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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Apr 01. 2024

내 마음을 챙기는, 명상(2)

나는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책만 보고 명상을 독학할 수 있겠나 싶겠지만 명상도 스마트폰 앱이 있다. 그 말인즉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 종류도 꽤 다양해서 이것저것 무료 체험을 해보다가 취향에 맞는 앱을 결제해서 구독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상은 수면 명상이었는데, 자기 전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수면 명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에 들 수 있었다. 자기 전에 항상 이런저런 생각들이 파고들어 잠들기까지 한참 걸리는 나에게 아주 잘 맞았다. 중학교 때 국선도를 배우 시간이 생각났다. 끝나기 10분 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누워 명상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사실 명상보다는 합법적 낮잠 시간에 가까웠. 그때 참 잘 잤었…. 아무튼, 수면 명상은 내 몸이 따뜻한 물 위에 둥둥 떠있다는 상상과 함께 시작하는데, 당시의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라서 '몸이 어떻게 물에 뜨지?' 하는 의문을 잠시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명상을 하고 있으면 그런 의문이나 생각들을 어느새 내려놓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사실 수면 명상은 끝까지 들은 날보다 중간에 잠들어버린 날이 훨씬 많았다. 하하.

 화가 났을 때 하는 명상도 자주 들었다. 화가 날 때는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주먹을 꾹 세게 쥐었다가 힘을 푸는 걸 반복하라고 했다. 짧은 명상이사무실에서 정말 못 견디겠을 때는 화장실에 가서 주먹을 쥐었다 펴며 심호흡을 하다 왔다. 내가 느끼는 ‘화’라는 감정을 ‘귀찮음’, ‘어처구니없음’, ‘같잖음’, ‘분노’ 등으로 조금 더 세분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차이냐 싶겠지만 나름 효과가 있다. 이건 화가 날 일이 아니라 그냥 귀찮은 일일 뿐이야,라고 나를 다독이게 된달까. 그러면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 OTT 서비스 구독자들은 모두 느끼겠지만 막상 결제해 두면 뭐 볼까 찾다가 다음에 보려고 저장만 고 미루게 되는데, 명상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렇게 되어갔다. 무료 체험 기간에 제일 열심히 했고, 구독하고 초반에 열심히 하다가 결국 시들해져 버렸다는 슬픈 결말.


요즘이야 ‘갑질’과 ‘MZ’가 이슈화되면서 말조심, 행동 조심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정말 조심해야 할 인간들은 정작 개의치 않아 한다는 게 문제다. 오히려 그런 상황을 조롱하듯 말하며 ‘요즘은 이렇게 말하면 잡혀간다지?’, ‘요즘은 그렇게 말하면 MZ들이 싫어하지?’ 하기도 하니까. 하긴 세상이 어디 그리 쉽게 바뀌던가. 그렇게 또 어떤 이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어느 날, 나는 제목부터 ‘이거 나 읽으라고 만든 책인가?’하는 책을 발견한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네가 싸움과 배신 속에서 결국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너를 화나게 만든 상대에게 죽음 이상의 것을 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는 어차피 죽는다. 어떤 식으로든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을 일어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노력 낭비다. - 세네카,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중에서

 어떻게 어차피 죽을 놈한테 힘 빼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고상하게 표현할 수가 있지! 옛날 사람들은 정말이지 어떤 면에서는 경이로울 정도다. 어쨌거나, 맞는 말이다. 정말 화날 때는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사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저놈은 언젠 죽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굳이 내 시간과 열정을 저 인간을 미워하는 데 쓸 필요가 없지. 겨우 저런 거에. 아깝게.

포기와 해탈 사이 어딘가

 화는 외부로도 내부로도 향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건강하지는 않지만 둘 다 겪어본 나로서는 차라리 전자가 나았다. 화가 외부로 향할 때는 분노가 되었지만, 내부로 향하자 우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울은 내가 손쓸 새도 없이 너무나 쉽게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손을 뻗어나갔다. 화가 내부로 향하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상담이나 료를 받길 바란다. 왜냐면 상담과 료를 받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내가 진짜 당장 죽을 것 같을 때 병원을 찾으려고 하면 “예약이 꽉 찼으니 다음 달에 다시 예약하라”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냐면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모든 병이 다 그렇겠지만, 마음의 병은 특히 심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하자.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계획을 세우며 다이어리 한쪽에 만다라트를 그리고 있다. 8개의 구획 중 마음가짐에 대한 칸을 만들어서 화내지 말기, 욕하지 말기, 웃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같은 걸 적어놓는데, 올해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일 뿐 별로 지켜진 적은 없다. 나이와 화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20대 때에 비하면 확실히 화가 줄기는 했다. 왜냐면 일단 화를 낼 체력이 없으니까. 화가 나면… 몸이랑 마음이 힘들거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더 넓어진 이유도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30대의 나는 20대 나보다 좀 더 단단해져서, 어떤 종류의 자극에는 이제 더 이상 상처받거나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단단해지기까지 많은 자극을 받으며 흔들렸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내 감정의 역치를 조금은 높나 보다.

 허물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라. 우리는 사악한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는 사악한 사람들일 뿐이다. - 세네카,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중에서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에서

 사실 나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허물이 많은, 복잡하게 나쁜 사람 중 하나니까. 예전에는 이런 내가 너무도 싫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길 바랐던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했을 뿐.


 난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나는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여전히.
- tvN 드라마 <또 오해영> 중에서


 종영한 지 오래된 드라마인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대사다. 어쩌면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 역시 이해하고 아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소중히 아껴주자. 나는 지금껏 잘 버텨왔고, 잘 견뎌왔으니. 다른 사람이 아닌 나부터 스스로를 잘 챙자. 내가 나를 잘 돌보자. 감정의 역치가 높아질 때까지 받아온 무수한 자극들을 견뎌낸 나를 애틋해하며.


명상을 하며 알게 된 점

나는 내가 챙기자!

명상을 하면 잠이 잘 온다.

화가 날 땐 천천히 호흡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기


명상,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생각이 많아 잠들기까지 오래 걸리는 분

정적이고 고요한 상태가 필요하신 분

내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돌보고 싶은 분


사진: Unsplash의Ravi Pinis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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