 헤어지는 장면이 마지막 에피소드가 될 수밖에 없다. 나에겐 그 땅이 곧 사람이고 애정이었다. 




https://youtu.be/HHBY5h7hv4I


이 노래를 처음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원곡보다 이 커버를 더 좋아한다. 염세적인 노래를 이렇게 해맑고 귀엽게 부르다니! 사랑 노래인 줄 알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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