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시간 좀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니야.'
진짜 그런가?
보통 위 말은 누군가를 위로할 때 많이 쓴다. 예를 들면 친구가 실연의 아픔을 겪었을 때 친구한테 가서 '지금 좀 힘들어도 나중에 다 잊힐 거야.'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말이 실제로 듣는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위로가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저 말을 딱히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아닌가 그냥 기억이 안 날 뿐인 걸까? 하지만 아무튼 지금 내 기억 속에는 저 말을 한 기억도 들은 기억도 딱히 없다. 내 기억이 맞다고 가정했을 때, 듣지 못한 것은 아마 남에게 딱히 뭔가 털어놓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고 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저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이다.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니... 병원 갔는데 의사가 '아 있다 보면 나아질 겁니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뭐 주사라도 놔주든 약이라도 처방해 주든 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내 고민을 듣고 있는 친구가 의사도 아니며 꼭 무언가 당장 효과 있는 것을 해줘야 할 의무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주 저 말을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왜 그렇게 저 말을 많이들 쓰는 것일까?
우리 시간을 한번 되돌려 보기로 하자. 각자의 나이가 다르기에 돌려야 하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대충 5살에서 6살쯤으로 돌려보기로 하자. 지금 내 나이는 30 중반 정도이므로 대략 30년을 되돌려야 하는데, 덕분에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 나이 때쯤에 서럽게 울어본 경험은 다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서 서럽게 운 이유가 사탕 때문이라고 해보자. 기억이 난다면 기억이 나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서러운가?
내 경우는 누나가 있기 때문에 딱 그 나이 때쯤 뭔가 많이 뺏겼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본다고 서럽거나 하지는 않다. 그냥 음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 당시에는 분명 엉엉 울 정도로 나에게 매우 심각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니 말이다. 이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바로 그런 것일까?
어이없을 수도 있다. 그럼 그때 일로 지금까지 서러워야 하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 당시 그 일로 울었고 아마 그때의 일 때문에 몇 날 며칠은 괴로워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왜일까? 정말 단순히 시간이 많이 지나서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느끼는 사탕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사탕을 뺏긴 일과 비교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그때의 일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큰일이 맞았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축소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자란 만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의 일을 떠올려도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이제는 웃고 넘길 그저 지나간 기억 하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들을 밀도 있게 살아가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성장해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은 앞으로 열심히 살라는 말과 같은 말이 된다. 열심히 보낸 시간들에 의해서 나쁜 기억들이 점점 축소되어 영향력을 잃어갈 테니 말이다.
당연히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이 이런 식으로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을 안고 갈 그런 기억들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시간을 잘 보내다 보면 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