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느 한 친구와 이야기하며 그 친구는 인간이 ‘악’하다 말하였다. 나는 지금 와서 인간이 ‘악’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는 인간이 ‘선’하다 생각하였지만 나의 생각은 오만이었을까. 과거 나의 꿈이 ‘성인군자’라고 우습게 소리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의 말이 ‘언니, 그거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때 웃으면서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 해보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덕 중에서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하고자 신을 만들고 신을 이용했다.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고자 신을 만들고 신을 이용한다. 인간은 창조의 신이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용서’와 ‘이해’가 어렵다. 그러나 시도한다. 어려운 목표이며 목적이지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누군가의 ‘악’한 행동이 누군가의 ‘선’의 말로 희석되고 누군가의 ‘선’이 누군가의 ‘악’한 말로 인해 희석된다. 지속적으로 이는 반복된다. 어떠한 상황에서 나는 우리 가족이 우선이 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자 노력하고 누군가가 저지른 일에 누군가는 움직이고 사과한다. 누구누구의 편이라는 것이 중요할까. 나를 위한 다는 건 나의 가족을 위하는 것일까. 나의 가족은 누구일까.
나는 오늘 생각했다. 미안하지 않을지 고심하며 누군가가 저지른 실수로 누군가는 몸과 마음에 생채기가 생겼다. 그러면서 작은 누군가를 이기고자 누군가는 부단히 노력한다. 그 모습에 역겹다. 누군가가 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겹고 인간이 모두 같아 보인다. 인간은 ‘악’하다.
오래전 엄마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의도를 이해했다. 아빠의 새로운 엄마를 알았고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책임져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으로부터 앞으로의 미래는 암담했으리라. 아빠가 왜 새로운 엄마를 더욱 챙기고 우리에게 그렇게 억척같이 구는지 이해했다. 미안하고 알고 있었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리라. 누군가의 다시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건 미움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의 상황에서는 믿음은 한순간 어그러지는 거울 같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이 베어져 나온다.
외로움.
오늘날에 들어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충족되게 하는 걸까. 어떤 외로움 일까. 내가 기대하는 무언가는 외롭다는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영원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양방향이 아니기에 내가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기분을 타자는 느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또 다른 기분에 휩싸인다. 나는 솔직히 외롭지는 않다. 다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상실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의심, 이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누군가를 움직이고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누군가를 움직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언가를 억지로 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종의 족쇄이며 ‘악’을 만들어낸다. 그러기에 나는 원하는 자유로이 살기를 바란다. 나는 그러한 환경이 좋았고 그럼에도 나는 내 신념을 중요시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다시 한번 더 이 글을 교정하며 내가 생각하는 생각들이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낀다. 다시 나의 신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무언가 모를 일을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악이 상자 안에 담아져 있었던 기분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과시욕과 이기심은 인간을 부추긴다. 꼭 누군가 일부러 이러한 일을 만든 것처럼. 과거나 현재나 솔직함을 좋아하고 솔직함에 긍정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겪으며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인간이 징그럽고 오늘 극심한 스트레스에 관한 폐쇄공포증이 걸렸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엇을 이해하는 정도를 겪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