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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May 05. 2023

나의 망한 베이킹 이야기

성공한 베이킹은 모두 비슷하지만, 망한 베이킹은 저마다의 이유로 망한다

 뮤지컬이 취미인 내가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면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왜 같은 공연을 또 봐?” 그러면 나는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고민한다. 공연은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와 무대 밖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고, 같은 사람이 같은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같을 수는 없다. 그게 내가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이면서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슬픈 이유이기도 하다. 매번 다른 모든 공연을 현실적으로 모두 볼 수 없으니까. 어쨌든, 그렇다. 베이킹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내가 어제 성공한 걸 오늘 또 만들더라도 어제와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날의 조명, 온도, 습도…. 조명까지는 모르겠지만, 온도와 습도는 일단 결과물에 영향을 준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너무도 유명해서 자주 변주되는 이 문장은 베이킹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성공한 베이킹은 모두 비슷하지만, 망한 베이킹은 저마다의 이유로 망한다’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이킹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다. 특히 나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구우면 꼭 망하는 징크스가 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모양이 영 만족스럽지 못한데, 선물용인데 모양이 별로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내 입으로 들어가야지, 뭐.


 베이킹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망한다.  오븐 온도가 높거나 낮아서, 반죽 온도가 높거나 낮아서, 실내의 습도가 높거나 낮아서, 비중이 높거나 낮아서, 다 잘했는데 틀에서 꺼내다가 부서져서 등…. 나열하다 보니 무슨 위기탈출 넘버원 수준이다. 근데 요즘 친구들은 위기탈출 넘버원을 모르겠지. 아무튼, 베이킹이 망하지 않으려면 주의하고 신경 써야 할 사항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모든 조건을 지키고도 손재주가 없어서 망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나는 인터넷에서 아주 귀여운 병아리 모양의 만쥬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원래 대부분의 비극은 멈춰야 할 때 그러지 못해서 시작다. 나는 그 귀여운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만쥬에 들어갈 재료를 샀다. 사실 조리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틀도 필요 없었다. 그저 반죽을 만들고 만두처럼 안에 앙금을 넣고 손으로 빚어서 구운 다음, 젓가락을 불에 달궈 눈을 표현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오븐에서 꺼낼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뭐지? 젓가락을 가스레인지 불에 달구면서도 갸우뚱했지만, 눈을 그리면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달궈진 젓가락으로 지져서 눈을 만들어 주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젓가락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니 남은 병아리들도 모두 눈을 만들어 주었다. 그 결과, 웬 진시황릉의 군대 같은 기묘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포장용 상자를 병마용갱으로 만들어버린 병아리들 눈이 나를 너무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어서 입에 집어넣는 순간까지도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이 만쥬들이 꿈에 나올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내가 다시 만쥬를 만드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병아리인가 병마용인가
꿈에 나올 것 같은 병아리들


 나는 베이킹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블로그와 유튜브의 여러 명의 스승님께 화면 너머로 배우다 보니 뭔가가 조금씩 부족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완벽주의 성향까지 있어서 도자기 장인도 아니면서 혼자 장인정신을 발휘해 결과물을 품평하게 된다. 뭐 어디 대회에 출품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특히 선물하기 전에는 항상 굽고 먹어보고, 다음 날 아침에 포장하기 직전까지 먹어보고 선물할까 말까 고민한다. 혹시 내가 괜히 음식물 쓰레기를 주는 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주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게 트루먼 쇼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다. 나도 안다. 내가 생각이 너무 많다는 . 사실 그게 내가 베이킹을 좋아하는 이유다. 만드는 동안 잡생각이 없어진다는 . 하지만 그래도 선물하기 전에 항상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토이스토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볼 때마다 가슴 찡한 장면은 버즈가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있게 추락하는 거야. (This isn’t flying. This is falling with style.)"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베이킹을 하다 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다. 왜냐면 버터가 생각보다 비싸서 ‘안 돼, 내 재료비!’하고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하지만 실패로 배우는 게 생기니 그 정도 매몰비용은 눈물을 머금고 잊으려 노력하며 내 레시피노트, 아니 실험일지에 기록한다. 원래 레시피는 190도에서 35분 굽지만 우리 집 오븐에서 그렇게 구우면 타니까 다음에는 10도 낮춰서 굽거나 굽는 시간을 줄여보자,라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날지는 못했지만 멋있게 추락하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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