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역 Oct 19. 2021

내가 만난 가장 멋진 해병

공수낙하 중 꿈을 찾은 Moon의 이야기

Moon은 책을 좋아했고, 시를 좋아했고, 글을 썩 잘 썼다.

감성을 표현하고,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 남다른 녀석이었다.

성격은 쾌남에 얼굴은 미남이었다.


그런 Moon에게 아픈 과거 있었다.

평생 반성하는 기억이었다.

한창 방황하던 10대 시절,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뿜고 지나간 담배연기에 이유 모를 살인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벽돌이 쥐어져 있었고 그 사람을 뒤에서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더란 것이다.


깜짝 놀라 그대로 멈췄다.


흡연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대로 걸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까지 Moon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에게 느낀 실망과 공포 때문이었다.


다음날 Moon은 학교 도서관에 꽂힌 책들 중, 도덕과 윤리에 대한 책은 전부 빼서 읽었다고 했다.

수업도 안 들어가고 그것만 읽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책은 Moon의 선생이 되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오락이 되어 주었다.


Moon은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해병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냥 해병이 아니다.

공수강하 위탁교육을 받은 해병.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해병이라는 것이었다.


녀석은 인문학적 감성도 있고, 외모도 있고, 과오를 반성할 줄 아는 인격도 갖추었다.

너무 멋진 해병이었다.


Moon은 자신의 단 두 가지 신념에 따라 공수훈련에 자원했고 선발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신념이란,

[할까 말까 하는 고민 앞에서는 반드시 전자를 택한다는 것]

[서른이 되기 전에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선택하며 산다는 것]

젠장, 가치관마저 멋진 녀석이었다.


유수의 부대에서 가리고 가린 특급전사들만 선발되어온 위탁교육장에서 또 다시 우열을 가리는 훈련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실전강하 날,

헬기였는지 수송기였는지 물어본 기억 나지 않는다.

어쨌든 Moon은 자신을 하늘까지 데려다준 기체에서 몸을 던졌다.

참고로 그 군용 기체는 그가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고 한다.


몸을 날리고, 낙하산이 펴지는 찰나의 순간.

Moon의 눈에 들어온 것은 햇빛을 좌악 받고 있는 하늘이었다.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강하의 순간은 짧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그는 전에 느끼지 못한 전율과 함께 이 생각을 했다.

[이곳이라면 평생 일터로 삼아도 되겠다. 이런 하늘을 보며 일하고 싶다.]

그에게 파일럿이라는 꿈이 생긴 순간이었다.


내가 Moon을 만난 것은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아 국비로 수강한 취업학원에서였다.

영어를 배우는 곳이었다.

Moon은 우리와 달리 무역회사에 들어가거나 토익 만점을 받기 위해 그곳에 오지 않았다.

비행학교로 유학 가기 위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돈을 모으면 미국의 비행학교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취업을 걱정해주는 동기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두 번째 신념.

[서른이 되기 전에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선택하며 산다.]


지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

호주에서 돈은 잘 벌었을지, 바이러스 여파에 큰 역경은 없었는지, 계획했던 비행학교에 입교했는지.

다만 나는 그에게 확신한다.

그는 후회가 남는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이전 01화 평택택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