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시작됐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
나에겐 엄청난 일로 여겨졌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먼저 생각이 아니라 몸이 반응했다.
J를 떠나 이 지역으로 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가게 안은 평소처럼 밝았고,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 서있었다.
계산을 하다가 손이 잠깐 멈췄다.
첫 공황장애를 겪은 날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손에서 시작된 것이 팔로 올라오고, 어깨를 지나
가슴까지 번졌고, 숨이 얕아졌다.
한 번에 숨이 끝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손에 땀이 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무언가 잘못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 그 감각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왜 이러는지,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는지.
하지만 이유를 찾기도 전에
몸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문장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완성된 문장이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전부 흩어졌고,
상대의 표정이 조금만 변해도 나는 그걸 곧바로 알아챘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
답답해하는 표정, 기다리지 못하는 기색들이
그 모든 것들이 과장되어 보였다.
아마 실제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전부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말을 줄이면 실수할 일도 줄어들고, 실수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일 일도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들었고,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났다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고, 말은 들리는데
뜻이 늦게 도착했다.
나는 대답해야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손님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하나씩 늘어났다.
나는 내가 보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숨이 더 가빠지고 가슴이 안쪽에서 무너졌다
나는 버티려고 안간힘을 다해서.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먼저 결정을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천천히 꺾였다.
바닥이 가까워지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누군가는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게 보이지 않았다
소리는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밀려났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119 대원이었다
"괜찮아요?"
그 말이 아주 멀리서 들렸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사람들 앞에서 무너지는 일은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훨씬 더 참혹하고
훨씬 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그 사이의 기억은 끊어져있었다.
들것에 실리는 순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빠르게 스치는 형광등 불빛들
그 장면들이 짧게, 끊어서 남아있다.
차 안은 흔들렸다
구급차였다.
사이렌 소리가 멀게 울렸다가 가까워졌다
눈을 뜬것 같았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천장과, 움직이는 그림자.
내 손목을 누군가가 잡고 있었다
맥을 짚는 손.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나왔다.
"조금만 참으세요."
그 말이 들렸지만 무엇을 참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바뀌어있었다.
하얀 불빛, 멈춰있는 공기, 소독약냄새.
응급실이었다.
"들리세요?"
의사는 보호자가 있는지, 이름, 날짜,
여기가 어딘지를 물었고, 나는 대답을 했지만
내 목소리가 내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일시적인 과호흡이랑 스트레스 반응으로 보입니다.
이제 괜찮아요."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단지 버틸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 것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걸까..
다시 복귀할 수 없는 건가'.
사람은 완전히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또다시 느꼈다.
나는 점점 더 고립되었다
조용해질수록 사람들은 나를 덜 찾았고,
덜 찾을수록 나는 더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투명해졌다.
가장 힘들었던 건
누군가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순간들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계속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지금 표정은 괜찮은지,
지금 말투는 이상하지 않은지,
지금 내가 너무 튀지 않는지.
나는 계속해서 나를 밖에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 나는 '나'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는 무언가'가 되었다.
그 상태로 버티는 데에 하루의 대부분을 썼던 거 같다
나는 점점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피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눈을 피하고
말을 피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피해서
남은 것은 나의 아주 작은 공간과
아주 조용한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조금은 편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라는 걸
정신과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서 있는 내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노력은 해봤다
독서모임도 가보고, 사람을 만나려 해 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하지만 누군가 말을 걸면
나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고
웃어야 할 타이밍을 자꾸 놓치고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향해 말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틈이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매번 느꼈다.
지금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은지,
방금 한 말이 어색하지는 않았는지,
내 표정은 어떤지, 내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나는 계속해서 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확인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법을 잊어갔다.
나는 분명히 그날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라지는게 아니라,숨어있는것에 가까웠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아무 이유 없이 그 장면은 다시 올라왔다.
피를 보지 않아도,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전혀 다른 공간에 있어도 상관없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는 여전히 그 문 안에서
엄마의 핏자국을 청소하고있었고,
아빠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몸은 지금여기에 있는데
감각은 이미 그날로 넘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지금을 잃어버린다
누군가 만나서 대화중에도,길을걷다가도,
집에 혼자 있을때에도.
나는 그안에서 갑자기 빠져나오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조금이 시간이 필요하다
그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말을 듣고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서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게 가장 무서웠다.
고통은 느껴지기라도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늘 뭔가를 확인하려 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손을 쥐어보고, 펴보고, 팔을 긁어보고, 목을 졸라보고 피부를 눌러보면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감각으로 나를 다시 붙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계속
어딘가로 흘러내려갈 것만 같아서.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겉으로는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보이니까.
나는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었고, 말을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나는 계속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헷갈린다.
이게 지금의 나인지,
아니면 아직도 그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인지.
아마 완전히 벗어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것만은 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