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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May 16. 2023

고도로 정밀한 베이킹은 실험과 다르지 않다

베이킹은 과학이다

 얼마 전 친구와 밥을 먹다가 친구의 친구(=남)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친구의 친구는 화학을 전공해서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최근에 사표를 내고 빵집을 차렸다고 했다. 친구는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기로 한 그 친구가 신기하다고 했고, 나는 고도로 정밀한 베이킹은 과학실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물론 결과물을 입에 넣어도 되냐 안 되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요리는 과학이다.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과학이다. 요리는 정성이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을 알면 베이킹의 전반적인 과정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베이킹을 하며 적어두는 기록은 아기자기한 레시피 노트보다는 실험 재료, 실험 과정, 실험 결과, 그리고 배운 점과 문제점을 기록하는 실험일지에 가깝다.


 빵은 왜 오븐에서 구워지면서 갈색으로 변하는가? 어릴 적 국자에 달고나를 만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불에 달궈진 국자 위의 설탕은 녹으면서 점점 갈색으로 변한다. 이렇게 설탕 같은 당류에 열을 가했을 때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캐러멜화 반응이라고 한다. 빵 반죽에 들어있는 설탕과 밀가루의 탄수화물은 당류이므로 빵이 구워지는 동안 캐러멜화 반응 일어난다. 밀가루에는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글루텐을 형성하는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을 포함해 알부민, 글로불린, 메소닌 같은 여러 가지 단백질 성분 들어있다. 당류와 아미노산(단백질)에 열을 가하면 역시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 현상은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부른다. 빵 반죽에는 당류와 아미노산이 모두 들어있다. 그래서 캐러멜화 반응과 마이야르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며, 오븐에 들어간 빵은 점점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군침이 도는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베이킹은 과학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빵 중 하나인 에그타르트, 그중에서도 특히 나는 마카오식 에그타르트를 좋아한다. 퍼프 페이스트리로 만들어 결대로 파사삭 부서지는 타르트지와 부드럽고 달달한 필링을 한 입 깨물면 어쩌면 행복은 지금 내 입으로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퍼프 페이스트리로 만든 타르트지는 어떻게 그렇게 겹겹이 결이 만들어지는 걸까? 퍼프 페이스트리를 만들 때는 반죽에 버터를 올리고 덮은 다음, 밀대 버터를 품은 반죽을 밀어 펴고, 수건 접듯이 아랫부분 1/3을 접고, 윗부분 1/3을 포개어 접는다. 이 과정을 3절 접기라고 하는데, 이걸 3~4회 반복하며 접고, 밀고, 접고, 밀면 수많은 반죽층과 버터층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버터가 녹으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의 체온은 버터를 녹이기에 충분한 온도라, 작업을 하다 보면 반죽 온도가 높아져 버터가 녹는다. 녹은 버터가 반죽에 흡수되면 층이 생기지 않으니, 버터가 녹겠다 싶으면 냉장고에 잠시 넣어 반죽 온도를 낮춘 다음 다시 작업해야 한다. 나는 내 수족냉증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퍼프 페이스트리를 만들면서 알았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반죽을 완성해 오븐에 넣어 구우면 버터에 들어있는 수분이 증기로 변한다. 상온에서 액체인 물은 고온에서는 기체인 수증기로 변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기체의 부피는 액체의 부피보다 크다는 사실도. 그렇게 반죽이 증기의 압력, 증기압에 의해 팽창하면 여러 겹의 결이 만들어진다. 역시 베이킹은 과학이다.


 보니 가머스 작가의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일자리를 잃고 우연한 기회에 ‘6시 저녁 식사’라는 요리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요리는 화학이라 말하며 소금을 염화나트륨(NaCl)이라 부르는 과학자가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라니,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하지만 괜찮았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에서 칠판에 ‘화학은 변화다’라 쓰고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하며 요리 프로그램을 마다. “이것으로 화학 입문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수업 끝.”

 소설에서 요리 프로그램 시청자들은 엘리자베스의 영향을 받아 용기를 얻고 도전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는 화학이고, 화학은 변화다. 이 말이 어찌나 설레던지. 베이킹을 하면서 나는 많이 변했고, 변해가는 내가 즐겁고,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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