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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Nov 08. 2024

고쳐쓰기 43. 기다리던 메일을 받았다.

작가님 글이 좋아요라는 말


기다리던 메일을 받았다.

작가님의 글이 좋다는 메일이다. 

출판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 글이 좋다는 말이 

내가 좋다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출간 기획서를 살펴보고 출간할 여건이 안 되어 아쉽다는 메일은

내가 싫다는 말로 들렸다.


거절감은 요즘 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던 중 받은 메일은 나의 가슴을 채워주었다.


A 출판사의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작가님의 삶과 경험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 쓸 수 없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닌 이야기입니다"

라는 말은


나에게

"정말 잘 살아오셨어요. 

그 여건 속에서도 애쓰셨어요.

그래서 작가님의 삶이 빛나는 것 같아요"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나의 해석에 뭉클했고 눈물이 났다.


그 뒤에 붙은 반출판의 조건이나

일정량의 판매 부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다음날이었다.

반기획출판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하루는 착각 속에서 행복했다.


내가 책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은 

얻고 싶은 것은...


내 삶이 가치 있다는 말이었나 보다.

나의 상처가 상처로 끝나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나의 글이 좋다는 말은

나의 상처가 열매가 되었다는 뜻이다.



거창하게는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나

"될 일은 된다"


이런 거장의 삶이 녹아 있는 책처럼

그 언저리에 있길 바랐던 건가...

거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출판사의 조건이 무리한 것이라는 것이 인지되고

가슴 뭉클했던 감동은 한순간에 우울감으로 바뀌었다.


습관처럼 나타나는 혹독한 감독감은 한순간에 나를 제압했다.


"그럼 그렇지. 네가 뭘 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찰나에 나는 아주 어둡고 깊은 곳에 들어가

우울감을 느끼며 안전을 말하고 있다.


"희망을 걸지 마, 기대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건 위험한 거야.

그냥 여기에 있어. 여기는 편하잖아.

익숙하잖아."



그건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고 살갑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두막 같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온 힘을 다해 삶을 붙잡는 순간이다.


햇볕을 느끼고

살갗을 타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아.. 참 시원한 바람이다.

참 좋다.

햇볕도 바람도 살아있음도...

참 좋다..


한순간에 마음속에서 기쁨이 올라왔다.

한순간에 올라왔던 우울감처럼

기쁨을 느끼는 순간도 한순간이었다.

기쁨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마이클 싱어는 그 순간을 경외감으로 표현하였다.



눈앞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외감을 느끼는 대신, 


당신은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지게 만들려고 온갖 씨름을 벌인다.


마이클 싱어,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P.137



체급도 안 맞는 상대와

나는 또 씨름을 하고 있었구나..


감정을 누르거나 대치시키거나 딴청 부리지 않고

온전히 내 감정을 흘러가게 하는 것은

나에게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찰나에 

언제나 있었던 내 주변의 좋은 기운들

좋은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내 삶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경외*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햇볕의 따사로움

나무의 흔들거림

바람결에 타고 가는 살갗의 느낌들..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느껴지는 것들이다.


깊은 우울을 느끼는 것이나

깊은 경외를 느끼는 것이나

한 순간의 나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이..


그게 참 감사한 일이다.

그게 참 안심이 된다.


그리고, 반기획이든, 기획인든 그게 뭐 대수라고...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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