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를 보는 사나이

고인물

by 명연재

어느 정도 세월을 견디며 성장해 온 조직에는 예외 없이 '고인물'이라 불리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대학교의 대학원이라는 조직 또한 별반 풍경이 다르지 않다.


물이 잠시 고이면 발효되어 그윽한 풍미를 더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썩기 시작하면 결국 쓸 수 없게 된다. 건강한 댐은 새로운 물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고, 계절에 따라 적정 수위를 유지하며, 때가 되면 묵은 물은 흘러 나간다. 이것이 바로 댐의 선순환이다.


대학원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신입생이 들어오고, 졸업생은 떠난다. 석사과정은 대부분 취업을 위한 선택이기에 2년, 늦어도 3년이면 졸업하지만, '교수'를 꿈꾸는 박사과정은 사정이 다르다.


그렇다면 대학원에도 고인물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당사자가 되어 대학원 생활 한복판에 서 보니 비로소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구나.’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건 착각이었어.’

지난날 내 삶을 지탱하던 믿음은, 이곳에선 순진한 맹신에 불과했다.


"누구나 한 대 맞기 전까진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권투선수 타이슨의 이 말은, 그릇된 현실 인식에 대해 정곡을 찌른다. '그럴싸하다'는 건 겉보기엔 그럴듯해도 실상은 무언가가 모자라다는 뜻이다. 타이슨의 핵주먹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정신을 번쩍 차렸을지?


교수가 되려면 코스웍 4학기(2년), 종합시험, 졸업논문, 그리고 포닥(Post Doc.)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저명한 저널에 논문을 꾸준히 투고하며, 교수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석사 2년까지 포함하면 대략 10년 가까운 여정이다. 20대에 시작하면 30대 중반, 30대 시작하면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교수 임용 문턱에 다다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 이야기다.


계산을 해봤다.

'지금 내 나이 마흔다섯. 5~6년 뒤 학위를 받아도 이미 오십이 넘기겠네.'

가슴이 답답했다. 가정이 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40대 중반의 이같은 선택은 차짓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인생을 건 도박이 될 수 있다. 나는 무지했고, 철없었으며, 대책 없는 인간이었다.


단순한 산수일 뿐인데 평소는 모른 척하고, 떠오르면 외면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으니까. 알면서도 외면한다는 게 이런 걸까?


누군가 "설마 이걸 예상 못 하고 시작한 거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평균'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동시에 '나는 다를 거야.'라는 착각을 덧씌운다. 그렇게 현실은 왜곡된다.


'코스웍만 끝내고 외부 강의 몇 개 정도 맡으면, 어떻게든 버티면서 살 수는 있겠지'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박사 학위를 따기 전까지는 '시간강사' 신분이라, 과목당 월 70만 원 남짓의 강의료를 받을 뿐이다. 3학점짜리 과목은 주당 3시간, 일반적으로 주중 두 번으로 나누어 강의한다. 운 좋게 세 과목 강의를 맡는다 치면 월 수입은 200만 원가량 된다. 연구하고 논문 쓸 시간과 맞바꾼 이 돈, 여기서 기름값 등 제반 경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정식 교수는 한 학기 보통 2~3과목을 맡지만, 학생 신분으로는 이런 자리조차 얻기 어렵다.


생활고 때문인지, 혹은 다른 사정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박사 졸업을 미룬 채 지방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 일을 이어가는 박사수료생들도 있었다. 1년에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10 년도 더 된 낡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강의 다니는 그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고인물'이다.


순진무구한 해피엔딩에만 익숙했던 나는 매일매일 현실의 디테일 앞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가끔 이력서에서 '박사수료'라는 표현을 본다. 코스웍 4학기와 종합시험을 마쳐야 쓸 수 있는 이 말은, 석사를 포함해 최소 4~5년 이상 학교에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이후, 학위를 왜 포기했는지는 당사자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기회비용만큼이나 기막힌 사연이 있을 거라는 걸 짐작할 뿐이다.


내가 속한 전공의 박사과정 학생은 총 10명 남짓. 그중 나를 포함해 3명이 코스웍을 밟고 있고, 2명은 졸업 후 포닥(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확실치 않다)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5명은 졸업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대림 선배'라 불렸다. 모교 출신이라 교수들조차 조심스레 그를 대했다. 나보다는 한 살 많았고, 학교에는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직업도, 생활도, 학업도 도무지 짐작이 어려운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날씨에 긴팔 셔츠를 입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그 선배와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선배님,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직업? 나? 이미 먹고살만해. 뭐, 이것저것"

낯설었다. 회사와 직함을 서로 밝히며 관계를 시작하는 방식이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 쪽과 관련된 일을 하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정확한 건 끝내 알 수 없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잔치국수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그가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사실 나, 관상 좀 봐. 꽤 진지하게."

'이분 뭐지...' 당황스러움을 억지웃음으로 감췄다.

“자네 눈, 코, 볼, 턱. 관상이 아주 좋아.
전체적인 골상도 비범하고, 특히 눈빛이랑 턱선이 그래.

이건 말이야, 언젠가 제 자리를 만나면 자네는 큰 리더가 될 상이야.
지금 허 교수님보다도 훨씬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어.

자네 주변에 분명 아우라가 있어.”

“에이, 선배님, 무슨 말씀이세요. 전 지금 논문 하나 쓰기도 벅찬 학생이에요.”


그러자 그는 한술 더 떴다.

“좋은 운명을 가진 사람일수록 말이야. 삶이 위기를 맞을라치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안전한 곳으로 몸을 옮기게 되어 있어.
지금 학교는 자네에겐 일종의 피난처 셈이지.
운명이 자넬 보호하고 있는 거야.”


그 옆에 있던 박사과정 여학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맞아요. 대림 선배, 저도 명훈 선배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관상, 아우라, 운명, 보호, 피난처...

기독교 신자인 나에겐 다소 낯설고 거북한 단어들이었지만, 달리 나쁘게 들리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듣고 흘려버렸다.


그즈음,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선배가 있었다. 대학교 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운동을 함께 했던 분으로, 지금은 이 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있었다. 1년 선배는 교수, 나는 학생. 애매한 입장으로 선뜻 연락하려니 망설여졌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볼지도 몰라.'라는 마음에 정중히 메일을 보냈다. 곧바로 놀라움과 반가움이 묻어나는 회신이 왔다.


선배 연구실을 찾았다. 20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우리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서려는 나에게 선배는 조용히 말했다.

"명훈아, 누구도 미래는 몰라.

나도 이 자리에 올 줄 몰랐어.

당시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유학을 갔지만,

난 국내에 남아 공부했어."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뿐이야.

지금 못하면, 미래에도 못 해."

또 연락하마 약속하며 선배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사과정 학생들은 연어처럼 각자의 어도를 오르고 있다. 과연 그중 몇 명이나 마지막 물살을 넘어, 자신만의 '산란'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 또한, 꿈을 찾아 강을 헤쳐 나가는 그 많은 연어들 중 한 마리 일뿐이다.


뜬금없는 한 선배의 말이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야.'

'지금은, 운명이라는 물살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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