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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Apr 08. 2024

내겐 너무 어려운, 드라이브

내 거친 운전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내 차

 멍이 자주 든다. 언제 부딪혀서 생긴 건지 샤워하다 보면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을 때가 많다. 아빠를 닮아  키여자들 중에서는 큰 편인데(170cm), 내 머리는 사지의 회전 반경을 30년째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이렇다니 쓸데없이 일관성이 있다. 게다가 나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점이다. 한 번 갔던 길도 잘만 찾아가는 아빠는 당신의 재능을 나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나는 항상 다니는 경로도 길을 ‘찾는다’기보다는 ‘외운 대로’ 움직였다. 그러니 A에서 B로 갔다가, B에서 A로 돌아오려고 하면 길을 못 찾겠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다행히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목적지까지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니 내가 운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걸어가면서도 못 찾는 길을 운전하면서 어떻게 찾을 것이며, 내 몸뚱이의 회전반경도 계산이 안 되는데 자동차의 움직임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차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아니었고, 뚜벅이 생활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서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계속 내 두 발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다행히 학교나 회사가 가까워서 버스로 다닐 수 있거나 아니면 아예 멀어서 자취를 해야 했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운전을 하면 차에서 잠을 잘 수 없으니 굳이 내가 운전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게 되면 면허를 딸 시간이 없다고 해서 운전면허는 대학생 때 다. 가족 중에 운전자 아빠뿐이었고, 아빠는 지금까지 사고 한번 없었던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아빠 차를 탈 때는 항상 편안했고 아빠는 항상 운전을 쉽게 했으니 나는 비록 내가 길치긴 해도 운전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슬프게도 아빠는 나에게 당신의 운전 실력 역시 물려주지 않았다…. 몰랐는데 운전할 때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 미리 차선을 바꿔둔다거나, 저 사람이 끼어들지 안 끼어들지 눈치도 봐야 했다. 운전면허가 비싸기도 했고 재수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한 번에 합격하긴 했지만, 합격을 하고도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왜 합격...?

 이래도 되나? 나 같은 사람에게 면허를 줘도 되는 건가?? 갑자기 우리나라에 교통사고가 그렇게 빈번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설마 치겠어?', '차가 알아서 멈추겠지'하고 건널 때가 가끔 있었는데, 운전자가 나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갑자기 무서워졌다. 어차피 내가 당장 운전하고 다닐 일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취득한 운전면허는 내 지갑 속에 들어가 본래 목적보다는 주민등록증이 없을 때 내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로나 쓰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운전을 하고 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회사가 교통편이 영 좋지 않은 위치에 있어 버스가 하루에 다섯 대 밖에 없는 데다가, 차로 20분 거리인데 버스로는 2시간이 걸렸다. 급하게 일주일 도로 연수를 받고, 차를 계약하고, 급한 대로 아빠 차를 끌고 다녔다. 다소에서 파는 초보운전 자석 스티커는 글씨가 너무 조그마해서, 대문짝만 하게 초보운전 스티커를 만들어서 붙였다. 이 정도면 100m 밖에서도 보이겠지. 근데 스티커를 뒤에만 붙여도 되나? 앞뒤로 붙여야 하지 않나? 골목길에서 다른 차를 마주치면 상대방은 내가 초보운전자인걸 모르잖아. ‘초보운전’이라고 쓰인 팻말이라도 만들어서 조수석에 놨다가 꺼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일단 스티커는 뒤에만 붙이고, 골목길 같은 데는 들어갈 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 가는 길은 시골길인 데다가 산길이라 가는 길과 오는 길이 한 차선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 내가 꾸물거리고 있으면 내 뒤로 줄이 맛집 웨이팅하듯이 밀린다는 것. 나는 규정 속도를 지켜서 가고 있을 뿐인데 급한 용무가 있는 분들은 그런 나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잠깐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섰다가 차들이 빠지고 나면 다시 출발하곤 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위험하게 내 앞으로 끼어드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보복운전의 일종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보복운전인지도 몰라서 타격이 없었다. 보복운전을 보복운전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하다니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담. 그래도 시간이 지나 운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봐 무서워서 노래도 안 틀었는데 이제는 출발할 때 음악부터 튼다. 그렇지만 야근이나 회식을 하고 야간에 운전하는 건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다. 그래서 밤에는 고라니든 사람이든 내 차에 치도 무사할 속도로 주행하고 있다. 그러다 뒤에 차가 오면 먼저 가라고 잠시 섰다가 다시 출발하고.


 중고차를 살지 새 차를 살지 고민하다가 그냥 새 차를 사기로 했다. 나는 차체가 높은 게 좋아서 세단보다는 SUV 모델로 골랐다. 사실 내 취향은 JEEP 랭글러 같은 느낌의 차인데, 나는 오프로드는 무슨 포장된 도로만 다닐 테고 차박보다는 집에서 먹고 자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돈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새 차를 사면 엄청 애지중지하고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데 생각보다 엄청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음, 차가 나왔군!’ 했다. 아,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 좋은 점을 하나 찾았다. 자동차 보험료가 싸진다. 하하. 그래도 보험료만 100만 원이 넘게 나갔지만. 연말정산 때 공제받아서 다행이. 아무튼 그렇게 내 흰색 SUV는 지금 나랑 4~5개월 정도 함께 잘 지내고 있다…, 고 생각하는데 이건 내 차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내 차에 자아가 있다면 나한테 하는 첫마디는 분명히 이럴 테니까. “너 내가 범퍼카인 줄 는 건 아니지?”


 운전을 하고 다니니 확실히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그동안은 버스를 기다리며 길 위에 시간을 뿌렸는데, 지금은 시간 대신 화석 연료를 뿌리며 지구온난화에 일조하고 있다. 지구한테는 전자가 나았겠다. 하지만 여름에는 덜 덥고, 겨울에는 덜 춥게 다닐 수 있는 게 참 편하고 좋긴 하다. 비가 엄청 많이 왔던 작년 여름, 폭우 속을 운전하다가 살짝 울고 싶었다. 지만 여름의 빗길 운전은 겨울의 눈길 운전에 비하면 천사였다. 그렇게 여름부터 겨울까지 계속 긴장하고 여러 위험한 상황을 무사히 지나오면서 점점 내 차와 전우애 비슷한 게 생겼다. 올해가 운전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봄인데, 만개한 벚꽃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마음에 나비가 날아든 것처럼 설렜다. 이래서 사람들이 기분 전환하러 드라이브를 가는구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날리는 벚꽃 잎 속을 지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행복하구나! 세상에. 운전을 하면서 긴장 대신 설렘과 행복을 느끼는 때가 올 줄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점점 운전 익숙해지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 없이 내 차와 함께 훌쩍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교통편이 불편해서 못 갔던 북스테이도 가야지. 그렇게 또 하고 싶었던 게 뭐가 있었는지 떠올리는 시간이 제법 즐겁다.



드라이브를 하며 알게 된

운전은 어렵다.

고속도로 운전이 시내 운전보다 낫다.

비 오는 밤에는 운전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지.


드라이브,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운전이 익숙한 분

돈 많은 분. 기름값 비싸다…


사진: UnsplashJules 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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