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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Oct 21. 2021

펜을 꺾고 말지언정

진짜 문인은 등단매매를 하지 않는다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로부터 낙방하고 한동안 문예공모전을 찾지 않고 생계에 집중했다.

마땅히 그래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전업 글쟁이도 아니었고, 엄격한 기준에서 보자면 작가지망생도 아니었다.

(조정래 선생은 소설 100권, 수필 100권, 시 100편, 고전 100편을 읽어야 작가 지망생이 될 수 있다고 하셨더랬다.)


근본적으로 나의 정체성은 商이라는 글자에 있었다.

글을 쓰는 무역 비즈니스맨이 비전이라면, 일단 비즈니스맨으로 입신해야하지 않겠는가.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 것도 나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문필에 대한 뜻을 놓은 적은 없었다.

자아는 상인이었지만 출신은 문학도이기도했다.

항상 글로써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고, 돌이켜 보건대 빨리 성취하고자 했던 마음이 바로 그 계간지 신인상에 공모를 하게 된 실책을 부른 것 같다.

수필과 시 두 부문에 공모했다.


발표날 오전, 내 출품작이 두 응모 부문 모두에서 당선이 유력하다고 문자를 받았다.

이윽고 주최 측과의 통화로 이어졌다.


"등단에 의향이 있으신지요"


당연했다.

그리고, 솔직히 기분도 좋았다.

문예상은 떨어지려고 응모하는 것이 아니니까.

게다가 2관왕(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은 예상 못한 쾌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나는 다소 격한 두 번째 통화 후,


[수상을 받지 않겠으며, 작품 발표도 하지 않겠다. 응모작은 폐기하라]라고 편집인 겸 문단의 회장이라는 자에게 문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프닝으로 끝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다.


첫 통화를 할 때 그들은 물었다.


"혹시 등단비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신가요?"


출판될 계간지 수십 권과 상패 및 작가 헌장 제작비에, 감상평을 써줄 심사위원에 대한 원고료 명목으로 수상 받을 장르당 기십만원의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부문에 당선될 나는 100여 만원의 돈을 내야 한단다.

등단비를 지불치 않으면, 당선자 목록에도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 문단의 명성과 당선 이력을 사용하여 시인이나 수필가로 행세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란다.


그들은 스스로를 수백 명의 문호들이 교류하는 문단으로 소개했다.


나는 액수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Business를 하는 나로서는 Product를 제공한 이가 되려 Cost까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의아했고,

정상적인 문단이고 등단의 등용문이라면, 당선자에게 되려 상금을 주고 저작권을 보호해주며 여러 계고지에 실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내가 반성할 부분은, 위의 생각들을 첫 통화에서 바로 쏟아내지 않았다는 것과 전화를 끊고 잠시나마 어찌할지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작가.

문인.

문호.


그래, 어떤 문호가 돈을 주고 작가라는 칭호를 사는가. 그건 작가가 아니라 작자다.

내 아무리 장사치지만, 등단을 돈 주고 사지는 말자.

더욱이 장사치이기에 돈을 주고 되려 내 것을 넘길 수는 없다.


그들은 당선을 영광으로 표현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그들이 하는 말에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혹할 달콤함이 있었다.

"기성문인으로 대우받으며 활동한다"

"저서를 출판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유력한 문인의 감상평을 받으며 데뷔할 수 있다"


두 번째 통화에서 왜 수상을 거부하려 하냐는 그들의 물음에 나는 말했다.


"저는 돈을 내고 등단하는 것에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불쾌해했다.


"당신이 등단하려면 상금을 주는 대회만을 통해야겠구나."

"수많은 문예지 중 등단비 없이 실력으로만 등단시켜주는 문예상이 얼마나 될 거 같으냐."


비로소 그들이 노련한 선수로 보이고, 말은 궤변으로 들리면서 나도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말대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래서 공모자는 출품작을 제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상적인 주최 측이라면 당선작에 대한 정당한 상금을 주고, 저작권을 보호하며 여러 계고지에 실리도록 지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심사위원 감상평에 원고료를 줄 상식은 있고, 문청들의 창작품에는 되려 돈을 받는 것이 그들의 비즈니스인가.

나는 보도 듣도 못한 사업모델이다.

게다가 사전에 언급/명시되지 않은 Cost에 대해서는 거절할 수 있음이 상식임을 안다.


얼치기 글쟁이인 내가 문예계를 너무 몰랐던 것이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배웠다.

마치 진상 거래처를 상대한 기분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당분간 현업에서 나를 더 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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