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돌 의식

한 해의 끝자락에서

by 명연재

2015년 12월 마지막 주말, 한 해의 끝자락, 우리는 유명산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팔당대교를 지나 북한강 줄기를 따라 이어진 구불구불한 국도. 창밖엔 겨울 햇살을 머금은 한강이 반짝였고, 라디오에서는 전인권이 부른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1969>가 흘러나왔다.


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 turn.(이 길은 구불구불한 먼 길이야.)

That leads us to who knows where, who knows where.(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길이야.)

But I'm strong strong enough to carry him.(그러나 나는 강해, 그와 함께 갈 수 있을 만큼.)


맑고 고요한 겨울 오후, 그러면서도 쓸쓸한 한 해를 마감하는 풍경이 탁 트이고 거친 호소력 짙은 전인권의 목소리와 어우러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조수석의 아내, 그리고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아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과연 이들이 믿는 만큼 강한 사람일까?'


한 시간 남짓 한적한 도로를 달려 유명산에 도착했다. 주차장엔 차가 몇 대 없었고, 미세먼지 한점 없는 하늘엔 커다란 태양이 다이아몬드처럼 박혀 있었다. 눈이 부셨다. 우리는 등산화로 갈아 신고 각자 배낭을 메고 등산로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 여러 번 들렀지만, 산을 오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어붙은 계곡, 크고 작은 폭포와 연못, 그리고 얼음 아래 숨죽인 채 흐르는 물소리를 품은 겨울산. 호흡은 거칠어지고 땀이 맺힐수록 머리는 맑아진다. 나는 쉬지 않고 걸었다. 마치 바둑기사가 지난 게임을 복기하듯, 올 한 해를 곱씹는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나는 원래 느긋한 사람이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때도 웬만해선 뛰지 않는다. 매사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하고, 느긋하지만 집요하게 실행한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달랐다. 내 마음에 부끄럼이 없는 하루여야만 했다. 홀로 있을 때도 스스로 경계하며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신독(愼獨)'의 마음으로 빈틈없이 착실하게 산을 올랐다. 아내와 아이들도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해발 862m, 유명산 정상.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었다. 기암괴석도 멋들어진 작품 같은 소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듬성듬성 마른 갈대숲 군락과 질척거리는 흙길, 그리고 아담한 전망대뿐인 소박한 봉우리, 그래도 정상은 정상이다. 저무는 태양 아래 사방으로 나지막한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갈대숲을 울타리 삼아 우리 기족은 오붓이 둘러앉아 사발면을 먹었다. 산 정상에서 먹는 즉석라면과 김치는 언제나 정답이며, 때론 그 어떤 만찬보다 위대하다.


겨울 해는 짧았다. 우리는 숙소인 숲속의 집 방향의 다른 등산로를 따라 하산을 서둘렀다. 이 길은 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지 곳곳이 얼어붙어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가 싶더니, 금세 발아래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주변 나무를 감사 안듯 짚으며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가족이 함께였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으스스한 데다 위태로울뻔한 길이었다.


예전에 여행이란, 아무 때나 마음 내 끼면 갈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박사과정을 시작하니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하루라도 졸업을 앞당겨야 한다'는 시간의 압박, '버텨야 한다'는 경제적 스트레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잠시도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안다. 나는 본디 유혹에 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시간 낭비, 불필요한 지출, 상대 비교, 결과에 대한 초초함 등, 내 마음을 동요할 씨앗이 될 만한 것들과는 애초에 거리를 뒀다.


하지만 박사과정 1년 차의 마지막 주말인 오늘만큼은 예외다. 나는 이 날을 가족과 함께 뜻깊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첫 돌 의식'으로 삼고 싶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준비했다. 의식 후 만찬은 삼겹살. 불판 위에서 삼겹살, 김치, 양파, 버섯 등이 자글자글 익었다. 상추 위에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 파김치, 그리고 쌈장을 얹으면, 설명 끝. 한 나절 등산까지 마쳤으니 그 맛이야,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나는 이미 '첫 돌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오늘 하루는 당당히 일탈을 하겠노라 마음먹은 터였다. 삼겹살을 안주로, 준비해 간 막걸리 세 통을 모두 비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이토록 사랑스러운 가족,

단돈 오천 원어치 술,

나는 천국을 만났다.


열기를 식히려 나는 잠시 밖으로 나섰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숲, 고요하고 차디찬 정적 속, 나는 하늘로 하늘로 두둥실 떠 올랐다. 달빛 위에 걸터앉아 구름줄을 잡은 나는 180도 타원궤도를 그리며 이리저리로 달그네를 탔다. 기러기 한 마리가 남쪽으로 날아갔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고, 눈물이 흘렀다.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잠자리를 정리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이었다. 따뜻한 방바닥, 은은한 불빛, 포근한 공기, 그 몽환적이고 평온한 세계 속에서 나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꿈결 속에서 한 해의 해프닝이 스치듯 지나갔다. 행렬의 고유값(Eigenvalue)을 못 풀어서 망친 다변량 과목 중간고사, 문장과 구문을 구분하지 않은 기말 보고서 실수 등. 피식 입꼬리가 올라가기고 하고,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그래 맞아, 계획은 이랬는데 결과는 또 저랬구나...'


다음 날,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두물머리에 들렀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지점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남겼다. 두물머리에서 유명하다는 핫도그를 하나 들고 잔잔한 물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시간이라는 놈.

참으로 무정(無情)하리 만큼 착실하다. 첫 등교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시험, 과제, 보고서, 논문, 미팅 등 달력을 빼곡히 매우든 일정들, 이젠 모두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저 멀리서 팔뚝 크기의 나무 막대기 하나가 떠내려 온다. ‘저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떠밀리듯 가는 존재, 그 나무 친구의 여정이 부디 순탄하기를 빌었다.


집에 돌아와 허 교수님께 편지를 썼다.

지금 제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지만 올 한 해는 교수님을 빼고는 설명이 안된다는 감사의 말과 새해엔 더 큰 축복이 함께하길 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새해 목표를 적었다.


<2016년을 위한 다짐>

마음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나 자신을 믿는다.

겸손, 인내, 평온이라는 목계지덕(木鷄之德)을 늘 가슴에 새긴다.

평생을 바칠 연구 주제를 찾는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을 마친다.

코스웍 2년 차를 무사히 끝마친다.

영어로 강의할 실력을 쌓는다.

중국어를 꾸준히 공부한다.

주 3회 운동, 체중 80kg 유지.

오후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헛된 집착과 시간 낭비하지 않기.


적고 나니, 박사과정의 새해 목표라기보다 바르게 살기 위한 인생 습관처럼 보인다. 저녁을 먹고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 1776>을 집어 들었다. "An inquiry 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탐구). 그는 28세에 이 질문을 품었고, 58세 무렵에 책으로 완성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이끈 질문은 이런 게 아닐까?


한 해가 지났다.

나는 한 살 더 먹은 마흔여섯.

이제 박사과정 2년 차의 첫 페이지를 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