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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Aug 14. 2023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실패

마카롱과 다쿠아즈

 베이킹을 하다 보면 깨닫는다. 이게 이렇게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재료가 비싸거나,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거나, 둘 다거나. 작고 동그란 모양이 귀엽지만, 가격은 전혀 귀엽지 않은 마카롱은 만들기가 꽤나 까다롭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금이 가고 터지고 덜 익거나 쪼그라들고 속이 텅 비어버린다. 그래서 마카롱을 만들 때면 정말이지, 도자기 굽는 장인이 된 기분이다.


 드라마 도깨비에는 앞부분만 들어도 ‘아 그거!’ 할 정도로 아주 유명한 대사가 있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는 지은탁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고 하지만, 마카롱은 날이 너무 좋거나 날이 너무 좋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망한다. 그렇다고 일반 가정집에서 마카롱을 굽겠다고 에어컨과 제습기를 돌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비가 오는 날이나 너무 덥거나 너무 춥고 너무 건조한 날에는 다음을 기약하며, 적당한 기온의 적당히 선선한 날을 골라 마카롱을 만든다.


로투스 마카롱. 필링을 통통히 채우고 로투스 조각을 올려주었다.

 마카롱을 만들려면 먼저 머랭을 쳐야 한다. 머랭은 달걀흰자에 설탕을 섞어 단단하게 거품을 낸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 따라 프렌치 머랭(일반 머랭), 이탈리안 머랭, 스위스 머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프렌치 머랭은 거품을 낸 흰자에 설탕을 넣어가며 만드는 일반적인 머랭이다. 이탈리안 머랭은 거품을 낸 흰자에 120도 정도로 끓인 설탕 시럽을 조금씩 부어가며 섞어서 만든다. 셋 중 가장 단단한 스위스 머랭은 흰자와 설탕을 혼합하여 중탕하면서 거품을 내어 만든다. 마카롱은 세 종류의 머랭을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만들면 된다. 다만 주의할 점은 모든 머랭은 만들 때 흰자에 노른자가 아주 조금이라도 섞여 있거나, 그릇이나 도구에 기름 성분 등의 불순물이 묻어있다면 거품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드시 깨끗한 그릇과 깨끗한 도구, 온전한 달걀흰자만을 사용해야 한다.


 마카롱을 만들 때 가장 귀찮은 점은 바로 아몬드 가루를 체 치는 일이다. 밀가루보다 입자가 굵은 아몬드 가루를 체 치고 있으면 ‘아…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을 이겨내고 열심히 체 친 아몬드 가루와 슈가 파우더를 머랭에 넣고 섞은 다음, 열심히 거품을 낸 머랭의 거품을 다시 적당히 꺼뜨리는 ‘마카로나주’ 작업을 해준다. 마카로나주 작업을 하고 나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질 것 같던 머랭 반죽이 살짝 되직하게 흐르는 상태가 된다. 마카롱의 동그란 껍질을 꼬끄라고 하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꼬끄를 만들기 위해서는 팬닝한 꼬끄를 선선한 곳에 한 시간가량 말려야 한다. 그렇게 꼬끄를 건조하다 보면 반죽을 만져도 손에 묻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이제 곧 마카롱을 오븐에 넣을 시간이다.


구워진 꼬끄들을 늘어놓으면 아주 뿌듯하다

 봉긋 솟아오른 꼬끄 옆의 프릴모양을 삐에라고 한다. 삐에가 예쁘게 만들어진, 잘 구워진 꼬끄들을 식힘망 위에 늘어놓으면 매우 뿌듯하다. 여기저기 숨어있는 함정을 잘 피해 목적지에 도달한 기분이랄까. 하지만 운이 나쁘게 함정에 그대로 빠져버린 날도 많다. 속이 비거나 표면이 터져버린 꼬끄들. 하지만 망했어도 맛은 대충 비슷하고, 선물할 게 아닐 경우에는 그냥 ‘뭐, 이런 날도 있지’하며 적당히 필링을 채워 내 입으로 넣어버린다. 모양이 망가진 꼬끄를 시리얼처럼 우유에 말아먹어도 맛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검증해 보지는 못했다. 근데 뭐… 당연히 맛있겠지. 세상에는 굳이 해보지 않아도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라즈베리잼을 넣은 다쿠아즈. 백년초가루로 색을 냈더니 아주 예쁘다.

 다쿠아즈 역시 달걀흰자로 머랭을 쳐서 만드는 디저트인데, 마카롱과 다쿠아즈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은 다쿠아즈 파다. 일단 마카롱보다 만들기가 덜 어렵고, 실패할 확률도 낮고, 마카롱보다 슈가파우더가 적게 들어가서 덜 달고, 한입 물었을 때 구름을 베어 문 것처럼 폭신폭신한 느낌이 좋다. 제과기능사 시험 품목이기도 한 다쿠아즈는 틀에 짤주머니로 짠 반죽을 스크래퍼로 깎아서 반듯하게 각진 모양으로 만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스크래퍼를 이용하지 않고, 짤주머니로 짜낸 그대로 도톰하게 만드는 편이 귀엽고 폭신해서 더 좋다. 마카롱이나 다쿠아즈를 만들 때면 필링에 노른자가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노른자가 조금은 남는다. 이렇게 남은 노른자들은 내 체력과 시간이 되면 며칠 뒤에 에그타르트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계란말이나 계란찜이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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