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살아간 지 어언 10년.
레지던트 4년의 수련 생활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군생활 3년, 그리고 펠로우 시절을 거쳐 페이닥터로서 근무하며 참 많은 내담자들의 삶에 같이 공감하며 진정성 있는 치료 방향을 잡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 중이다.
얼마 전, 한 여성 환자의 진료를 보는 중에 나눈 대화이다.
나 : "혹시 또 궁금하신 건 없으실까요?"
내담자 : "아 근데 하나 또 궁금한 거 있는데 여쭤봐도 돼요?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한 거라서.. "
나 : "네 뭐든 여쭤보세요"
내담자 : "근데 선생님은 안 힘드세요? 정신과 의사로 일하시면 맨날 저처럼 힘든 사람들 이야기만
들으실 텐데.. 왜냐면 저는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저한테 힘든 거를 많이 얘기하고 저는
듣는 편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감정이 너무 동요돼서 같이 눈물이 나고 힘들어서 너무 지치기도
했어요. 선생님도 그러시진 않나 궁금했어요."
뭔가 마음 한편이 찡~ 하니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진료의 마지막 환자였기 때문에 였을까. 비슷한 질문은 지인들에게도 종종 듣는 편인데 그날은 피로감으로 면역계통의 밸런스가 깨져 몸 이곳저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오던 터라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
'혹시 내가 지쳐 보여서 그러셨을까?'
'내가 조금 피곤한 걸로 인해 환자와 면담을 할 때에 부족한 게 있었을까?'
하는 찰나의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며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느낌을 받아 이내 차분히 대답했다.
나 : "음,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정신과 의사들은 레지던트 트레이닝 과정 동안에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배우고 익히거든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환자 분들의 안 좋은 기억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 우울감에 대해 매일 들으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그러나 이는 환자들을 온전히 공감
(empathy) 하기 위해 그들의 삶에 대해 들여다보고 동시에 환자들도 본인이 미처 깨닫지 못한
기억이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깨닫게끔 하는 과정이랍니다. 만약에 공감으로 끝나지 않고 동감
(sympathy)이 되어 그분들의 정서적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면 이렇게 의사생활 하기는
불가능할 테니까요. "
듣고 있던 환자는 아~ 하며 끄덕이셨다.
그렇다. 공감과 동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하루 종일 공감할 순 있지만 상대방의 감정이 나에게 똑같이 전이되어 느끼는 동감은 한 명만으로도 벅차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과 사회에 정실히 필요한 공감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진료를 보다 보면 무슨 말을 해줘야 힘들고 지친 가족과 친구에게 도움이 될지 묻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 질문의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공감은 '말' 그 자체로서 형성되지 않는다.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으로부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일단 '들어야' 한다.
흔히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같은 경험을 공유한 기억으로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는 것을 가정하는데 이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통용된다. 그러나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기에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리 같은 경험을 한 사람끼리 일지라도 공감 형성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회사에서 부장님이 무심코 내던진 한 마디가 K과장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L대리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각 개인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기질적인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무슨 감정을 느끼냐가 천지차이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꼭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다. 특정 사건이나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벤트를 경험하며 느낀 그 사람의 고유 감정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슬픔, 기쁨, 행복, 고통, 즐거움, 외로움, 실망, 좌절, 자책, 후회, 희망 등 수많은 감정을 각각 느껴본 적이 있기에 그 자체로서 공감이 가능한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일단 그 사람이 경험한 일과 함께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을 충분히 들어야 하며 그것 때문이 이렇게 느꼈구나 하는 감정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으로 공감이 시작된다. 상대방이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공포에 질려 본인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할 때에는 그 무서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주며 필요시에는 그 감정을 어느 정도 명확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공감의 시작은 '역지사지'이다.
어떤 말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해가 기본 바탕이 된다면 그 어떤 말이라도 상관없다.
사람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서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들도 주변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격려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도 여러분들과 같이 매일 노력 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