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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Oct 28. 2022

이것은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굿바이 핀란드, 웰컴 한국

처음엔 핀란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국 미디어가 찬양하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고 싶은 심보였다. 나는 헬조선을 떠나는 마지막 열차를 탄 세대이다. 내가 한국을 떠날 무렵에 헬조선은 당시 2-30대의 패배감을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2015년에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장강명의 소설 ' 한국이 싫어서'가 출간되기도 했다. 헬조선에 짓눌린 이들을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달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청춘을 위로한답시고 힐링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나 연사를 여는 어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등지고 헬조선을 떠나 자유를 찾아갔다. 행복 지수 전 세계 1위, 큰 정부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복지국가라니, 석사 공부를 핑계로 저 너머 미래까지 계획했다. 4년 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더 안정적인 미래를 한국에서 꿈꾸게 되었다는 건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다.


그래서 못된 심보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핀란드를 말하고 싶었다. 뉴스에 나오는 지표나 객관적인 통계가 말하는 핀란드가 아니라 30대 여성이자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아서 모험을 가장한 실수를 하고 마는 사람이 말하는 그 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말하지 않고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이야기에서든 나의 내면을 들춰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친구들과 함께한 뚜르꾸 여행에서. 다가올 앞날을 모르고 웃고 있는 나.


20대에서 30대로, 주류에서 비주류 인종으로, 대한민국 국민에서 외국인으로, 주류 세계인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유럽 친구들은 여전히 유럽을 주류 세계로 생각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언어가 중요한 사람에서 까막눈으로, 혼자 있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람에서 외로움에 눈이 먼 사람으로, 자아에 파묻혀 살던 사람에서 내가 초라해지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핀란드에서 나는 여러 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 편하게 쓰고 다닌 가면은 쓸모없었다. 비주류 인종이자 비주류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자 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부여받자 나의 내면에 여러 개의 문이 열렸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길이 보였다.


나의 외로움을 말할 수 있게 되자, 타인이 외로움에 중독되어서 하는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자존심을 내세울 수 없게 되자, 초라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언어를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헬싱키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상상했던 미래는 그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석사 졸업 이후 꿈꿨던 세계에 입성했으나 약 일 년 만에 그 세계에 대한 열망을 닫고 나왔다. 마냥 응석받이 막내딸로 살 줄 알았지만 나보다 더 걱정해야 될 가족이 생겼다. 한국에 와서 두 살이나 덤으로 얻었다. 그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자주 지쳐버린다. 6년 전의 내가 꿈꾼 모습과 나는 이미 너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종종 핀란드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할 때 나는 이제야 핀란드의 때를 다 벗었다고 말한다. 유행에 맞는 옷으로 옷장을 채우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화장품도 늘어났다. 거울 속 내 모습에서 못난 점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슈퍼마켓보다 커피숍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길거리에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로 그럴듯하게 섞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시 서울 사람이 되었다. 핀란드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서울에서 그 땅을 그리워할 틈도 없이 살았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는 것, 한국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증표일 것이다.   


나의 마지막 집이었던 오따니에미의 기숙사 바로 앞 바다


최근에 가족과 함께 양평으로 놀러 갔다. 고작 양평으로 왔을 뿐인데 미세먼지가 가득한 서울과 공기가 달랐다. 산 밑에 자리 잡은 한옥집 마당에서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 말을 내뱉었다.


"아, 핀란드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물드는 어두움을 바라보고 냉기가 가득한 바람을 한 숨 들이켜자 그제야 핀란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양평에 아득한 마음으로 바라봤던 오따니에미의 바다가 출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다시 내쉬었다.


이제야 나는 핀란드를 추억할 수 있는 걸까. 안도의 한숨이었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한 미련이 남은 한숨도 때때로 그리워해도 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도 사라졌다. 4년 동안 사서 한 고생과 외로움이 허무하게 잠잠해졌다. 핀란드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로 내가 채워지는 때가 오겠지. 그때 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겠지. 서울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서울 사람이 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질 것이야. 그래도 외딴 시골의 하늘만 보아도 추억할 거리가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핀란드에 있었던 4년 동안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자면 끝이 없다.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핀란드가 할 말이 많게 만드는가? 이렇게 내 안의 말들을 풀어내고 나를 비우고 나면 다시 다른 이야기를 채울 수 있다. 이로써 나는 한국에서 새로운 삶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야기 사냥꾼인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 다시 일어나길, 다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고마웠다, 나의 청춘이여, 춥고 어두운 핀란드여, 나를 울고 웃게 해 준 낯선 이들이여, 떡볶이를 같이 먹어준 그리운 친구들이여, 말없이 평화로운 미소를 보내준 어떤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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