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나의 별명은 '뭉'이었다. 사고뭉치의 뭉이였다. 사원 호박씨가 아니라, 뭉양으로 불렸다. 성기고 부주의하며 손만 댔다 하면 사고를 치는 신입사원이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선,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눅부터 들었다. 상대를 화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데 상대가 내게 견딜 수 없이 화를 낼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내곤 했었다. 고르고 골랐다고 생각한 남편, 나를 세상으로 지켜주고 세상 최고로 여겨주리라 여겼던 남편 또한 나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스토리 중독자다. 스토리로 되어있다면 장르를 불문하고 빠져든다. 아이들도 그렇게 만들리라 마음먹었다. 취미를 함께 하고 싶은 친구로 아이들을 나에 뀌어 맞추고 싶었던 걸까?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영화관부터 찾았다. 다행히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최대의 미군병력이 위치하기에, 더빙이 되지 않은 오리지널로 영화를 상영한다. 참고로, 독일은 자국어인 독일어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모든 해외산 콘텐츠에 대해서 독일어 더빙을 한다. (넷플릭스는 예외일 듯하다. 재독 당시는 넷플릭스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터라 넷플릭스를 접할 기회가 없어 알 길이 없다.)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정도는 되어야 대형 상영관이 있고 대부분의 독일어 더빙본 사이 간간히 1회 차 정도의 미국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내고 그 기쁨은 하늘을 찔렀다. 이제 예약만 하면 된다. 영세한 독일 영화관 웹사이트를 구글 번역기를 돌려 예약을 하고, 남편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
왜 남편은 나가려는 순간에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던 걸까? 어리던 아이들을 준비하고 나갈 채비를 해야 하는 몫은 오롯이 나의 몫인 듯 외출 전 그는 본인 몸단장을 하고 인터넷전화기를 집어 들곤 했다. 어머니와 아버님은 늘 투덕투덕 다투셨고, 어머니는 딸처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들에게 통사정을 하곤 했다.
주말이면 시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그였으니, 그날도 가벼운 통화를 기대하고 그는 해운대로 전화를 걸었으리라. 나가야 하는데, 그는 전화를 붙들고 있다. 서울로 치면 종로나 명동쯤인 프랑크푸르트 영화관까지 가려면 외곽의 우리 집에선 40분은 잡아야 한다. 게다가 첫 영화관 나들이라 긴장 반 설렘 반이라 조금은 일찍 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는 전화를 끊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 채비를 마치고, 그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남은 시간은 30분. 영화관 웹사이트를 부지런히 살폈다. 도대체 예약 취소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한국보다도 비싼 티켓 가격 또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외국인이라고 손해 보는 생활은 지긋지긋했다. 바보 되는 기분이라 싫었다. 설마 하니 예매를 취소하려면 무서운 ARS를 해야 하는 걸까? 독일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불친절하고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며 나의 영어를 불편해하는 독일 고객센터와는 한마디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 순간, 그가 전화를 내려놓았다.
"가자!"
그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 전화 끊기지도 않았는데, 엄마 들으라고 그런 거야?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시간을 거슬러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면, 40보단 50쪽에 더 가까운 나는 그가 시어머니와 나누는 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귀 기울 것 같다. 이미 어머니의 귀에 전화를 빨리 끊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나의 목소리가 들렸다면, 그걸로 그만 아닐까? 붉으락 푸르락 하는 그의 얼굴과 사납게 차를 몰아가는 그의 운전을 느끼며 부랴부랴 영화관을 향하던 그 시간 아우토반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안 가고 말지.... 영화가 뭐라고.....
나무라고 싶은 만큼 나무라던 그를 남편으로, 가장으로, 오빠로 바라보던 그날의 나는 화내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먹기 싫은 밥 먹듯 꾸역 독일에서의 첫 영화를 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에 대한 생각, 사고뭉치인 나, 그리고 엉망진창인 남편과의 관계 그 모두에서 도망가고 싶어서였다.
남편과 더 함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때에 봤던 영화는 '스즈메의 문단속'이었다. 고작 몇 개월 전인데 몇 년이 흐른 듯하다. 아들과 둘이 보던 스즈메의 문단속은 슬프고 외롭고 아름다웠다. 아들의 취향에 맞춰 보던 일본영화 앞에서 언젠간 남편이 좋아하는, 그리고 내가 지극히 싫어하는 액션영화를 함께 봐주러 올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지난주 남편과 아들, 둘과 함께 '밀수'를 보러 갔다. 여배우들이 여자가 아닌 배우로서 극의 중심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영화라 좋았지만, 보기 전까지는 남편의 취향에 들어맞는 레트로 액션영화겠다 싶었다. 류승완 감독의 과거 영화들도 선이 굵고, 남성들이 즐길 법한 전개의 영화들로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 밀수 보러 갈까?"
나는 이제 남편에게 그가 뭐라 답할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할지 알고 질문을 던진다. 지난한 냉전을 결과가 아니라 글쓰기의 결과다. ( 부부관계가 좋지 않다면 글쓰기를 권한다!) 남편과 대화를 끊어내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관찰하고 그와의 지난 시간들을 글로 써 내려갔다. 어린 나는 비록 사고뭉치였다. 혹여 그에 대한 나의 판단이 잘못 됐을지언정 나보단 덜 사고뭉치인 그를 믿고 살아가야 한다 믿었다. 글을 쓰는 어떤 날은 왜 나만 이 고통스러운 글쓰기로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하며 키보드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어떤 날은 '뭉'으로 불리던 사회 초년생의 날들을 떠올리며, 깎고 다듬어 눈치를 키우며 그와 눈높이를 나란히 하는 배우자가 되고 싶었다.
'밀수'를 보자고 제안해 줘서 고맙단다. 남편은 자꾸 고마워한다. 그리고 음성으로 일기를 쓴다. 영화를 보러 나가기 위해서 내게 준비할 시간을 주며, 아들과 나를 위해서 텀블러에 얼음 가득 시원한 보리차를 채워 나선다. 지갑도, 가방도 없이 가볍게 외출에 나가던 그와는 다르게 아이들 짐이 가득 든 가방에 아이를 울러 매고 외출하던 나였었는데 말이다. 외출 자체가 싫을 만큼 무신경하던 그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렸나 보다.
물론, 우리에겐 말다툼이 계속 있을 예정이다. 공황장애와 불안증으로 바닥난 체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사고뭉치 여동생쯤으로 취급할 기색을 보이면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입을 닫고 컴퓨터를 켠다. 그와 말하지 않고, 글을 써댈 것이다. 그를 이해하고, 나를 뒤돌이 켜보기 위해서 그리 해야만 한다.
피 나오는 영화도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감수하려는 나를 그는 눈치채 가고 있다. 시어머니에게 전화나 빨리 끊으라고, 독일에서의 첫 영화관 나들이가 지금 이 순간 내겐 가장 중요하다고 그를 재촉할 의도가 나 호박씨에겐 전혀 없다. 10년어치, 20년어치의 오해와 감정들은 이제야 풀어내어지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나는 그의 옆에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액션영화를 함께 볼 날을 위해서라도 우린 함께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