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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Jul 22. 2023

벼락치기 인생의 제과기능사 도전기-실기편(3)

시험품목으로 슈가 나왔다

 소원을 빌 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는데.

 ‘불로소득 50억을 가지고 싶어요’가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없는 깨끗한 세후 50억이 제 명의의 통장에 꽂혔으면 좋겠어요’처럼. 1이 적힌 종이를 보고 날것의 감탄사가 나올 뻔했으나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자리 번호가 적힌 명찰을 달고 개인 물품을 챙겨 시험장에 들어갔다. 감독관님이 있는 책상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이런.. 생각보다 너무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재료는 테이블 가운데를 가로질러 있었는데 종류가 많지 않았다. 재료가 많지 않은 목이설마. 그때 감독관님이 각자의 테이블 위에 시험지가 있으니 보고 필요한 도구들만 꺼내고 나머지는 집어넣으라고 하셨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시험지를 쳐다봤다.

 슈.

 역시. 예상 품목이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아니기를 바랐는데. 슈는 20가지 품목 중에서 어려운 편에 속한다. 반죽의 상태를 봐가며 ‘적당히’ 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망한 게 너무 티가 나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어 오븐 안에서 슈가 부풀어 오르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계량 시작되었다. 슈는 재료가 계란, 버터, 소금, 밀가루, 물 이렇게 5개라 계량할 수 있는 시간이 5분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계량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손을 열심히 씻었는데, 미리 씻어둘걸 그랬다. 시간이 이렇게 촉박할 줄이야. 버터를 계량하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계속 허둥거렸다. 물을 받으려고 하는데 시간이 종료되었다고 손을 떼라고 하셨다. 계량을 다 마친 사람만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는데 정신도 없고 기운이 빠져서 의자에 무의식적으로 주저앉으려다가 감독관님께 저지당했다. 계량한 모든 재료를 검사받지는 않고, 감독관이 지정하는 재료 3개를 랜덤으로 검사받았다. 검사받을 재료는 계란과 밀가루, 물이었다. 계란은 개수만 맞추면 되는 거라 합격했고, 딱 맞게 가져온 밀가루는 다른 그릇에 옮겼더니 1g이 부족했고, 물은 아예 계량하지 못했다.

 망했.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은 계량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시작부터 멘탈이 흔들렸다. 계량에 실패한 사람들은 시험시간이 시작되면 계량하지 못한 재료들을 계량하면 된다. 계량을 마치고 일단 오븐을 예열다. 제과는 오븐을 예열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오븐부터 예열해 놓는 게 좋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마음을 다잡고 스텐볼을 꺼냈다. 계량한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가스 불 위에서 볶았다. 이 과정을 밀가루를 호화시킨다고 하는데, ‘적당히’ 호화가 되면 꺼내서 계란을 ‘적당히’ 넣으면 된다. 슈가 어려운 이유는 이 ‘적당한’ 지점을 찾기가 영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계란을 정해진 개수만큼 넣으면 되는 다른 품목과 달리 슈는 반죽의 상태를 봐가며 내가 계란을 조절해서 넣어야 한다. 반죽이 스텐볼에 얇은 막을 형성할 때쯤 가스 불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 옆 사람이 짐을 챙겨서 시험장을 나가고 있었다. 아니, 왜…? 저 사람 계량도 다 성공했었는데? 포기인지 실격인지 알 수 없어 2차로 멘탈이 흔들렸다.


 다시 진정하고, 계란을 한 개씩 넣어가며 반죽을 섞었다. 베이커리넷의 시연 영상에서 계란 껍질을 차곡차곡 놓으라는 기능장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렇게 했다. 나는 기능장님의 수제자라는 마음으로 차분하고 자신감있게 하려 노력했다. 계란을 다섯 개 정도 넣었더니 적당해 보이는 농도가 되었다. 좋았어, 이제 팬닝한다! 팬 위에 테프론 시트를 깔고 슈 반죽은 짤주머니에 담아 팬닝 하려고 하는데, 감독관이 쓱 오시더니 반죽이 끝난 거냐고 물으셨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좀 보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나만 팬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아직 반죽을 호화하고 계란을 넣고 있었다. 뭐지? 왜 나 혼자 팬닝을 하고 있지?? 내가 혹시 뭘 빼먹었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감독관님은 내 반죽을 보시고 종이에 뭔가를 적더니 다른 수험자에게로 가셨다.


 슈나 쿠키류의 대량생산에서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팬닝이다. 간격이 너무 넓으면 여러 판을 구워야 하므로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집에서 굽는 거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여유 있게 떨어뜨려 구우면 되지만, 자격증 시험에는 제한 시간이 있다.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고 구우면 시간 내에 제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다닥다닥 붙여서 구우면 근처에 있는 슈와 쿠키들이 결합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적당한 간격으로 팬닝해 구워야 다. 오븐에는 한 번에 두 판이 들어간다. 그래서 두 판으로 팬닝을 끝내려고 했는데 반죽이 애매하게 남아버렸다. 7, 8, 7, 8, 네 줄로 짰는데 너무 작게 짰는지, 한판을 더 구워야 할 상황이었다. 세상은 역시 내가 계획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구먼. 작게 한숨을 내쉬고 짤주머니를 일단 한쪽에 치워두었다.


 팬 위에 가지런히 팬닝한 반죽 위에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내가 가져간 분무기보다 시험장에서 제공하는 분무기가 크길래 시험장걸 사용했는데 이 녀석… 분무기인척 하는 물총이었다. 혹시 몰라서 개수대에 쏴보기를 잘했지 큰일 날 뻔. 조심조심 팬닝한 반죽에 물을 뿌려주고 팬에 고인 물을 개수대에 조심조심 버렸다. 시험장용 오븐팬은 무게가 상당해서 팔이 후들거렸다. 심호흡을 하고 오븐에 넣었다. 팬이 진짜 무거워서 한 개씩 옮겼다.

 제발.

 제발 무사히 부풀어 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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