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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Oct 20. 2021

뉴저지 제설작업

유학생 A의 가을방학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동기에 따라 다른 행동이 될 수 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장소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군 복무 시절 가뜩이나 빠른 기상시간보다 먼저 일어나서 행해야 했던 제설작업. 당시 쓰던 것과 비슷한 넉가래로 뉴저지의 민박집 앞을 밀어내며 나는 그 말이 떠올랐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숙집 겸 민박을 운영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넌지시 한 부탁을 그래도 썩 흔쾌히 응한 것은 싼 값에 숙소를 구했다는 만족감이 한 몫했을 것이다.


“저 총각 하나로는 안 될 것이여, 자네들이 좀 거들어주면 참 고맙겄는디.”


총각은 이 집에 상주하고 있는 하숙생 형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방학을 맞아 함께 여행을 나선 우리 일행 중에 유일하게 나와 아침식사를 하러 나왔다는 이유로 훈이 녀석도 그대로 차출되었다.


식빵에 계란을 입힌 토스트를 다 먹은 우리는 방에서 입고 있던 편한 옷들에 각자 외투만을 걸친 채 ‘뉴저지 제설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이틀이요. 이틀만 있으려 하거든요. 포트리에 누나 집이 있기는 한데 친구들이 불편할까 봐 방 찾는 중이에요.”     

“학생들이 몇 명인데?”     

“다섯이요.”     

“지하에 큰 방이 있기는 해. 우린 원래 렌트를 하는 집이여, 추수감사절 맞아서 잠시 민박도 하는 거지.”     

“아, 지금은 어차피 노는 방이 하나 있구나. 그건 얼마면 될까요?”     


근처에 누나 집이 있다는 동훈이의 말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누나는 자기 동생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고로 우리도 그 집에 들를 계획은 물론, 신세 질 생각도 없었다.    

 

“근처에 지낼 곳이 있는데 편하게 놀려고 방을 구하려 한다는 뉘앙스를 풍겨야 값을 딜하기 쉬워요.”     


일행 중 가장 ‘딜’에 능한 동훈이는 그렇게 일인당 25불에 식사가 포함된 썩 쾌적하고 널찍한 한인 하숙집의 지하방을 이간 얻어낸 것이다.


밤새 벌인 술판에 일행 중 셋은 일어날 기미가 없어서 숙취가 없는 동훈이 녀석과 술을 적게 마신 나만 아침식사를 위해 1층 부엌에 올랐던 것이다.  그게 제설작전의 오프닝이었다.





“후우.”     


땅에 일자로 박은 넉가래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골라본다. 주택가의 풍경이 눈에 들었다. 백인 아저씨도, 중국인 청년도 각자 자기 집 앞의 눈을 수습하고 정리하고 있다.


잠시 이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듯 착각에 빠진다.

다시 이방인의 신분을 자각하더라도, 어쨌든 당장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러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다.


눈을 치우는 데는 군 복무 시절 해오던 그것의 절반의 수고만 들였다.

그래도 하숙집 아주머니는 훌륭하다며 칭찬일색이다.      


“잘했어, 고마워, 옥수수 쪄놨으니 부엌에 가서 실컷 먹어.”     

예, 저는 아무래도 먹어야겠어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동훈이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실 생각으로 나도 뒤따라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주인아주머닌 이민 오신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리랑 tv가 켜진 거실 텔레비전을 보며 내가 말했다.     


“왜요?”     

“우리 엄마가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자주 말했거든. 만약 우리도 이민을 왔다면 지금 저 아줌마 모습이 우리 엄마의 일상이 되었을까 싶어서. 생각보다 별 거 없는걸.”     

“글쎄요. 우리 엄마는 이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근데 넌 미국에서 살고 싶다며. 영주권은 잘 돼가는 거야?”     

“변호사비로만 얼마가 깨졌는지 몰라요. 아직 희소식은 없어요.”     

“근데 기껏 이민 와서 왜 아리랑 tv를 틀어놓은 걸까.”     

“모국의 뉴스가 그리운가 보죠.”     

“그게 지겨워서 이민 오는 거 아니야?”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어요.”     


미국 옥수수에서는 단물이 나온다며 동훈이가 나에게 하나 건넸다. 나는 옥수수를 먹어본다.

정말 한국 옥수수에서는 맛보지 못한 단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이 단물에 담긴 아메리칸드림이 얼마나 많은 이민자를 끌어당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뉴저지를 떠나야 할 우리 일행은 민박집 저녁식사 대신 차를 타고 나와 또 다른 한인이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희한하게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직원들과 홀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 중에는 히스패닉이 많았다. 그들은 식당 여사장을 ‘누나’라고 불렀고 나름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원래 한인식당에서는 히스패닉 직원이 많이 보이며 그들 중 상당수는 불법체류자라고 동훈이가 귀띔을 해주었다.

우리처럼 학생으로 보이는 알바생들도 있었다.

내가 한 여학생에게 눈이 꽂힌 채로 근처의 럿거스 대학이나 강 건너 뉴욕대학교를 다니나보다 라고 말하자 앞에 앉은 동갑내기 재형이 녀석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볼 땐, 쟤도 불법체류자야.”

     

나는 왜인지 그 여학생을 대변 혹은 변호하듯 묻는다.

     

“어딜 봐서?”

     

그런데 동훈이도 그 말에 동조한다.     


“정말 그럴지도 몰라요, 형”     


휘둥그레진 내 눈이 이번에는 동훈이를 향하자 재형이 녀석이 말을 이었다.    

 

“너, 여행하면서 맨하탄이랑 뉴저지에서 본 한국 중에 유학생이나 교포가 많을 것 같냐, 불법체류자가 많을 것 같냐. 막말로 학교 졸업하고도 제대로 현지 취업 못하고 출국 안 한 채로 조금만 지나지? 그럼 불법체류자 되는 겨. 그게 별거가 아냐.”

     

무슨 대단한 지식이라도 공유한 것 마냥 말을 마친 녀석은 채소무침으로 감싼 고기를 입안에 욱여넣었다.

나는 다시 그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예쁘장하게만 보였던 얼굴이 담대하게 다시 보였다.

만약 녀석들의 말대로 그녀가 서류상 ‘불법체류자’라면 무엇이 그녀를 굳이 이 나라에 남게 했는지 (혹은 오게 했는지) 궁금했다.

우리 세대에게는 조국도 이제 굳이 떠나야 할 곳은 아니지 않던가했던 생각은 나 혼자의 것이었는지 싶었다.



     

“자네들은 졸업하면 뭘 하려고 그러는가들?”     


저녁을 마치고 민박으로 돌아와 어쩌다 함께 앉게 된 자리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침에 함께 눈을 치웠던 이곳 하숙생 형님(그는 공학박사 과정 중이라고 했다)도 궁금하다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동훈이는 미국에 남아서 시민권까지 얻어낼 생각이며 미국인인 매형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대답했다.

다른 녀석들도 비슷한 대답을, 혹은 적어도 이 나라에서 취업을 하고 경력을 쌓은 뒤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유학생으로서 썩 모범답안 같은 포부들을 펼쳐놓았고 다음은 네 순서라는 듯 시선들이 나에게 꽂혔다.

     

“전, 졸업하면 한국 가서 취업을 하려고요. 무역회사를 지망하고 있어요.”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늘 하던 대로 대답을 하였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상과대학을 다니면서 미국에 남을 생각은 없는 나에게, 무역업은 썩 괜찮은 귀국 명분이었다.  

   

“그려? 왜? 미국에 있고 싶지가 않여?”     


무슨 신기한 대답이라도 들은 듯 아주머니의 눈이 커다래졌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나 대신 동훈이가,


“너무 효자라서 그래요. 하하하”     


 무마해주었다.


아주머니는 그 질문 이후로도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그로 인한 뉴저지 한인사회의 근심, 그러면서도 이제는 방관자인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하지도 않는 흡연을 핑계로 잠시 집 밖을 나왔다.

갑자기 뉴저지 밤하늘은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다.

똑같이 시커먼 하늘 아래, 겨울밤의 찬 공기가 피부에 닿는 것을 느끼며 나는 왜 내가 이 나라에 남으려 하지 않는지 마저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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