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제 학생에 됐네
3월 2일, 월요일, 박사과정 첫날.
와이셔츠에 넥타이, 검정색 양복 대신
T셔츠에 면바지, 재킷을 입고,
코트 대신 점퍼를 걸치고,
서류 가방 대신에 백팩을 메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자가용 대신 지하철로,
출근이 아닌 등교를 했다.
학교 갈 채비를 막 마치고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이제 학생이 됐네."
캠퍼스를 활짝 열어젖힌 학교 정문을 지나 단과대 본관 건물로 향했다.
'다시는 학교라는 곳은 안 올 줄 알았는데..., '
'20년 가까이 지나서, 이 나이에 다시 이곳을 제 발로 오다니.'
새로 들어선 건물들과 멋들어진 조경수, 드문드문 자리한 조각상을 지나 본관 앞에 도착했다. 아치형 대리석 정문 앞에 서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아란 하늘.
이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머뭇거림은 잠시.
툭툭 털어 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2층 천장부터 길게 매달린 샹들리에, 붉은 물감을 푼 듯한 대리석 바닥, 석판에 새긴 기부자 명단, 황금색 액자에 걸린 <학교를 빛낸 동문들>. 예전의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었다. 웬만한 호텔급 인테리어를 능가했다. 고급스러웠다.
로비 옆 강의실 벽면 게시판 앞에 섰다. 세미나, 책 소개, 외부 강연, 동아리 소개 등이 빼곡했다. 지나가는 몇몇 학생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
'아, 이 친구들 눈에는 내가 교수로 보이는구나.'
그럴 만도 했다.
쑥스러웠다.
개강 첫날, 9시도 되기 전이라 아직 캠퍼스는 한산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강의실 옆 빈 의자에 앉았다. 관심 없는 핸드폰 뉴스를 흘려보다가, 문득 내 모습이 신경 쓰였다. 화장실 겨울 앞을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아내 말이 맞았다. 학교 가기 전에 최대한 젊어 보이도록 점도 빼고, 피부 시술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게, 뭐라도 좀 하고 올걸.'
후회가 밀려왔다.
9시가 되어 대학원 교무과로 향했다. 이름을 말하니 배정된 연구실 키를 건넸다. 4층 연구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책상은 4개. 세 자리는 이미 컴퓨터, 각종 소품, 책 더미로 가득했다. 빈자리 하나에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 비품실에서 갖고 온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물티슈로 책상과 주변을 닦았다.
정돈을 마치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몸의 열기가 빠지며 스르르 눈이 감겼다. 막 호수 바닥 아래로 내려앉으려는 순간, 느닷없이 벨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앞으로 내가 맡게 될 연구조교의 전임자였다. 오후에 인수인계가 가능하냐는 물음에 나는 아무 때나 괜찮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었다.
혼자 점심을 먹고 캠퍼스를 거닐었다. 90년대 함께 대학을 다녔던 동기, 선후배들이 떠올랐다.
논밭 팔며 소까지 처분했다며 "행시 꼭 붙어야 해"라던 친구,
전공이 마음에 안 든다며, 유학 준비하다 떠난 친구,
'항시 웃어라'를 입버릇처럼 되뇌든 운동권 선배,
MT 갈 때마다 기차 대신 차를 끌고 나타나던 오렌지족 친구,
'그때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대학원생들은 어떤 인생을 살까?‘
오후가 되어 연구실에 두 명의 남자 학생이 들어왔다.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LSOM(Logistics, Service and Operation Management) 전공 박사과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들 외에도 마케팅 전공 석사과정 여학생이 한 명 더 있다고 했다. 이미 내 얘기가 퍼졌는지, 두 사람은 나를 "선배님", "선배님"하며 깍듯이 대했다. 뭐든 평범하지 않으면 이런 법이다. 송구스러웠다. 공부하고 쉴 공간, 함께 지낼 사람들까지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박사과정 중 지킬 생활 루틴을 정했다.
첫째, 아침 6시 기상 후 등교
둘째, 저녁 9시까지 공부 후 귀가
셋째, 금연
넷째, 아침 명상 5분
다섯째, 중국어 공부 20분
여섯째, 주말은 휴식
중국어 공부는 늘 마음만 먹고 미뤄온 숙제였다. 이번에 꼭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학위 받을 무렵에 중국어도 하면 1석 2조겠지.' 금연도 깊이 고민했다. 마흔다섯, 수업, 시험, 발표, 논문 등....., 최대한 싱싱한 뇌를 유지해야 했다. 포스트잇에 루틴을 적어 책상 앞에 붙였다.
늦은 오후 무렵, 약속한 시간이 되어 연구조교 전임자를 만났다. 직접 찾아와 준 것도 고마웠고, 나중에 신세를 질지도 몰라 커피를 사 갔다. 20대 중후반의 그늘이라고는 전혀 없는 밝은 성격의 여학생이었다. 묻지도 않은 말들을 친구처럼 쏟아 냈다. 자신의 향후 진로, 교수의 성격, 학교생활 꿀팁, 주의할 점 등. 연구조교는 직장인처럼 출근하며 교수의 수업과 연구를 보조해야 한다. 대신 등록금이 면제되고 매달 100만 원의 연구수당 주어진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억대 연봉을 받던 내가, 이제는 연봉 1,200만 원짜리 비정규직이 되었다.
"180도 뒤바뀌어 버린 현실."
저녁 먹고 돌아오는 길에 허 교수 연구실 앞을 지났다. 개강 첫날엔 안 오신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스치듯 지나갔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없었다.
대학 본관 앞 중앙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바로 옆에는 1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수양버들이 바람결에 물결처럼 흔들렸다. 내 속에서 여러 명의 '나'가 고개를 들었다.
'명훈아, 진짜 잘한 거야. 이제 시작이라고, 잘 될 거야. 파이팅.'
'여긴 대학이야, 너처럼 다 늙어서 오는 데 아니라고.'
'사실 사회에서 도망쳐 온 거잖아, 웃기시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힘껏 빨아 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잠시 머금다 한 호흡으로 길게 뺃었다. 인생 마지막 담배였다. 금연을 다짐했기 때문이다. 반쯤 남은 담배 케이스를 구겨 벤치 옆 휴지통으로 던져 버렸다.
‘새로운 세계로의 행진‘이 시작된 첫날,
꽃길도, 박수도, 응원도 없었다.
힘껏 벤치에서 일어나,
두둥실 뜬 달을 등에 지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