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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역 Oct 19. 2021

평택택시

어머니의 아버지 이야기

소년의 아버지는 스스로를 한국전쟁의 피난민이라고 했다.

소년은 난민의 아들인 셈이었다.

난민의 아들은 형제가 많았고 재산은 없었다. 

어떻게 얻었는지 모를 논 몇마지기, 들여다 보고 있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집을 나왔다.

가진 것이 없으므로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더랬다.


소년은 학교라는 곳을 제대로 거쳐본 바가 없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남자가 되었다.

남자가 되었으므로 국가는 불우한 그를 불렀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교육이라면 단 한 곳, 육군수송학교에서 운전을 배웠다. 

운전도 기술이 되던 시절이었다. 

남자는 그곳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1등부터 3등까지는 원하는 곳으로 배치를 시켜주겠다는 말에 서울로 보내 달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청와대에 주둔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에 소속되었다.

청와대와 경복궁 뿐만 아니라 사방에 군이 있던 시절이었다.


국가 최고 권력자(아직 대통령은 아니었다고 한다.)의 전속부관을 모시는 운전병.

높은 분을 모시는 분을 모시는 사람.

그것이 남자의 보직이었다. 

운전병으로 복무한 남자의 머릿 속에 서울시내는 훗날까지 자리 잡았다.

 

군대라는 곳은 의식주를 제공했다. 

힘 있는 양반을 모심으로써 종종 떨어지는 콩고물도 있었다. 

군생활은 생계에 있어서 처음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가는 시간이 애석했다.

제대할 때가 되자 다시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자신의 운전병이 마음에 들었던 높은 양반이 본인의 집에서 잠시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서울의 한 택시회사에 자리도 마련해주었다. 

남자의 드라이버 인생은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출세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던 남자는 자신의 입신양명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단순히 먹고 살 요량으로 집을 뛰쳐나온 것은 아니었다. 

학식은 없더라도 근성과 배짱이라면 자신있었다.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기필코' 

이 구호들은 그의 악착스러운 노력으로 구체화 되어갔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노력으로 무언가가 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남의 것으로 시작한 택시는 내 것이 되었다. 

한 대는 두 대가 되고, 

두 대가 열 대가 되어, 

그는 지방에서 운수업을 운영할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

 

[평택택시]

 

장가들고 자식 낳아 정착한 작은 동네의 이름을 따서 그는 회사를 차렸다. 

자신도 운전수였던 만큼 그는 기사들의 처우에 애썼다.

그들이 끼니를 굶지 않도록 했다. 

불황에도 호황에도 그의 회사에는 많은 기사들이 이력서를 내밀었다. 


삶은 한 순간도 만만치 않았다. 

이 모든 과정에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으랴. 

그러나 그는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무책임했던 아버지와 무지했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보수적인 남자는 자아를 투영할 아들이 없었다. 

그와 아내는 딸만 넷이었다. 

집안의 다섯 여자에게는 어떤 형태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재산을 물려줄 자식은 있었으나 회사를 넘겨줄 아들은 없었으므로 그는 회사를 다른 이에게 팔고 경제활동에서 은퇴했다. 

비로소 그는 생계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머리는 언제부턴가 백발이 되어 있었다.


가르쳐 준이는 없으나 무엇이든 배우려 했다. 

가진 것도 없었으나 어떻게든 벌려고 했다.

생계와 성공을 구축하고 자신은 꿈도 꿀 수 없었던 학사모를 네 딸 모두에게 씌워주었다.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무능한 가장이 되지는 말아야 했다.

사랑했으나 말하지는 않았다. 그건 아버지의 일이 아니었고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었다.

오락도 유흥도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문화가 없는 시대를 살았으므로 억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았다. 말로 들은 바는 없으나 굳이 말로 표현될 필요는 없었고, 

아이들의 마음은 내가 잘 알았으니 되었다.



누군가가 한 편의 글을 지어줄 수 있는 삶이 성공한 인생이라면,

내 어머니의 아버지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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