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색
수심 아래에는 햇볕이 차단된다. 수심이 깊을수록 햇볕이 차단되어 온통 암흑처럼 느껴진다. 빛이 있어 세상이 다채로웠다는 것을 물 속에 들어가면 알게 된다. 빛이 없는 세상. 지구의 70%를 차지 하는 바다. 이제야 그것이 인지되었다. 수심 5m 가장 가까운 수심에서 빛이 차단될 때 보이지 않는 색은 빨간색이다. 가장 강렬해서 끝까지 남아있을 것만 같더니 빨간색은 가장 먼저 색을 잃는다.
스쿠버다이빙 이론 과정에서 마스터 강사는 수심의 깊이에 따라 빛이 차단된다는 것을 컬러판을 가지고 설명했다. 색의 변화를 배우고 바닷속으로 들어 갔다. 컬러판의 첫 번째 칸에는 검은 색이 있었다. 아니다. 원래는 빨간색으로 시작하는 판이었다. 분명히. 나는 그새 그것을 잊고 '검은색이네'라고 생각을 했다. 빛이 차단된 빨간색은 이미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빨간색으로 믿고 있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번 믿은 것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겨우 5m 수심 안에서 그 색을 잃어버릴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빨간색이라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믿음은 신념이 되어 빨간색은 빨간색이 아니면 안 되었다. 내 노력과 시간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아서 더 집착할 때도 있었다.
아니라는 신호가 있었다. 그만하라는 신호도 보내주었다. 하지만 나는 멈춰지지 않았다. 어느 시점부터는 무엇을 위해 지키는지도 몰랐던 빨간색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수심 아래 겨우 5m에서 색을 잃는 빨간색. 나는 그런 빨간색이었다.
나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지켜내고 싶었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단단한 직선이라 휘어지지 못하고 부러졌다. 나는 어느 시인의 제목처럼 '부드러운 직선'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가정 먼저 색을 잃은 빨간색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어찌 그렇게 쉽게 색을 잃어버리니... 그렇게 화려한 색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먼저 색을 잃어버리니...
컬러판에 보인 색은 여전히 검은색으로 보였다. 빛을 잃은 모든 색은 검은색으로 보인다. 실제는 남색에 그깝지만 검은색처과 흡사해 보였다. 빛을 모두 잃은 수심 30m에서 마주한 것은 세상이 온통 진한 남색, 마치 암흑과 같은 세상만 남아 있었다.
빛이 없어도 색이 변하지 않는 그런 것은 애초에 화려하지 않았던 남색이었다. 그렇다고 이제와 남색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색이 무엇이어야 한다거나, 어디에서나 통할 거라는 생각이나 다른 색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애씀을 이제 하지 않는다. 다만 나와 우리가 무슨 색이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애초에 내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진하고 화려한 빨간색으로 보일 것이고 수심 5m에서 살고 있었을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남색이었을 것이다. 남색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빨간색이라고 말하기 위해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실 내가 무슨 색인지도 모른채 빨간색으로 정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나는 화려한 빨간색이고 싶었다. 내 바람처럼 나의 애씀을 구비 구비 좀 알아주길 바랐지만 그마음이 흡족하게 채워진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는 집착은 내 마음을 바늘구멍 만하게 만들었고 불안을 낳았다.
나는 아직 내가 무슨 색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슨 색인지 애써 찾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심안을 갖고 싶을 뿐이다. 내 생각이 아닌 실제를 보며 살아가다 보면 나도 자유로워질 것 같다. 겨우 몇 가지 논리로 현실을 규정짓지 말고 살아가고 싶다.
눈앞에 깊은 바닷속, 온통 사라진 빛과 남은 것은 나와 천지 구분이 어려운 세상 속이었다. 눈앞에 거대한 암흑과 같은 심해를 바라보며 가슴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오색찬란한 열대어도 검은 줄로 만 보인다. 심해에 사는 이름 모를 물고기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네가 지금껏 본 것이 정말 사실인 것 같아?"
복잡했던 세상과 깊은 심해는 닮아 있었다. 참 다르지만 닮아 있었다. 실체가 있었던 화려한 내 세상에 가려진 두려움이 바닷속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깊은 심해. 암흑천지 같던 내 세상은 누구도 알 수 없어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울 수가 없었다. 내 암흑과 같은 세계를 누군들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심해가 눈앞에 있었다. 나의 세상이 상상이 아닌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복잡한 세상에 가려져 실체가 없었던 내 암흑의 세상, 두려움의 세상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해를 눈 앞에 두고 두렵기보다 반가웠다. '이제 우리가 마주하고 있구나..'
우연히 만난 다이빙, 나는 이제 다이빙을 하며 심해를 탐험하기로 했다. 그 두려움을 반가워하며 유영하기로 했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그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저항하지 않은 두려움은 가벼웠다. 그 자체로 호기심으로 연동되었다. 오직 내 숨소리와 두려움만이 남은 그곳에서 내 삶이 형체 없이 일렁였다.
거친 내 숨소리를 들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 살아왔다는 것, 살아갈 것이라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내가 어떤 색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