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축제 어느 날, 짱

친구가 학교에 찾아왔다.

by 명연재

"어이쿠, 실장님, 퇴사하신 줄 몰랐습니다. 잘못 걸었네요."

실없는 전화 한 통. 이런 전화조차 가끔은 반갑다. 이제는 그마저도 뚝 끊겼다. 남은 건 가족들의 안부 전화, 조교 업무 연락, 그리고 교무과에서 걸려오는 학사 관련 문의 정도뿐이다.


‘그 많은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퇴사하면 인간관계가 절벽처럼 끊긴다더니, 나라고 별 수 없구나.


따스한 햇살과 일렁이는 봄바람.

대학 축제가 한창이던 5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야, 나 지금 학교로 출발할 거니까, 시간 되면 나와."

사전에 귀띔도 없이 걸려온 전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정문을 나서자, 횡단보도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눈짓과 하이파이브를 나누자, 친구가 말했다.

"야, 내가 저녁 사줄게."


그는 "짱"이다. 이름은 장석, 나보다 한 살 많고, 예전 회사 동료들은 그의 이름 '장'에서 따와 자연스럽게 "짱"이라 불렀다. 싸움을 잘해서도, 리더여서도 아니다. 그냥 이름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짱과 나의 인연은 둘 모두에게 첫 직장이었던 L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우리는 G사 IT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프로젝트 종료 후 각자 소속 부서로 흩어졌다. 이후 닷컴 열풍이 거세던 2000년 초, 짱은 벤처 기업으로 이직했다. 자연스레 연락은 뜸해졌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함은 없었다. 서른 즈음에 만났으니, 벌써 15년 된 친구다.


"뭐 먹고 싶냐? 몸보신 좀 시켜줄게."

잠시 고민하다, DB 과목 교수님이 대학원생들에게 저녁을 사주셨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학교 주변 고깃집은 영 시원찮고, 모처럼 친구가 온 거라 실패 없는 검증된 곳을 골랐다.

짱은 피자를, 나는 빠네를 주문했다. 둥근 빵 안에 담긴 크림 파스타를 다 먹은 뒤, 남은 크림을 빵으로 싹싹 긁어먹었다.


"우리 남편은 주는 대로 잘 먹어서 좋아."

아내가 종종 내 식습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 삶의 원칙은 단순하다. 제 때 끼니만 챙기면 그걸로 충분하고, 사치나 여유는 형편을 봐 가면서 누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해가 지면 캠퍼스는 조용해진다. 캠퍼스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예전 대학가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요즘 학생들은 저녁이면 각자만의 공간으로 빠르게 흩어진다.


나는 자연히 혼밥이 일상이 되었고, 단순한 식습관 탓에 주중 3~4번은 순댓국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M국밥의 푸짐한 양, 한결같은 맛, 빠른 서빙, 무엇보다 착한 가격은, 고강도 긴축모드를 유지해야 하는 내겐 최적의 장소였다. 오후 5시 40분, 내 발걸음은 습관처럼 M국밥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짱이 왔으니까.

니글거리는 빠네로, 그간 몸속에 쌓인 순댓국 기운을 중화해 버렸다.


"할 만하냐?" 짱이 물었다.

"응, 그런대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짱은 쇼핑백 하나를 꺼냈다. 노트북용 백팩이었다.

"공부할 때 필요할 거 같아서."

"오, 고맙다, 짱"


좀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실 상견례 때 허 교수가 석박사학생들을 데리고 갔던 곳이다. 분위기가 고상하고, 특이하게도 플랫화이트(Flat white) 커피를 시그니쳐 메뉴로 파는 가게이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사장은, 자신이 호주에서 오래 살았으며 플랫화이트 커피 하나만큼은 최고라며, 주문한 커피를 내놓았다. 그녀의 자부심처럼 에스프레소 위 크림층은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입술에 묻은 크림을 핥으며 짱이 말했다.

"야, 너 진짜냐? 박사 한다는 말,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고 있잖아."

"근데, 먹고사는 건 되냐?"

"충분하진 않아. 내가 조교로 벌고, 와이프가 좀 더 일해, 그래도 대비는 해 놨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내와 몇 가지 다짐을 나누고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첫째, 3년 안에 학위 취득 요건은 모두 마친다. 무작정 '될 때까지 한다'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둘째, 생활비는 두 아들 학원비를 제외하고 최대한 줄인다. 지금 수입으로는 이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 아빠의 공부로 가족의 일상이 희생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부분은 별도로 마려한 예비비 내에서 충당한다.


짱은 묻지도 않았는데 회사 소식을 전해줬다. 외부에서 40대 후반의 젊은 사장이 부임했고, 석 부사장은 조만간 회사를 떠날 것 같다고, 내가 있던 팀도 실적이 악화되어 해체 수순을 밟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결국 Z라인 사람들 외에는 모두 힘들 거라며, 이 팀장, 김 부장, 우차장도 슬슬 이직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내가 뛰어내린 배는 이미 난파 중이었을까? 아니면 난파될 운명이었을까? 짱의 말에 그나마 내 선택에 대한 마음 한구석 위안을 받았다.


짱은 정문 앞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석양이 남은 캠퍼스를 배경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건강하고, 잘 지내. 또 올게."


짱은 어떤 마음으로 돌아갔을까?

처음엔 그저 얼굴 보고 응원해주고 싶어서 왔겠지.

하지만 돌아갈 땐, '이 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는 걱정과 체념이 들지 않았을까?


잔디밭 위 무대 조명이 석양을 배경 삼아 반짝이고,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캠퍼스를 가득 메웠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 분위기는 더욱 들떠 있었다. '저건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야' 투벅투벅 연구실로 돌아가 문고리를 세게 당겨 문을 닫았다. 바깥세상의 빛과 소리가 내 공간에 침범하는 게 싫었다. 그래도 문틈 사이로 한껏 흥이 오른 무대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며 들어왔다.


공자가 말했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온 건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찾아온 친구들이 학문과 뜻을 함께 하여 기쁘다는 공자의 말과는 달리,

나는 사회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의자에 몸을 맡기고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눈을 감는다.

"휴우우우...."


2평 남짓한 연구실 자리.

이제는 이곳이,

내 한 몸 편히 누일 수 있는,

가장 온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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