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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Jun 12. 2023

태운 게 아니라 의도한 겁니다

바스크 치즈케이크와 까눌레

 먹지 마, 그거. 탄 부분에 발암 물질 있대.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끝부분이 약간이라도 타면 그 부분은 먹지 말라가위손처럼 현란하게 탄 부위를 잘라냈다. 그래선지 조금이라도 탄 음식을 입에 넣으려고 하면 아빠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라서 묘하게 죄책감이 든다. 노릇노릇한 건 맛있지만 탄 음식은 쓰다. 그리고 그 둘은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탄 것’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는 건 외줄 타기처럼 아주 아슬아슬하다. 탄 음식은 타지 않은 부분에도 그 까만 향을 전파하며 자신의 존재를 요란하게 알린다. 덜 익은 빵은 오븐에 조금 더 구우면 되지만, 탄 빵은 도무지 수습할 방법이 없다.


 어느 날 카페에 갔는데, 윗면이 까만 치즈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뭐야, 저게? 탔는데?

 알고 보니 고온에서 태우듯 굽는 ‘바스크 치즈케이크’ 유행하고 있었다. 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일부러 태운 디저트가 유행이라니 정말 유행은 무슨 기준인지 알 수가 없구나 싶었다. 그러다 유튜브 베이킹 채널 여러 곳에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만드는 영상이 올라오자 그제야 맛이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맛일까? 영상을 보니 필요한 재료는 몇 개 되지 않았다. 크림치즈, 설탕, 계란, 생크림. 끝. 공정도 간단했다. 크림치즈를 부드럽게 풀어서 설탕과 섞고, 계란 넣고, 마지막에 생크림과 섞어서 오븐에서 굽는다. 오케이, 쉽네. 만들자!


바스크 치즈케이크. 생김새는 이래도 맛있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공정은 쉽지만 크림치즈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과정이 무척 힘들다. 게다가 재료들을 넣고 섞다 보면 꼭 덜 풀어진 크림치즈 알갱이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지만 아무리 방법을 바꿔 시도해도 알갱이가 조금씩은 생겨서 이제는 그냥 마지막에 체로 한 번 걸러 알갱이들을 걷어내고 다시 한번 풀어준다. 240도 내외에서 굽는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구워지는 동안 연노란색 반죽이 오븐의 열기에 그을려 노릇노릇해졌다 점점 까맣게 변한다. 오븐에서 꺼내기 전 틀을 살짝 흔들어봤을 때 반죽이 조금 찰랑거리는 상태에서 꺼내어 식히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구웠을 때보다 훨씬 더 촉촉하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오븐에서 꺼낸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틀에서 바로 분리하지 말고 상온에서 틀을 맨손으로 잡아도 뜨겁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식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혀 다음날 꺼내 먹는다. 사실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표면의 껍질만 종잇장처럼 얇게 탄 거라 쓴맛보다는 군고구마 같은 구수한 향이 난다. 부드러운 치즈케이크와 아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맛이다.


치즈케이크를 자를 때 불에 달군 칼을 사용하면 단면이 깔끔하게 잘린다.


 바스크 치즈케이크 외에도 일부러 태우듯 굽는 디저트가 있는데, 내가 대학로에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꼭 사 오는 ‘까눌레’다. 까눌레와의 첫 만남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우연히 들른 디저트 가게에서 친구가 까눌레를 먹자고 했고 나는 뭔진 모르겠지만 그러라고 했다. 디저트가 나오자, 나는 눈을 의심했다.

 뭐야? 숯 아냐?

 아무리 봐도 홀라당 탄 것 같은, 나 혼자 왔으면 절대 주문하지 않았을 비주얼이었다. 까눌레는 생김새만큼 식감도 희한했다. 겉은 빠작하고 속은 말캉해서 도무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세상 처음 먹어보는 식감과 맛이었다. 친구는 까눌레를 한 번 먹고 나면 어느 날 문득 ‘아, 까눌레 먹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거라고 했다. 그리고 친구의 말이 옳았다. 까눌레는 그 맛이 가끔씩 그리워졌다. 그 뒤로 까눌레를 파는 곳이 있으면 한두 개씩 사 오곤 했는데, 아주 맛있는 집을 찾지는 못해서 한참을 방황했다. 너무 탄 맛이 나는 곳도 있었고, 껍질이 너무 질겨 이빨에 자꾸 끼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 대학로에서 까눌레 맛집을 발견하고부터는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거의 8개씩은 사 온다. 전염병이 돌면서 예전처럼 대학로에 자주 가지 못하게 되자, 까눌레가 너무 먹고 싶어진 나는 결심한다. 만들자.


 그런데 까눌레는 재료도 도구도 절차도 어느 것 하나 간단한 게 없었다. 동틀? 동으로 메달 말고 틀도 만들어? 밀랍?? 그거 미이라 만들 때 쓰는 거 아냐? 뭐? 럼주??? 그렇지만 나는 까눌레 가게를 차릴 게 아니라 어쩌다 한번 먹을 건데 초기 자본을 그만큼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대충 비슷한 맛을 구현해 내는 게 목적이었기에 저렴한 틀과 타협한 재료들로 굽기로 했다. 동틀 대신 코팅틀을, 밀랍 대신 버터를, 럼주 대신 럼레진을 썼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실패가 이어졌다. 물론 너무 안일한 재료와 도구를 사용한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까눌레는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본 품목 중 제일 까다로웠다.


쑥 까눌레. 하도 실패해서 제대로 찍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


 까눌레는 반죽을 이틀가량 냉장고에서 숙성시켜야 한다. 당장 먹고 싶어도 당일에는 못 먹고 이틀 뒤에 먹을 수 있다. 그뿐인가? 냉장고에서 이틀을 숙성한 반죽은 굽기 세네 시간  냉장고에서 꺼내 찬기를 제거한 다음 틀에 부어 오븐에 구워야 한다. 굽기 전의 까눌레 반죽은 우유 같은 액체다. 굽기 전의 에그타르트 필링과도 비슷한데, 에그타르트 필링은 타르트지에 담겨있으면 되지만 까눌레는 의지할 구석이 아무 데도 없다. 까눌레가 혼자서 형태를 유지하려면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고온에서 빠르게 태우듯 껍질을 만들고, 온도를 낮추어 더 익혀준다. 까눌레를 굽고 나면 오븐 안팎으로 아주 난리가 난다. 오븐 안은 까눌레가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기름 성분이 여기저기 튀 난리고, 주방에는 탄 냄새가 가득하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실패와 난리를 겪으며 내 실험일지에는 다양한 데이터가 쌓였지만, 까눌레는 도무지 결과가 개선되지 않았다. 세상에. 마카롱보다 더 까다로운 품목이 있을 줄이야. 여러 번의 실험 끝에 결국 나는 다짐한다. 사 먹자.


 엄마는 내가 까눌레를 사 온 것만 해도 여섯 번 이상이고 집에서 시도한 것만 열 번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까눌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왜, 그거 있잖아. 네가 사 오기도 하고 만들기도 했던 거. 겉에는 탄 것 같은데 속 떡 같은 거!”

 그럼 나는 가족오락관을 하는 기분으로 정답을 외친다.

 “아, 까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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