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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May 06. 2024

에필로그

이번엔 또 무엇을 배워 볼까?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 못되어 여기저기 들쑤시며 취미 유목민으로 살아온 결과, 사람들이 “이것도 할 줄 알아요? 못 하는 게 뭐야?” 하고 놀라며 본의 아니게 재주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쁜 점이라면… 금방 드러나는 밑천 정도일까.


 내게 취미가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은 “퇴근하고 그렇게 취미생활까지 하면 안 피곤해요?”다. 안 피곤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피곤할 때도 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두 시간 넘게 빵을 만들고 수영까지 다녀오는 날에는 기절하듯 숙면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또 괜찮은 걸 보면 내가 필라테스랑 수영을 하면서 체력이 늘긴 했구나 싶다. 물론, 이건 내가 온전히 내 시간을 나에게 쓸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는 돌봐야 할 다른 존재(사람, 동물, 식물 등)가 없으니 나는 퇴근하고 누워서 스마트폰 하는 시간만 조금만 줄이면 시간을 만들 수 있다. 퇴근하고 무언가를 또 사부작거리며 하는 게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도 있지만, 성취감은 생각보다 강해서 피곤을 이겨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날마다 헤르미온느처럼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고 알차게 사는 건 아니고, 일에 지친 날에는 침대에 드러누워 내가 침대인지 침대가 나인지 모르는 상태에 접어들어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로 남의 집 고양이와 강아지를 보 힐링하면서 하루를 마치기도 한다.


 내향형 인간인 나는 스몰토크에 굉장히 취약한데, 취미가 많아지니 대화할 거리가 늘었다. 특히 수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은근히 많아서 같이 수영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 얼마 전 직장동료에게 수영을 성공적으로 영업했고, 귀여운 수모를 선물했다. 취미가 많다 보니 누가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 줄 수 있어서 좋다. 뮤지컬에 관심이 생긴 친구에게 추천 캐스팅이나 할인 정보를 공유하고, 뜨개에 도전하는 회사 동기에게 실이나 도안을 추천하고, 베이킹에 도전하는 사촌 동생에게 내가 잘 쓰지 않는 도구들을 주며 자주 보는 베이킹 유튜브 채널을 알려주고, 운동을 처음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후배에게 필라테스의 장점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좋은 건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느끼는 두려움이 줄었다는 거다. 맨땅에 헤딩하고 혼자서 땅을 파가며 공부하고 배운 짬에서 나오는 용기랄까. 나는 굉장히 신중한 편이라 한참을 생각하고 준비하느라 실행에 옮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다양한 취미를 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장점이 바로 실행력이 생겼다는 거다. 시도했다가 아니었을 때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정도의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일단 해본다. 물론 나는 이걸 할 수 있을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다 실패하면 뭐. 아, 이건 나랑 잘 안 맞는구나. 그럴 수 있지, 한다. 조금은 쿨해졌. 왜냐하면 살다 보니 못하던 게 나중에 또 되기도 하고, 싫었던 게 좋아지기도 한다는 걸 겪어왔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거짓말처럼 입맛이 바뀌는 것처럼, 인생은 참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러니 꼭 어딘가에 정착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다가 내가 지금껏 정착하지 않은 이유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하며 튀어 나갈 수 있도록.


 3n 년째 취미 생활을 떠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이제 뜨개도 할 줄 알게 되었으니 얇은 실로 레이스도 떠보고 싶고, 파이썬 같은 프로그램을 다루는 코딩도 배우고 싶고, 제2외국어로 짧게 배웠던 프랑스어 공부도 다시 하고 싶고,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밴드 악기도 배워보고 싶고, 최근 양인모의 <우아한 유령> 연주를 들은 후로 어릴 때 잠깐 배웠던 바이올린도 다시 배우고 싶어졌다. 얼마 전에 선물 받은 짙은 푸른색 잉크와 만년필로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과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를 필사하고 싶고,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그림처럼 언젠가 유화도 배우고 싶고, 도예를 배워서 물레로 도자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얼레벌레 독학해서 딴 제과기능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베이킹도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 그리고 활동적인 취미에도 관심이 생겼다. 말이라는 동물이 너무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서, 언젠가 승마 해보고 싶다. 사실 말을 타고 달리고 싶다기보다는 말이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긴 하다. 최근에 해보고 싶어진 건 클레이 사격과 국궁이다. 내 비루한 팔근육으로 총을 쏘았을 때의 반동을 이겨내고, 활시위를 당길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그것도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니까.


 필라테스와 수영을 하며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체력으로 다시 일어서본다. 이번에는 또 뭘 배워볼까? 나는 또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나를 믿고 내 가능성을 믿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즐겁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써야지. 내 삶을 한층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취미들과 함께.


사진: Unsplash의Ella Jard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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