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 필기시험은 패스했으나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실기시험 준비가 계속 미뤄졌다. 그래도 2년은 기니까 미래의 내가 하겠지 했으나, 학생일 때의 2년과 직장인일 때의 2년은 흐르는 속도가 전혀 달랐다. 이상하게도 하루는 너어어어어어무 긴데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6개월, 1년이 지나고 필기시험 만료일이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더는 미래의 나에게 미룰 수 없었다. 부랴부랴 큐넷(Q-net)에 들어가 제과기능사와 제빵기능사 실기 시험 품목을 확인했다. 제과에는 내가 집에서 만들어 본 품목이 꽤 있었다. 하지만 제빵은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를 써서 손반죽으로만 하다가, 생이스트와 반죽기를 써서 빵을 만들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상대적으로 익숙한 제과기능사 실기에 먼저 도전하기로 했다.
실기시험은여러모로 걱정이었다. 이름도 못 들어본품목도 있었고, 집에서 소량씩 만들다가갑자기 대량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점도부담스러웠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가능할지도의문이었다. 결과물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과정까지 흉내 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퇴근하고 학원까지 다니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결국그냥 한 번시험을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일단시험을본 다음, 혼자 해도 어찌어찌 이빨이 들어갈 것 같으면 다시 준비해서 제대로 보자.시험이 어떻게 진행되고 믹싱기와 오븐은 어떻게 쓰는지 정도만 가볍게 보고 오자.분명 이때까지는 이렇게 욕심이 없었다.
그렇게 일단 시험을 접수하기로 했는데 웬걸, 접수를 못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접수하는 날 ‘맞다, 시험 접수해야지, 참’하고 느지막이들어갔는데 (당연히) 남은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실기시험은 스무 명씩만 보기 때문에 원래 자리도 얼마 없는데,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n년차 연뮤덕. 여전히 티켓팅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지겨울 만큼은 해봤다고..! 그렇게 다음 시험 접수일. 티켓팅할때처럼 서버 시간을 켜고 대기하다 정각이 되자마자 들어가 접수했다. 결과는성공! 펜은 칼보다 강하고, 팬도 칼보다 강하다. 덕질 경력은 이렇게 생각보다 삶의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된다.
2022년도 기준 제과기능사 실기 시험 품목은 버터스펀지케이크(공립/별립), 소프트롤케이크, 젤리롤케이크, 초코롤케이크, 쇼트브래드쿠키, 버터쿠키, 시퐁케이크, 파운드케이크, 초코머핀, 마데라케이크, 과일케이크, 호두파이, 사과파이, 타르트, 치즈케이크, 슈, 브라우니, 마드레느, 다쿠와즈 이렇게 20가지이다. 이 중 하나가 출제자가~ 좋아하는~ 랜덤~ 시험~으로 나오면, 해당 품목을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어 제출하면 된다. 2023년도에는 사과파이가 사라지고 흑미롤케이크가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공단에 롤케이크 덕후가 있는 듯하다.
제과기능사 실기 시험지는 큐넷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필요한 재료와 양은 시험지에 모두 나와있다. 제과는 크림법, 공립법, 별립법, 시폰법 등 공정방식이 매우 다양한데, 어떤 방식으로 제조하라고도 시험지에 나온다. 내가 외워가야 할 건 만드는 순서, 굽는 온도, 일부 품목의 비중 정도이다. 하지만 재료가 시험지에 나와있으니 만드는 순서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을 테고, 오븐 온도는생각이 안 나면 윗불 180도 아랫불 160도 정도에서 굽거나 다른 오븐을 슬쩍 참고(?) 하기도 하는 모양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버터쿠키는 수작업으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버터를 풀어 크림화해야 한다. 거기다 그 되직한 반죽을 짜려면 손힘과 팔힘이 엄청 들어간다. 치즈케이크는 손으로 직접 머랭을 쳐야 한다. 뭘까. 사실 체력 테스트를 포함한 시험인가? 게다가 두세 시간을 앉지도 못하고 긴장한 상태로 빵을 만들어야 한다니. 과연몸이 나빠서 머리가 고생하는내가, 나의 허름하고 변변찮은 팔근육과손목과 허리는 이 난관을헤쳐나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