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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아빠

붕어즙, 편견 없는 시선

by 나노 Feb 18. 2025

울 아부지는 대머리다. 아니 대머리였다.

큰아빠도 작은 아빠도 다 머리숱이 많았는데, 울 아부지만 대머리였다. 하, 40대에 본 늦둥이인 나는, 울 아부지 대머리가 좀 창피했다. 중학교 때 학부모 총회에 오셨던 아부지 덕에, 난 대머리 딸이 되었다. 짓궂은 친구들이

"넌 좋겠다. 여자라서. 아님 너도 대머리였을 거야. 대머리는 유전이야!"

하면서, 나를 놀렸다.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눈을 한껏 흘겨주고 말았던 것은, 나도 창피해서였다.

아부지는 자꾸 차가운 물에,  잠깨려 머리를 감아서 빠진 것이라고 항변하셨다. 그렇다고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울 아부지는 대머리니까. ㅠㅠ

그 뒤로 울 아버지는 붕어즙을 직접 제조해서 드셨다. 한약재를 직접 넣어서. 놀랍게도 맹지털이 진짜 올라왔다. 아버지의 새 머릿털에 좋아한 것은, 아부지보다 나였다. 그게 뭐라고...


그리고 십 년 뒤쯤, 유치원 생인 우리 조카가 아버지를 보며,

"쑥~~~~ 대머리"

를 노래해 드렸다. 당시 유명한 개그 프로그램을 따라서. 그 뒤에 나와 조카들은 키득키득거렸다. 노래가 아니라 아부지 놀리기였으니까.


그리고 십 년 뒤쯤 아들 조카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때,

내가 말했다.

"종환아. 할아버지는 대머리고 너네 아빠는 머리가 많지? 그러니 다음 차례는 너야. 대머리는 한 세대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니까 다음 대머리는 너야."

키득키득. 이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나는 이즈음 되어서는 아버지의 해명을 믿었기에, 우리 집 대머리 유전은 없음을 알았었다. 그래서 무표정한 조카를 놀리는 말장난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그 열 살 조카가 갑자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저는 앞으로 대머리 되는 거잖아요! 이쉬!"

녀석의 언행이 살짝 눈에 거슬린 것보다, 몇 년 전 내 장난을 아직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더 놀람 포인트였다. 녀석!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었구나! 의뭉스럽기는...

그날 조카를 붙잡고, 가계를 훑어가며 집안의 모발 유전을 설명했다. 귀엽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하고, 그냥 웃겼다. 너에게도 대머리 이슈가 심각한 문제구나! 예전의 나처럼! ㅋㅋㅋ


명실상부. 울 아부지는 대머리다.

유전자가 있든 없든.

그래서인지 난 대머리에 큰 유감이 없다.

도리어 친숙함이 든다. 단, 그것이 자존감에 영향을 줬다면 그것은 노놉이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감을 빛 바래게 한다면 그 사람의 심지를 믿을 수 없기에!

사람은 심성이 중심인 것이지, 세월 지나면 서리에 풀 죽듯 사라질 외모가 무슨 상관이랴. 자신을 아끼고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하지.


돈을 벌고도 아부지 가발을 안 사드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다. 아부지는 마음이 참 따순 분이었기에! 그깟 모발~  모발~이 중하지 않았다!


참고로 붕어즙으로 탄생한 맹지털은 금방 다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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