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가족여행
2015년,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한 해, 큰 아들은 중3, 작은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금요일, 우리 가족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예전엔 가족과 일정을 맞추는 게 어려웠는데, 막상 내가 학생이 되고 나니 오히려 한결 수월했다. 그동안 가족들이 함께 하지 못한 건, 결국 내 핑계였구나.' 일생일대의 기회인지라 우리는 2월 마지막 주와 공휴일인 3월 1일까지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총 10일간의 여행. 몇 차례의 가족회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인도네시아 발리(Bali)를 낙점했다.
"40대 중반의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고 박사 공부를 시작한다?" 과연 이 질문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결국 어떤 의미일까?
사주팔자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초년운에, 남편이 여자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한다.. 무모한(?) 결정을 하는 가장을 둔 가족이 겪을 일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배우자, 자녀, 부모와 형제, 심지어 먼 친척마저도 적잖은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교수라는 꿈은, 학위를 받는데 4, 5년, 그 이후 임용까지 2, 3년을 더 생각하면, 몇 년 모자란 10년짜리 게임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긴 여정을 앞두고 나는 잠시나마 호사로 가족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원하지 않았을 싸움인데, 내가 괜히 끌어들인 것 같아. 미안해. 하지만, 힘 내.'
발리까지는 7시간이 걸렸다. 너무 늦은 밤에 도착한 탓에 발리 남부 도시인 스미냑(Seminyak)에서 하루 머물면서 쉬었다. 호주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식당에서 내놓는 서양 음식도 다양했고, 수준도 나쁘지 않았다. 저녁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인 사테(꼬치요리의 일종)를 먹었다. 매 끼니의 음식이 달콤했다. 몸이 즉시 반응했고, 충전을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가족 4명이 한 줄로 나란히 누워 마사지를 받았다. 나의 소박한 로망 중 하나였는데 이루어졌다. 해변의 석양을 잠시 보고 스미냑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골목길 사이로 힌두교 사원, 로컬 호텔과 식당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도로 벽면의 힙한 감성의 그래비티(Graffiti)가 묘한 풍치를 자아냈다. 숙소에 거의 다다를 즈음, 우리는 <발리 로드(Bali Road)>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비틀즈 멤버의 1969년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을 흉내 낸 작품이다.
길리(Gili).
길리는 발리섬에서 동쪽 편에 있는 세 개의 작은 섬을 일컫는다. 외진 이 섬은 나중에 TV 프로그램 <윤식당(2017)> 덕분에 유명해졌다. 발리 동부의 작은 항구도시 빠당바이(Padangbai)에서 길리까지는 배로 2시간 거리다. 우리를 실은 고속 페리가 롬복 해협( Lombok Strait)을 가로질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짙푸른 바다와 파아란 하늘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남국 바다의 특유의 싱싱한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 있었다. 배는 미끄러지듯 달렸다.
고속 페리의 갑판 위에는 약 30석의 야외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인도양의 바람이 머릿결을 훑고, 태양 에너지를 담뿍 머금은 투명한 햇살이 선글라스를 타고 쏟아져 들어온다. '여기가 바다인지, 구름인지? 비행기 파일럿들도 하늘과 수평선을 착각하는 공간 착시(Spatial Illusion) 현상을 겪는다는데, 이게 그런 느낌일까?' 출력 좋은 스피커에서는 누구나 알만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어깨는 리듬을 타고, 입은 흥얼거렸다. 손에는 빈땅 맥주의 노란 별이 떠 있다. 나는 레몬 빈땅를 두 병을 마셨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길리섬은 거북이가 흔하다. 해변에서 허리 정도 물에 잠길 만큼 들어가다 보면, 10Kg 쌀포대만 한 크기의 거북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물속 풍경에 빠져 있다 보면 어디선가 스텔스기처럼 서너 마리의 거북 떼가 쓰윽 나타난다. 호텔 앞 5분 거리 바다가 주는 경이로움을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즐겼다. 놀다 지치면 쉬었다. 늦은 오후에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석양이 깔리는 섬 둘레를 돌았다. 아침이면, 한 올의 피로감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눈을 떴다. 조식을 먹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호텔 식당 창문 밖 길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조랑말 마차, 따르릉 자전거, 해변 카페에서 차 마시는 여행객, 노상 마사지, 풍경화 같은 잔잔한 바다 등. 길리는 게으름과 낭만, 그 자체였다. 나는 쭉쭉 충전되고 있었다.
늦음 밤엔 해변 카페의 라운지체어에 누워 남반구의 별을 보았다. 저 멀리부터 별들이 하나둘 박혀 들어왔다. 배들은 로프에 몸을 맡기고 줄지어 잠들어 있었다. 아내가 빈땅 맥주 두 캔을 사 왔다.
"다희야, 지금 좋아?, 특별히 젤 좋은 게 뭐야?"
"그냥, 지금 이 자체가 좋고. 남이 해 준 밥을 10일 동안 먹을 수 있어서, 그게 제일 좋아."
우봇에서 남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나름 가격대가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리조트에서 먹고, 수영하고, 우봇 시내를 돌아다녔다. 두 아들은 로컬 시장에서 여행 기념으로 발리 전통 조각과 그림을 샀다. 이어폰을 쓰고 음악 듣는 고릴라와 커다란 선글라스 안경을 쓴 개구리, 이 힙한 친구들이 지금도 두 아들의 책상 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밤, 리조트 뒷골목으로 난 어두운 길을 따라 걸었다. 조명이 없어 더듬더듬 걷다 보니, 어느새 경사진 좁은 계단을 다 내려와 있었다. 계단 끝에는 명상 센터로 보이는 건물이 조용히 서 있었다. 어디선가 곱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려왔고, 지나간 향 냄새가 은은했다. 명상 센터 중앙에는 지름 10m 정도의 둥근 광장이 있었다. 광장 가장자리의 벤치에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둥글고 노오란 달빛 아래 드문드문 놓인 조명이 명상센터 건물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신혼여행 마지막 밤, 그 밤이 스쳐 지나갔다.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 아내와 나는 인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남들 눈치가 너무 보여 취소하려고 했지만, 위약금이 더 커 결국 취소하지 못했다. 태평양 먼바다에 뜬 달을 풍경삼아 나와 아내는 숙소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정말 돌아가기 싫다. 돌아가면 현실인데..., 그렇지?!" 아내가 말했다.
리조트 정원에는 플루메리아(Plumeria) 나무가 많았다. 바깥은 하얗고 안쪽은 노란, 인상적인 꽃잎을 가진 나무다. 꽃잎의 달콤하면서 진한 향기가 베란다를 감돌며 우리의 마지막 밤을 부드럽게 감샀다.
덴파사르 공항 가는 길에 작은 폭포와 힌두사원에 들렀다. ‘이 길이 나를 인도하고, 내 소망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아내와 두 아들도 함께 손 모아 기도해 주었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비행기는 동틀 무렵 활주로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비행기 착륙과 동시에 핸드폰에는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 하나는 회사로부터 마지막 급여 입금 알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