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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Apr 21. 2023

벼락치기 인생의 제과기능사 도전기-필기편(2)

시험까지 D-14

 2주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아 유튜브로 강의를 들었다. 시간이 없으므로 이해가 가지 않거나 정말 안 외워지는 부분은 쿨하게 버렸다. 학창 시절 내내 벼락을 치며 살아온 내가 볼 때, 벼락치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벼락을 치다 보니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는 안목도 조금은 생겼다. 다행히 선생님이 강의를 잘하셔서 공부가 지루하지 않았다. 제과제빵계의 일타강사 같았다. 목소리도 귀에 쏙쏙 박히고, 도무지 외워질 것 같지 않은 내용을 쉽게 외우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필기 공부는 단지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유익했다. 제과 이론과 제빵 이론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경험들이 과학적인 이유를 곁들인 구체적인 지식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내가 베이킹 재료로 사둔 초콜릿은 종종 하얀 가루가 묻은 것처럼 변했다. 곰팡이가 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변한 건지, 먹어도 이상은 없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런 현상을 설탕 블룸(sugar bloom)이라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콜릿을 습도가 높은 장소에 보관하거나 차가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갑자기 옮기면 공기 중의 수분이 초콜릿의 설탕을 녹인다. 나중에 수분이 증발하면 설탕은 결정이 되어 초콜릿 표면에 하얗게 흔적을 남긴다. 모양이 조금 보기에 좋지 않아 졌을 뿐 먹어도 괜찮다는 걸 알고 안심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습하지 않은 장소에 보관해야지.


 레시피마다 사용하는 설탕의 종류가 다른 이유도 알게 되었다. 왜 어떤 쿠키는 설탕을 넣고, 어떤 쿠키는 슈가파우더를 넣는 걸까? 어떤 설탕을 넣느냐에 따라 쿠키가 퍼지는 정도가 달라진다. 쿠키가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반죽이 퍼져 납작한 모양이 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설탕의 입자 크기도 그중 하나다. 슈가파우더처럼 입자가 고운 설탕을 사용한 쿠키는 덜 퍼지고, 일반설탕을 사용하거나 특히 흑설탕을 넣은 쿠키는 많이 퍼져서 납작한 모양이 된다. 유튜브 베이킹 채널을 보면 항상 ‘이 재료가 없는데 다른 걸로 대신 넣어도 되나요?’ 묻는 댓글이 많다. 별 기상천외한 대체재를 사용해도 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단 슈가파우더는 설탕으로 대신 넣는 게 가능은 하다. 그래도 빵이 만들어지기는 하니까. 하지만 모양과 식감이 달라질 수 있다.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드디어 필기시험날이 되었다. 주말인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대기시간 동안 볼 책, 볼펜과 계산기, 수험표와 신분증.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시험장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외딴곳에 있었다. 시험장에 들어가려는데 파란색 방수포로 된 가방에 자기 몸만 한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중에야 그게 실기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기시험은 개인 도구를 가지고 와도 되고, 개인이 지참해야 하는 준비물도 있었다. 그들을 조용히 응원하며 대기실로 들어가 앉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헷갈리는 부분들을 빠르게 복습했다. 제과기능사 필기가 오전이라 제과 시험을 먼저 보았다. 시험 시작 전, 감독관님이 대기실로 들어오셔서 시험을 보는 장소로 안내해 주셨다. 시험실 문 앞에는 자리 배치도가 붙어있었고, 자리마다 모니터에 사진과 수험번호가 적힌 화면이 떠 있었다. 내 자리로 가는 동안 다른 모니터를 슬쩍 보니, 한식조리사, 미용사 등 다른 분야의 필기시험도 같은 실에서 보는 모양이었다. 연령대도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부터 엄마 아빠뻘 되는 분들까지 굉장히 다양했다. 세상에는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다들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랐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필기시험은 컴퓨터로 보는 CBT(Computer Based Test) 시험이었다. OMR 카드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시험을 보던 학생 때를 떠올리다가, CBT가 인건비는 덜 들까 하는 어른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험이 시작됐다. 신분증과 수험표, 볼펜과 계산기를 꺼내 책상에 올려두고 다른 짐은 가방에 넣었다. 계산 문제를 풀 때 사용할 빈 종이를 받고 나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첫 문제를 읽는 순간 생각했다. 아... 쉽지 않네, 이거? 예상 문제에 비하면 확실히 어려웠다. 일단 글이 많았다. 침착하자. 그래도 개념은 같으니까 할 수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문제를 풀었다. 책에는 없지만 선생님이 추가로 말씀하셨던 내용도 시험에 딱 나왔다. 역시 스승님. 일타강사였어.


 컴퓨터로 보는 시험의 장점은 점수가 바로 나온다는 점이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음 졸이는 게 싫은 나에게는 오히려 좋았지만. 문제를 다 풀고 제출했다. 결과는 86점. 다행이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오후에 있을 제빵기능사 필기 예상 문제와 공식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오전에 한번 해봤다고 한층 마음이 편했다. 시험은 제빵이 더 어려웠다. 결과는 80점. 어쨌든 둘 다 무난하게 합격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왔다. 실기시험은 필기시험 취득 후 2년 이내에 합격하면 된다고 했다. 2년이면 꽤 긴 시간이니 미래의 내가 언젠가 하겠지. 그렇게 여유를 부리다가 1년 4개월이 지나고 마는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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