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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Apr 15. 2024

인생 운동을 찾아서, 수영(1)

운동이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앞서 말했지만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1년 반 가까이 다닌 필라테스는 사실 재미보다는 그저 살기 위해,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난다 싶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러니 내가 발목을 다쳤는데도 스쿼시를 가겠다는 친구를 보며 이렇게 한 것은 당연하다.

 “아니, 대체 왜 운동을 그렇게까지 해…?”

 친구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스쿼시 선수도 아닌데. 아니, 선수여도 다치면 쉬어야지. 그런데 취미로 하는 운동에 부상 투혼을 하는 친구가 걱정되면서도 신기했다. 친구는 나에게 너도 너한테 맞는 운동을 찾으면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사는 동안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까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다른 친구는 귀에 피가 나도록 나에게 수영을 권했다. 모든 대화가 기-승-전-수영으로 끝났지만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운동도 싫은데 심지어 헐벗고 하는 운동?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가지도 아닌 데다가 내 체모들과 주기적인 출혈 이벤트가 도무지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더웠던 2023년 여름, 필라테스를 가려고 레깅스를 신는데 운동을 가기도 전에 땀 때문에 레깅스가 돌돌 말려서 입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옷 입는 것부터 왜 이렇게 힘드냐! 마침 1년권이 끝나가는 시기였던 지라, 더위에 돌아버린 나는 충동적으로 필라테스 대신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이성이 나에게 혼자 수영을 배우러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가족 1에게 넌지시 물었다. 같이 수영 다닐래?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웬걸. 가족 2까지 같이 다니겠다고 했다. 간다고? 이렇게 쉽게? 사실 우리 가족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데,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바다나 호수에서 수영할 기회가 있어도 수영을 할 줄 몰라서 못 들어갔던 게 굉장히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가족들과 함께 수영 초급반에 등록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등록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며 알았다. 어떤 수영장은 신규 등록 경쟁률이 엄청 치열해서 새벽 5시부터 대기를 해야 하고, 그래서 나가든 못 나가든 일단 결제를 해 놓아야 한다는 둥 엄청난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니, 이 나라는 땅이 좁아서 그런가 왜 이렇게 모든 것에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하다못해 약과를 사 먹는데도 경쟁해야 하는데 수영 초급반 등록하는데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니 머리가 아팠다. 수영장 홈페이지를 틈날 때마다 기웃거리며 초급반 모집 공고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공고가 올라온 날,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올라온 공고를 뒤늦게 확인했다. 아, 망했다. 급하게 전화를 했는데 다행히 우리 집 근처 수영장이 시설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그런지 자리가 남아 있어서 월수금 저녁 수업을 등록할 수 있었다.


 이제 장비를 구입할 차례였다. 기본적으로 수영복과 수모, 수경이 필요했다. 안경을 쓰는 나는 일반 수경을 쓸 수 없어서 근처 안경원에서 도수 수경을 주문했다. 받는 데는 일주일 정도 걸렸다. 수영복과 수모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하고 수영복을 사러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사고 싶은 수영복이 너무 많았다! 만약 수영을 배우고는 싶은데 왠지 용기가 안 난다면, 일단 수영복 쇼핑부터 하는 걸 추천한다. 수영복을 사고 싶어서 수영을 배우게 된다. 하하. 헐벗고 하는 운동 싫다고 했던 나는 어디 가고 수영복을 보자마자 물욕이 이렇게 날뛰는 건지.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놓은 후보 중에서 고민 끝에 내가 좋아하는 색의 수영복을 골랐다. 뭐, 초급반이라고 꼭 검은색 기본 수영복을 입을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드디어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수영장에 갔다.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수영장에 사람들이 진짜 엄청 많다는 거였다. 이 사람들이 다 수영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내 집순이 유전자는 직계존속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같은 유전 형질을 공유하는 내 가족들은 전부 다 수영장의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운동 열심히 하면서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핫플레이스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우리 반은 한 25명 정도 되었다. 우리 반 강사님은 남자분이셨는데, 말씀하시는 게 유치원 선생님 같아서 굉장히 귀여우셨다. 강사님이 안내 사항과 수업 과정을 설명해 주셨는데, 자유형 1개월-배영 1개월-평영 2개월-접영 2개월 순서로 배운다고 했다. 생각보다 더 배우는 데 오래 걸리고 굉장히 긴 호흡으로 배워야 하는구나. 흠…. 성격 급한 나 같은 사람에게 과연 잘 맞을까 걱정이 되었다.


 처음으로 수영장 물에 발을 담갔다. 차가웠다. 준비 운동으로 수영장 레인 한 바퀴를 걸었다. 수영장이 끝으로 갈수록 수심이 깊어지는 구조여서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첫날은 음파 호흡과 물 밖에서 발차기를 연습했다. 물속에서는 음- 하면서 코로 숨을 내쉬고, 물 밖에서는 파- 하고 입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호흡법이 처음에 너무 낯설어서 적응되지 않았다. 직전에 하던 필라테스는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천천히 내뱉었으니, 완전히 반대로 해야 해서 처음에 엄청나게 헷갈렸다. 코만 물에 담그고 음- 할 때는 괜찮았는데 머리를 귀까지 물에 담그고 하니까 귀가 먹먹한 기분이 영 이상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뭐랄까. 진짜 물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수영장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도 음파 호흡이랑 발차기를 연습하겠다고 다음 날 자유 수영을 갔다. 여전히 물 너무 차가웠다. 행여라도 심장마비가 올까 봐 몸을 사리며 천천히 물을 묻혀가며 수영장에 들어갔다.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는 여름인데도 수영장 물이 너무 차가워서 턱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떨었다. 내가 수영장이 너무 춥다고 하자, 수영을 하는 친구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발차기를 더 열심히 하라고.


사진: Unsplashz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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