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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Mar 29. 2023

제 취미는...(더 보기)

취미 부자 집순이의 베이킹 이야기

 얼마 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디자이너님이 나이를 물어보셨다.

 "저요? 제가 서른... 몇 살이었죠?"

 "네...?"

 디자이너님을 당황하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대학교 졸업 후 나이를 딱히 기억하지 않고 살다 보니 대답이 바로 안 나온다. 한두 살 차이면서 세상 깍듯하게 존댓말 하며 선후배 놀이를 하던 시기가 지나니 나이가 필요한 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래서 누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그제야 머릿속으로 ‘(올해 연도)-(출생 연도) +1’을 계산하는데, 여차하면 그냥 '저 92년생이요.' 해버리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나이를 기억하고 살던 시점 이후의 나이가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고 취직하며 보낸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흐르기도 해서, 수업 진도 따라가는 걸 놓쳐버린 학생이 된 기분도 든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챕터 스물여섯이나 일곱부터인 듯하다. 진도가 너무 빨라요, 교수님.


 서른 살이 되는 것에 많은 사람이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사실 나는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릴 적 상상했던 30대 인간이 지금의 나처럼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는 모습은 아니었다는 게 조금 슬펐을 뿐. 30세를 이립,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고도 한다. 공자님이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실 나이에 학문에 별로 뜻이 없었던 나는 공부 대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제 취미는 책 읽기,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필사하기, 한자 공부, 프랑스자수, 연극 뮤지컬 관람, 뜨개, 외국어 배우기, 보드게임, 글쓰기, 베이킹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이거 말고도 더 있지만  여기서 더 쓰면 ‘제 취미는 … (더 보기)’로 넘어갈 것 같으니 일단은 여기까지. 물론 내가 저기 나열한 취미들을 모두 빼어나게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취미는 잘하는지 못하는지보다는 그걸 하는 동안 내가 즐거운지가 더 중요하니까. 내가 취미를 전문가처럼 잘했으면 진작에 일을 때려치우고 직업으로 삼았겠지만, 이립은커녕 이직도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쨌든 저 중에서 요즘도 많이 하고 있는 취미는 뜨개, 책 읽기, 그리고 베이킹이다.


 이쯤 되면 읽는 사람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 사람 집순이구나, 하고. 나는 뼛속까지 집순이다. 집에서 멀어지면 거리에 비례해서 체력이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꼭 나가야만 하는 일들은 최대한 모았다가 나가기 전에 최단 경로로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짜서 한 번에 해결하고 집에 돌아온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귀가 쿨타임이 차면 집에 그만 돌아가고 싶어 진다.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지는 않고 항상 사부작거리며 무언가를 한다. 연극 뮤지컬 관람이 가장 즐거운 취미였을 때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전염병이 돌면서 관극 횟수가 줄어서 지금은 다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더 많이 하고 있다. 대학로 힘든 시기마다 찾게 되는 나의 제2의 고향쯤으로 여기고 있지만 역시 는 집이 제일 좋다. 취미생활을 하려고 근무시간에 바짝 일하고 정시 퇴근하는 나의 하루는 퇴근 이후에 시작된다. 다행히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는 6년 차쯤 되니 요령이 생겨 정말 바쁜 시기를 빼고는 업무시간을 불태우면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쓸 수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취미도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축적되어 지금의 내가 된다면, 내가 취미생활을 하며 보낸 시간은 온전히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사실 베이킹을 정확히 언제부터 좋아하고 시작하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분명한 건 나는 빵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어릴 적에 빵은 집 근처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사 먹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나에게 빵집은 서점처럼 들어가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빵집에는 다양한 빵이 있었지만 내가 사 먹는 건 일부 품목으로 정해져 있었다. 아마 내가 살 빵을 계산대로 집어 가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늘 먹던 걸로 주세요’를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식빵은 기본이었고, 마늘 바게트가 남아 있으면 냉장 진열대에 있는 생크림을 같이 사서 찍어 먹었다. 노란색 카스텔라 가루가 묻어있는 꽈배기, 소시지를 감싸 튀긴 빵에 케첩과 머스터드, 파슬리 가루를 솔솔 뿌린 소시지 롤빵도 꼭 담아왔다.


 언젠가부터 디저트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빵은 이제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끼니도 되고, 간식도 되며, 후식이 되었다. 어릴 때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온갖 빵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카롱, 휘낭시에, 다쿠아즈, 까눌레, 머랭쿠키, 프레첼, 마들렌, 티라미수, 비스코티, 슈톨렌, 치아바타, 팔미에, 크렘 브륄레, 스콘, 티그레, 크로플, 소금빵…(더 보기). 프라이팬에 부쳐 먹던 핫케이크 대신 수플레 팬케이크가 나오고, 종이 껍질을 떼고 먹던 치즈케이크가 아니라 태우듯 구운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나오고, 퍽퍽한 도넛만 존재하던 나의 세계에 글레이즈를 입히거나 크림을 가득 채운 부드러운 도넛이 등장했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세계 각국의 빵을 이제는 집 근처 빵집이나 카페에서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다.


 사실 가장 큰 변화는 아마 케이크일 것이다. 케이크는 특별한 날인 내 생일, 가족들 생일, 크리스마스에만 먹는 빵이었다. 아빠 생신이 석가탄신일이라 의도치 않게 종교도 없으면서 두 종교 기념일을 모두 챙기곤 했는데, 예수님 생일이든 부처님 생일이든 이왕 하는 거 공평하게 축하하면 좋으니까. 케이크도 두 번 먹고. 이렇게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 세상도 변해서 이제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하루를 기념일처럼 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영상통화로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시대, 학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빵을 따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어쩌다 보니 나는 빵을 만드는 걸 취미라 말하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제과기능사 자격증까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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