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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아빠 Sep 23. 2022

나잇값 하며 살기 위한 노력

(좋은 치료자가 되기 위함을 곁들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오랜 인내를 하기보다는 
눈부신 노력을 하는 편이 쉽다"
<라 브뤼에르>



위 명언은 인내성이 뛰어나지 않은 나에게 나름 위로가 되는 말이다.

독서와 명상이라는 자기 수련을 통해 그릿(GRIT)이라는 단단한 의지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긴 하지만 타고난 기질을 바꾸긴 쉽지 않은 것 같다.


학창 시절의 나는 고2, 고3을 제외하면 주로 벼락치기를 하며 근근이 버텨왔고 그 습관은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도 이어졌다. 학문에 재미를 느끼고 다가가기보다는 시험을 위해 공부를 했던 터라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고 시험이 끝나면 역시나 다시 들쳐보지 않았기에 내 기억은 휘발성이 큰 편이었다.  레지던트라는 직함을 달고 트레이닝을 받을 시점에는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환자들을 치료하기 급급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식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 당시만 해도 전공의들은 주 80시간 이내로만 일하는 현재의 '전공의 특별법'이 없었던 때라 1,2년 차들은 일주일에 100시간을 넘게 일하는 날도 허다했다. 그 고된 시간을 견디고 버티고 지나오니 어느새 전문의가 되어 있었고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고 넓은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륜, 즉 나무의 나이테란 말을 나잇값이라고도 표현했던가. 과거에는 '나잇값을 못한다'라는 숙어가 익숙해서 그랬는지 그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만 느껴지곤 했다. Z세대는 아니지만 M세대로서 아직 젊은 나이라고 우기고 있는 나로서 나잇값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건 다소 건방져 보일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실제로 나이가 들며 더 큰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눈이 트이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었고 나에게는 그 중심에 독서와 명상이 있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여유를 갖고 여러 작가님들의 생각과 통찰력을 흡수하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다른 사람들을 더욱 이롭게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긍심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 과 특성상 단순 약물치료가 아닌 그들의 인생에 개입되는 부분이 필연적이기에 아주 세심하게 잘 다뤄나가야겠다는 마음도 자연스레 먹게 되었다. 




좋은 치료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나를 전문가로서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실력을 바탕으로 한 신뢰이다. 그러기 위해 최신 의학 지견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

근무를 하지 않는 날이면 주중/주말에 관계없이 매번 학회를 듣거나,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며 내재화시키고 틈틈이 정신의학 및 심리학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모두 소화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내 지식을 콩나물 키우기라 생각하고 꾸준히 학문이라는 물을 들이붓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는 다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말이다. 

내 노력의 결실은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전문가로서 의학적 조언을 제시하거나 각 환자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치료적 방향성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런 배경지식들이 큰 도움이 된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지식과 진료 경험이 쌓여 가장 적절한 그 개입의 순간이 개화하듯 나타나게 되고 그럴 때 환자들은 큰 도움을 받는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순간은 계속 반복되어야 효과적이다. 다른 전문의 선생님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웃기다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내용을 더 명확히 전달하고 신뢰성을 높은 목소리로 환자분들이 더욱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보이스 코칭 트레이닝도 세 달 동안 받았다.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기에 코칭 선생님의 바람처럼 열심히 연습과 훈련을 반복하진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경험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도 웬만하면 보람되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탑재하고 널리 이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밑바탕으로 깔고 가련다.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보다 더 밝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2년 전부터 매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의료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교직원들 대상으로 시행하는 심리지원도 하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은 모르게 하라고 하셨던 성경말씀을 어기고, 나름 뿌듯함에 자랑 좀 해봤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부족한 내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진심(眞心)이다.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모자란 미생이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앞으로 더 이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며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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