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를 마치며
학교 앞 삼거리.
입소문만 무성할 뿐,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낡고 쇠락한 도시의 한 귀퉁이.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어느 무렵부터인가, 아침마다 그 삼거리를 지날 때면, 마치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반려견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 어김없이 밀려들곤 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연하게 우려낸 치자차 같은 금빛 햇살이 투명하게 차장 안으로 쏟아진다.
나지막한 건물 위로 참새 떼가 태양 속으로 날아오른다.
‘아, 보잘것없던 내가 드디어 이 세계에 받아들여졌구나. 그래, 나는 지금 다시 태어나는 중이야.'
어느덧 개강한 지 석 달.
이번 주면 박사과정 첫 학기의 코스웍이 끝난다.
개강 첫 주. 존경하던 한 교수님께서 온화하고 그윽한 눈빛으로 내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자넨 나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실수하면 안 돼.
여기도 결국 조직이야.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그냥 자네 공부에만 집중하게, 세상 일은 신경 끄고."
그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았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조교 업무를 보고, 시험을 치르고, 발표를 하고, 끼니 때면 밥을 먹고, 무료하면 캠퍼스를 거닐었다. 휴대폰 일정표엔 가족 생일과 집안 행사만 띄엄띄엄 찍혀 있을 뿐, 학사 일정 외엔 별다른 스케줄도 없다. 단조로운 수도원 같은 일상,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매주 목요일은 연구실 미팅 날이다.
그날도 한 주간의 연구 발표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허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미팅 전에 잠깐 따로 보자."
연구실에 들어서니, 평소 무뚝뚝한 교수님이 환하게 웃으며 날 맞아주셨다.
'무슨 일이지? 저렇게 웃는 분이 아닌데...'
속으로 뭔가 짐작은 갔지만, 모른 척 자리에 앉았다.
"연구 성과가 눈에 띄네. 그리고 내 과목에서도 탑(Top)이야. 축하해."
입학 후 처음 듣는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분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감격스러웠다. 허 교수의 얼굴에 스치는 뿌듯한 표정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그가 가르치는 과목만큼은 꼭 1등을 하고 싶었다. 지도교수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 후 대기업을 거쳐 모교로 부임한, 이례적인 경력의 소유자이다. 학문과 산업 현장을 모두 아우르는 실용적인 연구자라는 것이 전공 내의 대체적인 평으로, 내가 그를 지도교수로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날 그는 내 기말 시험 답안지를 직접 리뷰해 주며, 연구에 도움이 될 분석 프로그램 몇 가지도 추천해 주었다. 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학기 동안 지켜봤다. 오늘은 단순히 칭찬이 아니라, 너에 대한 내 감정과 전하고 싶은 당부를 말하고 싶다."
그가 전한 세 가지 말.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평온하라는 것.
논문이 거절되든, 취업이 안 되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둘째, 그는 나를 박사과정 학생으로 받고 나서도, 매 순간 나를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40대 중반,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이 학교에 있는 너를 보면, 생활은 어떻게 하나? 앞날은 괜찮을까? 늘 마음이 쓰인다."
셋째,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친철함"이라 했다.
그리고,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성(性)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공부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단기 기억력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예전 같지 않았지만, 활자화된 개념을 바라보는 현실 감각은 오히려 더 깊고 넓어졌다. 그것은 아마, 오랜 직장 생활에서 축적된 경험과 세월의 힘 덕분일 것이다.
정작 힘들었던 건 공부가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학생 신분의 40대 가장,
줄어든 수입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스트레스,
교수 임용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 길로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
충분히 준비했고 각오도 했지만,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다 보니 마음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나에게 무관심했다. 일부러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처음엔 오히려 그게 편했다.
‘아무도 내 사정을 몰라. 결국 사람은 혼자 남는 거야.'
처음부터 학교에서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또래 대학원생들과는 십수 년의 나이 간극이 있는 데다, 억지로 쌓은 인간관계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이것저것 묻는 학생들에게는, 부서 내의 신입사원을 대하듯 정성껏 답해 주었다.
직장에선 늘 조직의 목표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나를 쥐어짜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닳고, 소진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월급을 받기 위해 시간을 죽이는 삶이 아닌,
시간으로 나를 채워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 나는 마지막 내 숨이 남을 때까지, 공부하며 사는 학자가 되고 싶어.'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공부가 즐거워서 비로소 업(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학자의 삶'이야말로 내게 가장 잘 맞는 길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단순히 직업으로서 교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학자'가 되는 것을 내 인생 목표로 세웠다.
매일같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두세 번 읽다 보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의미가 다가왔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어떤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내 지적 한계가 주는 좌절감으로 얼굴은 후끈 달아 오르고 뒷골은 지끈거렸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느닷없이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했다.
대가(大家)라고 일컬어지는 학자의 글을 읽을 때면,
'이토록 간결한 문장에 이런 깊은 뜻을 담다니....'
뒤늦은 감탄이 절로 터졌다.
나는 지금, 지식 또는 지혜라는 이름의 기쁨을,
내 몸과 마음속에 채워가고 있다.
앞으로 이 기쁨이 어떤 쓸모를 가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성적표가 나왔다. 전 과목 A+.
허 교수에게서도 메일이 도착했다.
"명훈에게,
이번 수업에서 최종 합산 성적 일등이다.
많이 축하한다.
같이 공부할 수 있어 즐거웠다.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은 대학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첫 학기, 기대 이상으로 잘 마무리했다.
이 기쁨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연 순간,
내 기대는 비누 거품처럼 허무하게 꺼져버렸다.
불 꺼진 거실, 뒷정리가 되지 않은 식탁, 닫힌 방문들.
아내와 사춘기 두 아들 사이에 무슨 사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내는 아들과의 다툼에 대해 그간 눌러온 불평을 쏟아냈다.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럴 땐 늘 자격지심이 밀려오고 좌불안석이 된다.
겉으로는 교수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학생이지만,
실상은 형편없는 수입의 초라한 가장일 뿐이다.
아내에게 미안했고, 나는 그저 무력하고 허탈했다.
'그래, 맞아. 이제 겨우 한 학기 끝낸 거야. 지금 샴페인 따위를 터트릴 때가 아니야.'
앞으로 몇 년간 이 기약 없는 생활을 견뎌가야 한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고, 지름길도 없다.
최소 5~6년은 걸릴 길이다.
그걸 알기에,
오늘의 작은 성취는 분명한 현실 앞에서 흔적 없이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내 첫 학기는 끝났다.
전 과목 A+,
연구에 진척이 있다는 지도교수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학자라는 이상'과 '학생 가장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두 아들과 함께 농구를 할 생각이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함께 땀 흘리고 몸으로 부딪치고 시간이 아닐까.
이 작은 노력으로 아내의 마음이 조금은 풀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비록 지금의 현실이 내 선택이지만,
믿고, 기다리고, 노력하며, 견디는 것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수가 없다.
지난주 설교 말씀을 되뇌다 잠이 들었다.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네 마음을 다하여 그를 신뢰하라.)
Lean not on your own understanding.(너의 명철에 의지하지 마라.)
In all ways, acknowledge him, He will make your path straight.(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의 길을 곧게 펴리라.)
- 잠언 3장 5~6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