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여행
성적 정정 기간이 끝나면 한 학기의 학사 일정은 대체로 마무리된다. 교수님의 수업을 돕는 조교 업무 역시 이쯤에서 끝이 난다. 이제야 비로소, 대학원생의 본격적인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박사를 시작할 때부터 마음속으로 정한 기한이 있었다.
'3년 안에, 학위 취득 요건은 모두 끝낸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많은 이들이 중도 포기하거나,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소요하게 되는 주된 이유, 그 중심엔 단연 '논문'이 있다. 내가 속한 전공의 경우 학술 논문 관련 요건으로,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국제 저널에, 단독 또는 제1저자로, 두 편 이상의 논문 게재가 요구되었다. 논문 투고에 앞서, 지도교수와 사전 합의를 거치는 것도 필수다.
두 달 남짓한 여름방학.
나는 이 시간을 오롯이 논문 연구에 바치기로 다짐했다. 지도교수님께 연구 주제를 상의드렸더니, 내 연구에 꼭 필요한 분이라며 한 사람을 추천해 주셨다.
"장 박사가 괜찮을 거야. 성품도 좋고 연구를 꼼꼼히 하시는 분이야."
장 박사님께 조심스럽게 전화를 드렸다.
연구 기간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도 걸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자, 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음성이 울려왔다.
"내용을 들어 보니 오래 걸릴 수도 있겠네요. 뭐, 같이 한번 해 봅시다."
보름쯤 뒤, 장 박사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자리를 옮겨, 한적한 호프집의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셨다.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한창인 먹자골목, 네온사인 불빛, 고기 굽는 냄새와 피어오르는 연기, 밤하늘의 별들, 그리고 한여름 특유의 후덥지근한 공기. 그 속에서 박사님과 나는 시간을 나누었다.
"회사 끝나고 밤마다 연구하려니 쉽지 않네. 모기가 아주 극성이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하지 말 걸 그랬어. 나야 이제 논문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너털웃음 속 박사님의 얼굴엔 희미한 회한이 스며 있었다.
"난 9년 만에 박사 땄어. 마음고생 꽤 했지.
타이밍이 안 맞아 결국 교수도 못 됐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말이야."
보니까 우리 후배님, 대단한 결심한 거 같아. 내가 도와줄게.
후배님은 꼭 교수 꿈을 이루기 바래."
논문 작성을 위한 나의 첫걸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에만 매달렸다.
한 여름 정오, 태양이 내리꽂는 캠퍼스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연한 맛이라고는 사라진 짙푸르고 억새진 나뭇잎과 잔디, 열기로 피어오르는 교정 내의 아지랑이, 건물 사이를 잇는 지하통로로만 몇몇 사람들이 오갈 뿐, 문이 굳게 닫힌 연구실들은 쉽사리 열릴 기미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명훈, 이번 주 금요일 P컨설팅 동료들 모이기로 했거든. 시간 되면 나와."
망설였다.
'한참 서로 연락도 없어서, 지금 이 모습으로 나가면 다들 날 어떻게 볼까?'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궁금했고, 한동안 보지 못한 얼굴들이 그리웠다. 결국 나가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 너 예전이랑 완전 딴사람 같아, 정말 좋아 보인다!?"
"학교생활이 너한테 딱인가 보다."
"나도 예전에 박사 생각했었는데..., 결국 못 했어, 지금 보니 너 참 부럽다."
그날 모임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인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10여 명이 참석했다. 다들 요즘 밀로 스펙도 좋고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다. 하지만, 술기운이 좀 돌자, 각자만의 녹녹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날 이후 다시 연구에 몰입했다.
7월 한 달간, 연구실을 벗어난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
뭔가가 쌓여 가는 것 같긴 한데, 실제 진척이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단조로운 루틴 속에서,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지금 너 뭐 하고 있는 거야. 논문 하나 나온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지는데?
넌 지금 한 번뿐인 네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지지부지한 성과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7월 말, 허 교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명훈아, 다음 주부터 가족이랑 휴가 좀 다녀와.
일주일은 학교 나오지 마라."
예상치 못한 말씀이었다.
'아, 난 지금 1분 1초가 아까운데..., '
하지만 교수님 뜻이니 따르기로 했다.
아내와 상의해 3박 4일 일정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어릴 적 자랐던 고향이 가고 싶었다.
'그래, 내 고향 바다에 가보자.'
첫날은 고래불 해수욕장, 둘째 날은 옥계 계곡, 마지막 날은 내 태어난 고향 강구항.
아내는 밑반찬, 양념, 식재료까지 바리바리 싸왔다. 짐이 얼마나 많았는지, 꾹꾹 눌러야 자동차 트렁크 문이 겨우 닫혔다.
고래불 해수욕장 근처 조용한 펜션.
중학생 두 아들, 아내, 그리고 나.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고, 저녁엔 바베큐 파티를 즐겼다.
고급 호텔도, 이름난 맛집도 없었지만, 나는 여름 태양 아래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노는 일에 푹 빠진 아이마냥 시간을 보냈다.
옥계 계곡에서 돌아오던 길, 길가의 복숭아 노점이 눈에 띄었다.
"흠이 좀 있어요. 떨이로 파는 거니 싸게 들여 가요."
노르스름하게 잘 익은 복숭아 한 봉지,
물놀이로 출출해진 김에 하나를 집어 베어 물었다.
"와..."
비록 여기저기 흠이 나고 무른 성치 않은 복숭아였지만, 여태껏 먹은 복숭아 중 가장 향긋하고 달았다.
'에덴동산엔 사과, 무릉도원엔 복숭아인가? 이래서 동양 사람들은 천국을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로 상상했구나.'
여행 마지막 날, 내가 태어난 집과 뛰 놀던 신작로, 그리고 강구항 방파제를 찾았다.
지나치면 그저 평범한 시골 어촌 마을이었지만,
아빠의 어린 추억이 깃든 곳이라고 말하자,
가족들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장 공사로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웅장한 방파제 끝,
커다란 테트라포트 위에 앉아,
항구를 오가는 배, 떠다니는 구름, 기러기 떼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로 시야가 탁 트이자, 내 마음도 따라 트였다.
'아, 바다.'
그동안 나는,
'하루라도 빨리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의 씨줄과
‘다시는 패배자가 되지 않겠다'는 집착의 날줄 사이에서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고향의 푸근한 바다와 하늘은, 두 아들과 아내가 나를 얼마나 깊이 믿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