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Y대학병원과의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다. 주제는 심장질환의 중요 위험 지표 중 하나인 CAC(Coronary Artery Calcification), 한국말로는 관상동맥석회화였다. 연구 목표는 CAC와 다양한 심혈관 위험인자들 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것이었다. 참고로, CAC는 심장 주위의 관상동맥 벽에 칼슘이 침착되어 혈관이 단단해지는 현상으로, 그 정도가 심할수록 심장질환의 위험도도 높아진다.
병원 심혈관센터로부터 데이터를 넘겨받은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연구에 뛰어들었다. 메디컬 분석은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였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메디컬 분석, 혹은 헬스 분석(Health Analytics)는 AI 분야에서도 미래의 잠재가능성이 높게 평가되는 영역이다. CAC와 같은 주제로 연구를 진행할 기회는 흔치 않다. 값진 선물이자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한편, 머릿속엔 또 다른 계산이 있었다. ‘CAC 연구는 두어 주 내로 끝내고, 이번 방학에는 SLR 논문을 마무리하자.’ 몇 달째 초안 상태로 머물러 있는 논문이 늘 마음 한켠을 짓눌렸다.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졸업 요건을 하나하나 채워야 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서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내 마음은 간절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지도교수님은 8월 초가 되도록 논문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결국 나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CAC 연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데이터와 씨름하며 2주를 보냈다. 분석 결과를 도출해 정리했지만, 어딘가 찜찜함이 남았다.
‘깔끔하지 않아. 뭔가 더 있을 텐데...’
처음부터 몇몇 변수의 교란효과를 예상했지만, 데이터는 '그것 말고도 뭔가 다른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추가적인 토의 내용을 보태서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저녁 무렵, 허기가 몰려왔다. 얼큰하고 든든한 순댓국이 간절했지만, 후끈한 공기 속 아지랑이를 뚫고 M국밥집까지 가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본관 지하의 카페 겸 간이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면과 김밥 한 줄을 받아 자리를 잡으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훈 형님!"
돌아보니 윤 박사였다. 작년에 학위를 마치고 학교에 남아 교수직을 준비 중인 후배. 100kg은 너끈히 나갈듯한 후덕한 체형에 두 아이의 아버지. 어쩐지 비슷한 삶의 무게를 지닌 그와는, 묘하게 편안한 구석이 있었다.
함께 식사를 마친 뒤, 캠퍼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윤 박사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님, 공부는 잘 되세요?"
"그럭저럭. 이것저것 손은 대는데, 마무리된 게 하나도 없네."
"그래도 이제 2년 차시잖아요. 형님은 워낙 열심히 하시니까 잘 되실 거예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요... 저, 카자흐스탄에 있는 대학 교수직에 지원했어요. 솔직히, 국내는 기회가 너무 없어서요."
그의 말은 현실이었다. 내가 태어난 1971년, 2차 베이비붐 시기인 그 해엔 무려 100만 명이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한 반 정원은 늘 60명이 넘었다. 그런데 작년, 2015년 합계출산율은 1.24명. 한 해 출생아 수는 간신히 44만 명을 넘겼다. 폐교를 걱정해야 할 시대. 시간의 문제일 뿐,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윤 박사의 지금은 어쩌면 몇 년 후의 내 모습일지도 몰랐다. 힘이 쭉 빠졌다.
지난 학기는 논문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지만, 그 와중에도 기억에 남는 추억의 장면이 하나 있다. 3학기 수강 신청을 고민할 때였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대학원생 한 명이 말했다.
“형님, 이런 AI 과목이 있는데요. 같이 수강해 보시는 건 어때요? "
강의계획서를 보니 비정형데이터분석과 응용데이터분석 과목이었다. 전자는 자연어 처리와 머신러닝, 후자는 고급 통계모형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나는 20대 대학원생 두 명을 차에 태우고 함께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일종의 일일 기사 역할을 한 셈이다.
우리 셋은 한 팀을 이뤄 기말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과제는 수강생들 앞에서 각 팀이 선택한 AI 알고리즘을 직접 강의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Boosting 계열의 알고리즘을 선택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세미나실에 모여 토론하며 준비했다. 발표 당일, 나는 붉은 계열 수평 무늬의 T셔츠를 입고 강단에 섰다. 20대 학생들 틈에서 당당하고 싶었다. 지금 그 사진을 보면 촌스러워 웃음이 나지만, 그때만큼은 꽤나 진지했다. 젊고 세련된 교수님은 내 이력에 흥미를 보이셨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왜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지를 물으셨다.
이들 과목을 수강하며, 나는 처음으로 '예측 분석'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되었다. 물론 댓가는 있었다. 나는 매주 주말을 온전히 도서관에서 보내야 했다.
6월부터 시작된 더위는 방학 내내 이어졌고, 역대급 폭염이 연일 계속되었다. CAC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교수님들께 이메일을 보낸 날, 조금 일찍 짐을 챙겨 학교를 나섰다. 학교 앞 교차로를 돌자마자 “조치원 복숭아 10개 만 원”이라는 트럭 노점의 플랭카드가 눈에 띄었다. 매번 그냥 지나쳤지만, 그날은 차를 멈췄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복숭아를 쌓은 20여 개의 나무 상자 중 2/3는 그대로였다.
“더우시죠. 사실 제가 이 길로 자주 다니는데, 요사이 사장님 트럭 자주 봤어요.“
그 말에 사장님은 입가에 미소를 띠시며 복숭아 두 개를 더 챙겨 주셨다. "이건 덤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그날 밤, 점으로 세상을 메우는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가 떠올랐다. 한 전시회에서 그녀가 60시간 동안 엎드려 점을 찍는 모습이라는 설명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정신질환 이력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런 이유로 더욱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야요이 씨, 당신은 왜 점을 찍나요?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요?'
그녀는 말했다. “점은 나를 무(無)로 돌려보낸다. 나는 점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트럭 노점상은 도로 위를 무심히 흘러가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복숭아 더미 10개를 팔려면, 적어도 10번의 만남이 있어야 하루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다. 그중 얼마나 많은 인연이 단순한 흥정이나 무관심으로 스쳐 지나갈까? 인생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수많은 점을 찍는다. 그 점들 중 몇 개는 타인의 점과 연결되어 선이 되고, 선은 다시 면이 된다. 그렇게 누군가는 배우자를 만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삶을 지어간다.
논문, 코스웍, 수강 과목, 메디컬 분석,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매일 찍어 나가는 점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까? 그 속에는 어떤 뜻이 담겨 질까? 아니면, 이런 생각 자체가 애초에 아무 의미 없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지금.
내 인생 언젠가 오늘을 돌아 보며, 절대자인 당신에께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나는 지금, 어떤 점들을 찍어 나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