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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Apr 14. 2023

수학이 필요한 순간

미션! 내부가 원형인 오븐에 들어갈 사각팬 찾기

 내가 빵을 만들 때 쓰고 있는 오븐은 빌트인 광파오븐이다. 지금까지 사용한 오븐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나은 편이지만 작은 문제가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구워지는, 내부가 원형인 오븐이라는 점이다. 베이킹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팬과 틀이 사각형이기 때문에, 예전 빌트인 가스오븐에서 쓰던 틀은 너무 커서 지금 사용하는 오븐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크기가 작은 팬을 사야 하는데, 이게 내 오븐에 들어갈지 모르니 무작정 살 수도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수학이다. 나는 이과고 과학을 전공해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미적분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미적분은커녕 근의 공식도 기억이 안 난다. 놀랍게도 예전 성적표를 보니 미적분학이  A+이었다. 과거의 나는 제법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되어 매우 유감이다. 하지만 베이킹에 필요한 건 미적분이나 무슨 대단한 공식이 아니니까.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부피를 구하는 공식, 원주율 π가 3.14라는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


미션 1. 내부가 원형인 오븐에 들어가는 사각팬 찾기

 자, 이제 내부 지름이 42cm인 오븐에 들어갈 수 있는 사각팬을 구해보자. 빈 종이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딱 맞는 사각형을 그리면 원의 지름과 사각형의 대각선 길이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븐 내부 지름이 사각팬의 대각선 길이보다 크기만 하면 그 팬은 오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제 사각팬의 대각선 길이만 구하면 되는데,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크기 설명란에는 가로 길이, 세로 길이, 높이만 나와 있다. 이런! 그렇지만 우리는 학교 다닐 때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웠으니까, 삼각형의 가로 길이와 세로 길이만 알면 대각선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a²+b²=c².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a²+b²)은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의 제곱(c²)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써보자. 사각형을 대각선으로 자르면 직각삼각형이 되니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적용할 수 있다. 내가 사고 싶은 팬은 가로 길이(a)가 26cm, 세로 길이(b)가 30cm이다. 대각선 길이(c)는 가로 길이의 제곱(a²)과 세로 길이의 제곱(b²)을 더한 값에 루트를 씌우면 된다. 26²+30²=1576이고, √1576은 39.69이다. 휴대폰 계산기의 공학용 모드를 이용하면 금방 계산할 수 있다. 틀의 대각선 길이가 39.69cm로 오븐 내부 지름(42cm) 보다 작으므로 이 틀은 오븐에 들어갈 수 있다! 안심하고 결제 버튼을 누른다.



미션 2. 레시피에 사용된 틀이 내가 가진 틀과 다를 때

 유튜브에서 찾은 레시피로 빵을 굽고 싶은데 내가 가진 과 레시피에 사용된 의 크기가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같은 크기의 을 사면 된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을 다 사모을 수는 없으니, 가지고 있는 에다 빵을 구워보도록 하자. 이런 상황에서는 부피를 구하는 공식을 사용하면 된다.


(예시 1) 레시피에 사용된 틀이 가로 15cm * 세로 15cm 사각틀인데 내가 가진 틀은 가로 30cm * 세로 30cm 사각틀인 경우

 레시피의 틀보다 내가 가진 틀이 더 크기 때문에, 레시피에 적힌 양 그대로 반죽을 만들어 틀에 부으면 높이가 매우 낮게 나오게 된다. 가로세로가 2배씩 늘어났으니 레시피도 2배 늘리면? 안 된다. 완성될 빵의 높이를  h라고 하고 부피를 구해보자. 가로 세로 15cm 사각틀의 부피는 15*15*높이(h)=225h이고, 30cm 정사각틀의 부피는 30*30*높이(h)=900h다. 900h/225h=4이니, 내가 가진 틀과 레시피에 사용된 틀의 부피는 4배 차이가 난다. 그러니 15cm 사각틀에 구워야 하는 빵을 30cm 사각틀에 구우려면 모든 재료를 4배씩 넣어야 15cm 사각틀에서 구울 때와 같은 높이의 빵을 만들 수 있다.


(예시 2) 레시피에 사용된 틀이 지름 18cm 원형틀이고, 내가 가진 틀은 14cm 원형틀인 경우

 이번에는 원형틀의 부피를 구해보자. 원형틀은 원기둥의 부피 구하는 공식을 쓰면 된다. 원기둥의 부피는 원의 넓이(원주율반지름의 제곱, πr²)에 높이(h)를 곱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완성될 빵의 높이를 h라고 하면, 지름 18cm 원형틀의 부피는 π*9²(반지름 ²)*높이(h)=81πh, 지름 15cm 원형틀의 부피는 π*7²*높이(h)=49πh이다. 내가 가진 틀의 부피를 레시피에 사용된 틀의 부피로 나누면 49πh/81πh=0.605938이 나오니 원래 레시피의 0.6 배합으로 만들면 된다.


(예시 3) 레시피에 사용된 틀이 지름 18cm 원형틀이고, 내가 가진 틀이 가로 18cm 세로 18cm 사각틀인 경우

 이제 원형틀로 만드는 레시피를 사각틀로 변환해 보자. 지름 18cm 원형틀의 부피는 π*9²(반지름 ²)*높이(h)=81πh, 내가 가진 틀의 부피는 18(가로)*18(세로)*높이(h)=324h가 된다. 내가 가진 틀의 부피를 레시피에 사용된 틀의 부피로 나누면 되는데 예시 2처럼 π가 소거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원주율 π3.14니까  324h/(81*3.14h)=1.273885이므로 레시피의 1.27 배합으로 만들면 된다.



 퇴근 후 집에 오면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틱톡에서 봤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멜로디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사국어도 수학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학문에 정진해 봐야 소용없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나 역시 학교에 다닐 때 공부하면서 대체 이걸 어디다 쓰나 했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배워놓으면 어딘가 쓸데가 생기기는 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오븐에 맞는 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나, 레시피와 다른 틀에 빵을 구워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 수학을, 이 공식을, 내가 배웠던 걸 쓰면 되겠구나 하는 시야가 생긴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다. 그리고 배움은 형태를 지니지 않은 도구다. 뭐든 배워놓으면 어딘가 쓸데가 생긴다는 사실을 나는 30년 정도 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지만 굳이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를 꺼내며 가르치려들 필요는 없으니 투명인간처럼 조용히 서 있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렇게 아직 나는 꼰대가 아니라고 부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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