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설전정(擔雪塡井)
더위가 한풀 꺾여가는 8월 중순, 어느 일요일 오후. 집에만 있으려니 심심하고 답답했다.
"우리 도서관에나 다녀올까?"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도서관으로 향했다. 최근 L기업이 사내 R&D차원에서 만들어서 외부에 개방한 공간이었다.
통유리로 된 벽면을 따라 3층 높이의 서가가 늘어서 있었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꾸며진 도서관 로비에는 신간 도서 진열대, 직사각형 회의용 탁자, 그리고 큼지막한 패밀리 소파가 마련되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니, 바나나 다발처럼 생긴 샹들리에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층고는 어림잡아도 5층은 되어 보였다. 도서관의 시원한 공기와 탁 트인 공간이 주는 개방감 덕분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며 이 책 저 책을 뒤적였다. 그러다 한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다희야... 나, 아무래도 나 안될 거 같아. 교수는."
아내는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웃기지 마. 농담이지?"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내의 얼굴엔 실망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어쩔 줄 몰라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살다 보면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버거워도 혼자 속으로 삼켜야 하거나, 백해무익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기만 하는 그런 말. 말 자체를 줄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 믿기에 나는 말 많이 하는 걸 늘 꺼린다.
그동안 묵묵히 믿고 지지해 준 아내를 실망시킨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도전했다가 조금만 힘들면 꼬리 내리고 도망치는 ‘겁쟁이’라는 꼬리표도,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비아냥 거릴 주변의 시선도 싫었다.
어디 갔나 했는데, 아내는 도서관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돌아와 자리에 앉은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나도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도서관에서 각자 시간을 보냈다. 자리를 털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완전 동남아 날씨네.” “맞아, 기후 온난화로 우리나라 날씨도 완전 변했어. “ 그렇게 빗줄기는 하염없이 쏟아지고 천둥도 찢어질 듯 울었다. 십 분쯤 지났을까, 다시 해가 쨍하게 솟았다. 아스팔트 위의 물기가 금세 걷히기 시작했다.
일주일 지난 일요일 오후, 교회가 갔다가 돌아은 아내는 책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이 부분 한번 읽어 봐." 지난주 일요일 그 일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이미 내 상태를 짐작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지친 표정과 한숨, 탄식하는 혼잣말 등, 아무리 의지로 누르려해도 무의식은 스물스물 발효되면서 겉으로 증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내가 건넨 책은 정호성 시인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라는 산문집이었다. 그중 아내가 짚어 준 부분은 <담설전정(擔雪塡井)>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야기를 마치 수묵화처럼 시작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동네 우물로 갔습니다. 간밤에 눈이 수북이 쌓여 무릎까지 찼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저 눈을 져서 우물을 메우도록 해라."
아버지는 등에 지고 있던 지게를 벗어 아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아들은 마뜩잖은 얼굴로 눈을 퍼다 날랐습니다. 한 짐, 두 짐. 계속해서 눈을 퍼 날랐지만 우물은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눈이 녹아 버려요. 흙을 퍼다 부어야 우물은 메워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눈을 져다 부으라고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지친 아들은 지게를 팽개치고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아들아, 젊을 때 공부란 그런 거란다. 눈으로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공부해라. 아무리 힘들어도 노력엔 끝이 없는 법이란다. 흙을 져다 부으면 우물이 없어지지만, 눈을 져다 부으면 우물은 그대로 있지 않느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읽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걸려 멈추었다. 메우라 해 놓고, 왜 그대로 두라고 하신 걸까?
담설전정은 본래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운다는 뜻의 헛된 노력을 빗대는 사자성어이다. 하지만 정 시인은 이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풀어냈다. 특히 우물 정(井) 자에 대한 해석이 인상 깊었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랬다.
우물은 학생의 '마음'이자 '관점'을 상징한다. 흙으로 메우면 우물은 금세 사라지고, 마음 또한 잃어버린다. 그러나 눈으로 메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은 녹아 사라지되, 우물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학문이란 언제나 마음을 열어 타인의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마음의 중심은 굳건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그동안 내 온몸을 덮고 있던 흙더미가 느껴졌다. '이제 내 마음을 찾자.' 그저 생각을 바꾸었을 뿐인데, 시야와 마음이 한층 넓어진 것 같았다. 바깥세상은 이미 완연한 봄인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겨우내 닫아둔 방문을 계속 열지 않고 있었구나.
박사과정이라는 긴 여정의 고비고비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나는 연일 이어지는 더위에 달리는 체력, 그리고 단조로운 일상과 더딘 성과 앞에서,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 우물도 늘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했는데.... 피로와 불안, 외로움 같은 것들이 어느새 내 우물을 메워버렸구나. 이제 이 흙더미를 치우고, 다시 입구를 열자.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있잖아. 지난주에 한 말... 전부 농담이야. 잘 가고 있어. 그냥 요새 좀 피곤해서."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응, 알아."
이번 주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코스웍 마지막 4학기가 시작된다. 그래, 시작한 지 고작 1년 반 만에 포기라니, 그건 말이 안 되지.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 학기부터는 '담설전정'의 마음으로 다시 살아보자.
저녁을 먹고 마실을 나가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녁노을이 장엄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내일은 마지막 4학기의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