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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May 31. 2023

어떻게 입맛이 변하니

건포도, 녹차 맛, 가지와 올리브

 어떤 음식이건 좋다는 사람과 싫다는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하다못해 치킨도 호불호가 갈리니까. 모두에게 사랑받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유독 호불호가 심한 종류가 있다. 민트초코, 뜨거운 파인애플, 탕수육 부먹과 찍먹 같은 경우는 호불호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면 불호가 압도적으로 많은 음식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녹차 맛, 가지, 건포도 같은 건과일, 올리브 등이 그렇다. 나는 녹차 맛과 가지, 올리브를 예전에는 정말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싫어하다가 지금은 아주 좋아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건포도와는 서먹하다.      


 항상 궁금했다. 대체 멀쩡한 포도를 왜 말려서 빵에 넣는 짓을 하는 걸까. 말리면 당도가 증가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빵에 들어간 건포도는 식욕을 떨어뜨렸다. 남동생 역시 건포도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건포도가 든 롤케이크에서 항상 건포도를 쏙 빼고 먹는 동생이 어느 날 써브웨이에서 오트밀 레이즌 쿠키를 사 왔다. 나는 동생의 예상치 못한 메뉴 선정에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야, 너 건포도 싫어하지 않아?”     

“응. 싫어하는데?”     

“근데 그거 왜 샀어?”     

“?”     


 속으로 ‘이 인간… 뭐지?’ 했는데 알고 보니 레이즌(raisin)이 건포도인 걸 몰랐다고 한다. 하긴 생각해 보니 나도 레이즌이라는 단어를 수능 영어를 공부하며 배운 것 같지는 않고, 베이킹에 관심을 가지고부터 알게 된 듯하다. 어쨌든 이 녀석은 오트밀 건포도 쿠키라고 쓰여있었으면 이 쿠키를 사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원효대사 해골물도 아니고 불시에 깨달음을 얻은 동생이 금식을 선언해서 결국 내가 먹었다. 호호. 바보 같은 녀석. 오트밀 레이즌 쿠키는 건포도인걸 알아도 맛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망고를 제외하면 건포도뿐만 아니라 말린 과일류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화과 깜빠뉴를 먹고 깨달았다. 아, 이래서 과일을 말려서 먹는 거구나! 말린 무화과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무화과가 들어있는 빵을 한동안 엄청나게 사 먹었다. 이제는 아예 1kg짜리 건무화과를 사서 와인 절임을 왕창 만들어 냉장고에 쟁여놓고 먹는다.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레드와인과 설탕만 있으면 된다. 커다란 냄비에 와인:무화과:설탕 = 1:1:0.5 비율로 넣고 와인이 약간 시럽처럼 될 정도로만 졸이면 끝. 취향에 따라 시나몬을 추가해도 좋다. 무화과 와인 절임은 호밀빵이나 통밀빵에 얹어 먹거나 샐러드에 곁들여 먹어도 되고, 사실 그냥 집어먹어도 맛있다. 베이킹에 넣으려면 조금 더 많이 졸여서 휘낭시에나 파운드, 마들렌에 넣으면 좋고, 크림치즈와 함께 마카롱 필링을 만들어도 아주 맛있다.


무화과 와인절임과 크림치즈를 듬뿍 넣은 휘낭시에


 쑥은 쑥떡이나, 찰떡 아이스 같은 아이스크림에 들어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기도 하고 좋아했는데, 녹차 맛은 이상하게 풀 뜯어먹는 기분이 들어 영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생 때, 지금은 단종된 스타벅스의 녹차 프라푸치노를 우연히 먹게 되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 뒤로 온갖 녹차 맛 디저트를 섭렵하고 다녔더랬다. 올리브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피자에 들어있는 올리브도 싫었고, 토마토소스에 몇 개 들어있는 올리브도 싫었다. 이걸 굳이 왜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올리브 치아바타를 우연히 먹고부터  올리브홀릭이 되었다. 이제는 베이글을 살 때도 꼭 올리브가 들어간 베이글을 고르고, 유리병에 든 올리브를 집에 구비해 놓고 콥샐러드나 올리브 치아바타를 만들어 먹는다. 내가 먹고 싶은 만큼 올리브를 가득가득 넣어서.


 10년 전의 나는 내가 내 의지로 가지를 먹게 되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어왔는데, 초밥집에서 데리야끼 소스를 발라 토치로 구운 가지 초밥을 먹고부터 가지에 꽂혔다. 이제는 중국음식점에 가면 어향가지를 꼭 시키고, 집에서는 라따뚜이나 가지 라자냐를  만들어 먹는다. 재미있는 건 입맛이 바뀐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빠도 입맛이 변했다. 단 음식을 싫어하던 아빠는 커피를 내리는 취미를 가지고부터 디저트를 즐기게 되었다. 베이킹이 취미인 딸과 아주 완벽한 파트너다. 매일 아침 원두를 갈아 직접 내린 커피와 내가 만든 빵을 먹는 게 요즘 아빠의 낙이다. 오히려 단 음식을 잘 못 먹게 된 내가 설탕을 너무 줄여서 빵을 만들면, 아빠는 조금 더 달았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아빠는 이제 내가 이번에 참고한 레시피가 이전과 다르다는 점까지 눈치챈다. 이번보다 저번에 만든 시폰이 더 촉촉하다던가, 이번에 만든 호두파이가 더 바삭하다거나 하는 시식평으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새삼 신기하다. 엄청나게 편식을 하던 내가 이전에는 아주 싫어하던 재료들을 먹게 되고, 나이 들면 입맛이 변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점이. 앞으로 또 어떤 재료들을 좋아하게 될지 기대도 되고 궁금하다. 과연, 지금도 여전히 싫어하는 미역 줄기와 파프리카도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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