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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Jun 21. 2023

벼락치기 인생의 제과기능사 도전기-실기편(2)

실기 준비부터 자리 추첨까지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올해 출제된 문제를 분석했다. 친절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한 덕분에, 연말에 시험을 보는 나는 기존에 출제된 항목에 대한 데이터를 꽤 많이 모을 수 있었다. 내가 보는 지역의 시험장에서는 한 달에 시험이 평균 서너 번 정도 있었다.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내가 볼 시험장에서 당해연도에 출제된 품목들을 전부 엑셀에 입력해 출제 횟수의 부분합을 계산했다. 아무래도 세 번 이상 나왔거나 지난달, 지지난달에 출제된 품목은 나올 가능성이 낮을 테니 한 번밖에 출제되지 않은 품목과 나온 지 오래된 품목을 우선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이 품목들은 집에서 반드시 실습해 보고,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나머지 품목들도 연습해 보기로 했다. 시험 때 보는 양 그대로 만들려면 우리 집 오븐으로는 택도 없어서 1/2 배합이나 1/4 배합으로 연습했다.


 요즘은 정말 취미 부자인 내가 큰돈을 들이지 않고 새로운 취미를 배우기에 너무 좋은 세상이라는 걸 시험 준비 새삼 다시 느꼈다. 특히 유튜브가 잘 되어있어서, 실기를 준비하면서 실습 재료비와 시험 준비물 구입하는 데 말고는 별도로 돈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연습에 쓰인 재료비만 해도 이미 많이 들어가기는 했다...) 제과제빵 관련 유튜버도 굉장히 여럿이었는데, 일단은 필기시험 때 도움을 받은 빵선생님의 강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실기 공부에는 총 세 개의 채널을 참고했다.

빵선생의 과외교실 : 본격적으로 실기 연습에 들어가기 전, 전체적인 과정을 훑어보고 틀을 잡기에 좋다.

이발소 베이커리 : 꿀팁이나 주의사항 같은 점을 체크하기 좋다.

베이커리넷 : 실제 시험을 보는 것처럼 시뮬레이션하기 매우 좋다. 문제는 기능장님이 시연하시다 보니 영상으로 보면 굉장히 쉬워 보이는데, 그건 기능장님이 능숙하셔서 그런 거고 실제로 따라 해 보면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 그러니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저분은 고수고 나는 허접이라는 걸.


 모든 품목을 여러 번 만들어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한 품목을 만드는데 두세 시간가량이니 퇴근 후 집에 가면 하루에 한두 개밖에 연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나 이동시간에 틈틈이 보려고 요점 정리를 했다. 일단 A4용지를 세로로 길게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만드는 과정을, 오른쪽에는 그때 필요한 도구를 적었다. 다 쓴 도구는 치워놓고, 계속 써야 할 도구는 그대로 둬야 하니까 해당 도구가 어느 시점에 필요하며 언제까지 쓰이는지를 체크했다. 자료가 남아있으면 좋았을 텐데 합격 발표 기다리는 동안 너무 속을 끓여서 합격자마자 파쇄기에 넣고 전부 갈아버다. (이놈의 성질머리...)


 시험 5일 전, 온갖 합격 수기를 검색해 보며 실기시험에 필요한 준비물을 하나둘 챙다. 시험장마다 구비된 물품에 차이가 있어 개물품을 안 쓰고 오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유비무환이 습관이라, 혹시 모를 상황(옆 사람이 뭘 안 가져왔다던가)에 대비해 개인 물품을 넉넉히 챙겼다. 그런데 막상 시험장에 가보니 웬만한 건 다 있어서 괜히 들고 갔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 하지만 짐은 가벼운데 마음이 불안한 것보다, 짐이 무거워도 마음이 편한 걸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그냥 가져가고 싶은 거 다 챙겨가시길. 아무래도 손에 익은 도구를 사용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도 하니까.


 내가 챙긴 준비물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조리도구

(1) 계량용

일회용 용기(다이소 우동그릇/밥그릇), 계량스푼, 쟁반, 일회용 숟가락, 1L 계량컵

(2) 조리용

스텐볼 3개, 고무 주걱 2개, 실리콘 주걱 2개, 나무 주걱 1개, 거품기 1개, 체, 스크래퍼 2개

(3) 비닐류

김장비닐, 짤주머니(천/비닐 모두 챙김), 위생 장갑

(4) 기타(품목별로 필요한 도구)

과도(사과파이용), 포크(쇼트브레드 무늬용, 사과파이 무늬용), 분당체(다쿠아즈용), 테프론시트 2장(다쿠아즈와 슈), 분무기(슈에 물 뿌릴 때), 쇠젓가락(슈에 크림 넣을 구멍 뚫는 용), 면포(롤 케이크 말 때), 이쑤시개(초코머핀 익었나 확인할 때), 붓(계란물 바르는 용)


2. 청소용품

면행주 5장(시폰케이크가 나오면 행주로 식혀야 하므로 5장 이상 챙길 것)

키친타월, 물티슈, 일회용 행주, 수세미(설거지용)

오븐장갑(목장갑 세 겹. 두 겹은 뜨겁고 세 겹은 불편한데, 뜨거운 것보단 불편한 게 낫다.)


3. 문구류

볼펜(유산지 재단 및 메모용)

커터칼, 가위(유산지 재단)

검정 봉투(조리대 옆에 붙여두고 쓰레기통으로 사용), 스카치테이프(봉투 부착)

계산기(비중 계산), 온도계(온도 측정)

라벨지(계량한 항목이 어떤 재료인지 헷갈리지 않게 붙여두는 용도)


4. 그 외 시험 전에 사용할 물품들 : 위생복, 위생모, 앞치마, 실핀, 머리망, 요점 노트



 그리고 드디어 시험 당일. 평일이라 연차를 냈는데 제과기능사 시험오전 8:30분 시작이라 출근할 때보다 더 분주했다. 처음엔 가볍게 보고 올 생각이었지만 준비하다 보니 점점 합격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연차 쓴 게 아깝지 않게 합격하면 좋으련만. 시험장에 도착하자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긴장감은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드는 감정이라고, 네가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썼으나 나는 오은영 박사님도 강형욱 훈련사님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었다. 오랜만에 아주 낯선 환경에 놓이자, 몸이 적응을 못 해 엄청나게 떨렸다. 대기실에 짐을 놓고 화장실에서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개인물품에 롱패딩까지 짐이 아주 많았다. 겨울에 연극 뮤지컬을 보러 다니다 보면 패딩을 접는 노하우가 생기는데 오늘도 그렇게 롱패딩을 접어놓았다. 역시 덕질은 유용하다니까.


 요점 정리한 자료를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뇌는 더 이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하지만 뇌가 뱉어내든 말든 눈은 베이커리넷 기능장님의 시연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감독관님이 대기실로 들어오셨고 자리 추첨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내가 본 시험장에서는 홀수 번호가 오븐 쪽 자리, 짝수 번호가 믹싱기 쪽 자리였다. 제발, 오븐과 가까운 홀수 자리 걸리기를! 감독관님이 명단과 내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해 보시고는 종이가 든 상자를 내미셨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뽑았다. 오븐 쪽 자리, 홀수 번호이기는 했다.


 1번.

 감독관 바로 앞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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