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만 않으면...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산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이러한 경쟁도 거의 막바지에 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경쟁이라는 것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승자들이 나오고 그 승자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그래도 지금까지는 도전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했지만 이제는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승자의 자리가 바뀌지 않는 그런 시대가 오는 것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보면 또 맞는 것도 같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을 때 떠오르는 게 딱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기는 것이다. 이 방법은 사실 본인이 선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강요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쟁에 던져지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뭔가 잔혹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경쟁을 싫어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내가 하는 경쟁만 싫어할 뿐 남이 하는 경쟁은 좋아한다. 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득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써놓고 보니 굉장히 이타적이게 들린다. 뭐 물론 끝은 승자가 모든 걸 다 가져가긴 하지만 말이다.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리가 누렸던 것까지 모두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쟁 안에 뛰어들어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든다. 그리고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황이나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냥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다. 좀 더 그럴싸한 탈출로를 찾아야 한다. 그때 두 번째 방법이 등장한다. 그건 바로 지지 않는 것이다. 이기는 것과 지지 않는 것.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두 개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딱 맞진 않겠지만 비유를 들어보면 이기려고 하는 것은 천장을 뚫으려는 것과 비슷하고, 지지 않는 것은 바닥을 다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 지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패배자를 만들면 된다. 꽤 그럴싸한 패배자를 말이다. 그래서 바닥을 다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실제로 바닥을 다지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적당히 잘 지목해서 이유만 잘 가져다 붙이면 성공이다. 그럼 나는 최소한 이 경쟁사회에서 지지는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건 꽤나 효율적이다. 피 터지는 경쟁, 그것도 죽어라 해도 이길 수 있을지 전혀 장담할 수 없는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적당히 비켜서서 패배자 하나 만들면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 그리고 승자한테는 그냥 박수 좀 쳐주면 그만인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래서 우리는 치열한 노력대신 패배자를 찾아다닌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추락시킨다. 깎아내리고 잡아당긴다. 그리고 패배자들이 패배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길 바란다. 노력이란 힘드니 말이다.
경쟁사회도 거의 끝에 다 온 것 같다. 결국에는 이렇게 서로를 패배자 만들 일도 사라질 것이다. 승자들은 우리 눈앞에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고 우리는 비슷한 서로를 보며 그냥저냥 살아갈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포기, 좋게 말하면 안정인 세상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