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안
일요일 오후, 늘어지는 기분을 떨치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아파트 단지를 따라 연결된 뒷동산으로 향했다. 주민들만 아는 작은 산. 등산로 초입의 낮은 둔덕엔 홍매화, 붉은 철쭉,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이었다.
'이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꽃잎 하나하나가, 마치 어미 새가 물어온 벌레를 먼저 받아먹으려 아우성치는 둥지 속의 새끼들 같았다. 절박하고 생생한 생(生)의 외침이 느껴졌다.
오솔길을 따라 마음 닿는 대로 걷다 산 정상 운동장에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운동을 했다. 경치 좋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초록 나무숲 여기저기서 숨바꼭질하듯 새들이 지저귀었다. 길 끝자락엔 아담한 팔각정이 하나 서 있었다.
'이런 데까지 손길이 미치다니... 대한민국의 행정력, 참 대단하네.'
팔각정에 앉아 텀블러 속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아래로는 아파트 단지, 상업지역, 산업시설 등이 직선 도로를 따라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5월 초의 설익은 태양이 도시를 둘러싼 능선을 따라 뉘엿뉘엿 넘어갔다.
"다희야."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논문... 이번 주에 끝냈어. 교수님 책상 위에 올려뒀어."
"잘했네. 우리 남편. 교수님이 뭐래?"
"수고 많았다면서... '긴 여정이었지?' 그러시더라."
"맞아, 한 고비 넘은 거야. 앞으로도 잘 될 거야."
산에서 내려올 땐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이런 날을 축하해야지. 외식하자."
그날 우리는 동네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으며 작은 성취를 기념했다.
젊은 마리아가 숨이 멎은 예수를 무릎에 안고 바라보는 조각, 피에타.
미켈란젤로는 스물넷에 꼬박 1년을 들여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 처음 보았지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름다움과 성스러움, 그리고 참혹함과 경외감이 뒤엉켜 절규하는 듯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감동? 아니 그 어떤 것 앞에서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에만은 예외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천재 조각가의 납득할만한 작품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피에타를 시도했다. 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직접 부수려 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모든 돌덩어리 안에는 조각상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조각가의 임무이다. “ 미켈란젤로의 말이다.
나에게 논문은 나의 피에타였다. 작년 봄부터 1년 동안, 내 의식은 단 하루도 그것을 잊지 않았다. 최초 구상은 매일 조금씩 수정되며 형체를 갖추어 나갔다. 마침내 30페이지 분량의 영어로 쓴 논문 초안이 완성되었다. 두 부를 출력했다. 한 부는 내 책상에, 또 한 부는 지도교수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간절히 기다려온 순간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목마를 때 마신 냉수 한 컵 같았다. 갈증은 사그라들었지만, 아이스음료의 시원함이나 톡 쏘는 콜라나 맥주의 “킥” 같은 짜릿함은 없었다.
논문을 쓰며 배운 게 하나 있다.
TV에서 리우올림픽 양궁 예선 장면을 보았다. 활시위를 떠난 활은 날아오르다가 정점에서 다시 떨어지면서 포물선을 그렸다. 날아가는 화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 주었는데, 슬로모션 속 화살깃(화살대와 꼬리 부분)은 날아가는 내내 바르르 떨었다.
‘저렇게나 많이 흔들리는구나… 과녁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줄 알았는데.‘
인생도 그렇다. 레이저 광선처럼 일직선으로 “쾅”하고 과녁에 꽂히는 그런 삶이 있을까? 하루하루 흔들리고 떨며, 그 진동 속에서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논문을 책상 위에 올려둔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교수님은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연구실 미팅 날, 일이 터졌다.
“넌 너무 교만해. 네가 아는 것, 네가 한 것에 비해 너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해. 박사과정 학생으로 이걸 인정하지 못하면, 넌 공부할 자격이 없는 거야.”
“넌 본성 자체가 오만해. 그래서 타인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언제나 흔들려고 하는 버릇이 있어. “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석사 학생들, 타 학교 교수님, 외부 직장인 분들도 그 자리에 계셨지만, 상관없으신 듯 교수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넌 뭔가를 보여주어 싶어 안달 난 종류의 인간이야. 너 말이야. 말하거나 행동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봐. 나는 겸손한가?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라. 너는 Nothing이야.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
나의 어떤 태도와 말이 교수님에게 그렇게 거슬렸을까? 어색한 침묵을 뒤로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잊을만하면 회자되는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생각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다.
미팅, 발표, 논문, 연구, 수업 등 내가 드러나는 곳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라는 인간에 관한 교수님의 질책이 있곤 했다. 지금껏 살면서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지적들. 아무리 마흔이 넘은 나이라도 수시로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 제대로 멘탈을 유지할 수가 없다. 모멸감, 좌절, 분노, 당혹감 등으로 무너져 내린 자신을 추스르는데만 몇 날 며칠이 걸리곤 했다.
‘어쩔 수 없네, Nothing이라면 Nothing처럼 살아야지.‘ 나무로 만든 닭 모형 하나를 구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목계지덕(木鷄之德), 어떤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 1869> 속, 외로운 목동 쟝은 쏟아지는 별빛 아래 잠든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저 별들 중 가장 아름답고 반짝이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잠든 거야."
나는 이곳 학교에서,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만나, 함께 별을 헤는 아름다운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나는 지금 Nothing이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