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고갈?
작년 여름쯤, 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지방에서 열려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같이 내려간 적이 있었다. 가서 축의금을 내고 결혼식을 구경한 뒤 뷔페로 내려갔는데, 그때가 한참 사람이 몰릴 때라 접시 하나를 손에 들고 음식을 따라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러다 중간에 한 음식이 비어서 직원분이 새로 음식을 가지고 나와 채워 넣기 위해 그 음식 앞에 있는 손님에게 잠시 비켜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 손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거의 비어있는 음식접시를 긁어 위에 남아있는 것들을 다 담은 뒤에 천천히 다음 음식으로 이동하였다. 손님은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결혼식이 있었던 때 그 앞인지 뒤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역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고령의 운전자가 급발진이라고 주장한 사건으로 결국에는 급발진이 아닌 걸로 결론 난 것으로 알고 있다. 1심 판결도 최근에 나와서 금고형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고령자에 의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면 왜 그럴까? 이건 나이 먹고 뭐 하는 거냐는 비난이 아니라, 고령자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공통된 원인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다. 아무튼 글에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려는 목적은 없음을 밝힌다.
두 가지 경우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원래 문제의 원인이라는 게 워낙 복합적이라 딱 이거다 저거다 말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내 생각에는 에너지 고갈이 아닐까 싶다. 이걸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게임 내에서의 스태미나 고갈하고 같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게임을 잘 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설명을 덧붙이면 이런 것이다.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스태미나가 소모되고 이 스태미나 수치가 0이 되면 행동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보통은 캐릭터가 걸을 때 소모되지 않고 뛰면 소모가 되는데 수치가 0이면 더 이상 뛸 수 없고 걸으면서 서서히 스태니마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래야 다시 뛸 수 있다.
이걸 위의 경우들에 적용해 보면, 뷔페의 경우 음식 앞에 서 있던 손님은 음식을 담는다는 행동에 모든 스태미나 수치를 다 써버린 것이다. 그래서 직원분이 비켜달라고 했을 때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아마 담는 행위에 집중하느라 말조차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들었더라도 위의 이유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시청역 사건의 경우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찾아보니 가해 차량이 브레이크를 통해 차량을 정지시키는 듯한 장면이 찍힌 영상이 있었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처음에 어떤 이유에서든 액셀을 밟았고 이로 인해 스태미나 수치가 바닥을 찍은 뒤, 이게 잘못되었다고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는 행동까지 하는데 너무나 긴 시간이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이가 들 수록 뇌가 내리는 어떤 한 가지 명령만을 행할 수 있을 뿐 중간에 다른 자극이 오거나 상황변화가 생겼을 때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걱정하고 있다. 나도 나이가 들 텐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로 나눠보면 신체는 운동을 하든 뭘 하든 해서라도 관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 쪽이다. 나도 벌써부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이 들려오면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뭔가 새로운 정보나 지식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까지는 괜찮으나, 의심을 한다면 최소한 그게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찾아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거부해 버린다. 이게 늙어간다는 것일까?
나는 위에 적은 케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잘못되어서 저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저렇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나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나이 들고 있으니 앞으로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 그전에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다 싶다. 싫어하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