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더 무서워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섭지 않아?'였다. 강사도 물었다. 원래 겁이 없냐고.
나는 한결같이 답했다.
땅 위에 사는 게 더 무섭다고...
고요하고 적막함 속에서 느껴지는 건 두려움보다 평화로움이었다. 나는 때때로 사는 게 복잡하고 미묘하고 난데없어 긴장이 되었고 해결은 안될 것 같아 불안했다. 내 마음에 대한 것과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상대의 것이 엉켜있을 때는 짙은 암흑 속에 길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땐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해결하기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고 뭘 해도 안될 것 같은 무력감은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무력감을 느낄 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바닷속으로 들어갔을 때 산호 사이사이 살고 있는 예쁜 물고기들만 보았다면 다시 다이빙을 하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저 예뻤고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온 것이구나.. 반가워하며 거기서 끝날 경험이었을 것이다.
내 앞의 짙은 남색의 바다는 이것이 좋은 곳 만은 아니라는 긴장을 주었고 거친 숨소리만 내가 살아있가고 증명해 주었다. 신비롭고 무한하고 함부로 할 수 없어 한걸음 한걸음을 걷듯 한숨 한숨에 집중하게 된다.
사는 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이고, 관계라는 건 복잡하기 그지없기도 하고 단순함의 끝판이기도 하다. 사는 게 힘들 땐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이고 공기에 싸여 있으면서도 숨쉬기가 어려웠다.
사는 게 무척 쉬워 보이는데 기본값이 까다로운 기질과 채워진 적 없는 정서의 바닥으로 나만 힘든 것 같아 억울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였나. 바닷속의 짙은 남색 앞에서 두렵기보다 반가웠다. 모두에게 공평한 듯했다.
실체가 있는 두려움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두려움은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었는데 이 두려움은 그럴만한 두려움이었다. 숨 한번 꼬여도 숨 한번 못줘도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그럴만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의 크기와 내 삶의 크기가 엇비슷하니 잘 만났다. 심장이 뛰었다. 알 수 없이 설레었다. 더 깊은 곳에 들어가 보고 싶어 전문자격을 배우게 되었다. 얕은 수심에서 만난 알랑 살랑한 물고기와 산호들이 내 삶에 기본값은 아니었기에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집단상담에서 사용하는 '우주'라는 닉네임은 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서 자유로운 나, 그렇게 무엇에도 자유롭게 둥둥 떠있는 나를 상징하고 지은 것이다. 그만큼 자유롭고 싶었다.
상상만 하던 중력의 상태가 바닷속에서는 가능하다. 숨으로 조절하며 유영하는 것을 중성부력이라고 한다. 중성부력의 상태는 내가 원하는 높이로 유영할 수 있는 것이다. 숨으로 가능하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숨을 들이마셔 올라가고 높다 싶으면 숨을 내쉬어 내려온다.
스쿠버다이빙 경험이 늘어날수록 내 숨으로 중성부력이 만들 졌다. 바닷속 유영이 점점 자유로워졌다. 발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며 동력으로 삼았다. 익숙하지 않아 올라가고 싶은 데 내려가기도 하고 내려가려 했는데 올라가기도 했지만 몇 번의 다이빙을 더 하고 내 몸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트라우마 치료의 시작은 마주 봄이다. 자신을 두려움을 마주해야 수용이 가능하다. 그 장면, 그 기억을 떠올리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장면으로 가서 이해해 주고 수용하는 것, 그것이 트라우마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나의 오랜 두려움은 혼자 남는 것이었다. 엄마도 할머니도 떠나고 혼자 남았다는 생각은 어린 나에게 악몽으로 밤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반복된 오랜 꿈은 나의 울타리가 생기면서 사라졌지만 그 정서는 남아 있다. 어둡고 실체가 없는 무엇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마주함.
심해를 마주하며 나는 바닷속에 있는 것이 아닌 나의 두려움 한중간에 있는 듯했다. 오랜 공부와 상담으로 이 모든 것은 나의 감각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마주한 심해를 그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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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몇 년 전 끄적인 글이 생각났다.. 그 시의 제목은 심해였다.
심해.. 라니 정말 우연히 다이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