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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의 다온 Aug 06. 2023

성인 ADHD 인지행동치료: 일상의 루틴 만들기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즐거운 일로

본격적으로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한 건 3주 차였다.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은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 관리에 대한 집행기능을 높이기 위해 일상의 루틴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간 관리가 잘 되면 자기 조직화가 가능해지고, 충동성의 억제도 보다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교육대학원은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야간에 수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더욱 불규칙해진 것이다. 더군다나 무엇이든 꽂히면 그것에만 집중하고, 마감이 닥쳐서야 뛰어드는 성향으로 인해 애초에 규칙성을 찾아보기 힘든 삶이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할 때 외에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곤 했다. 그러다 보니 멍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변화해야겠다고 다짐해도 지켜지지 않는 계획만 늘어갈 뿐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계획에 압도되어 더욱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 시작이 바로 '일상의 루틴화'이다.


의사 선생님은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일을 만들어보자며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그 질문은 내가 끼니조차도 제때 챙기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잠자는 시각도, 일어나는 시각도 전부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해야 할 일이 많긴 한데 …"라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재미있는 일, 이를테면 가벼운 산책처럼 내가 즐거운 일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


단순한 조언이었지만 내 안에는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지금껏 '규칙적인 생활', '꾸준히 하는 일' 하면 떠오르는 건 억지로라도 해야만 하는 일뿐이었다. '규칙'이라는 단어는 내 안에서 '지루함'이라는 단어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회피해 왔던 것 같다. 반대로 재미를 느끼는 일들은 독으로 여기면서 중독되듯 파고들었다. 그러니 즐겁기는커녕 더 괴롭고 혼란스러웠던 게 아닐까.


회피와 중독의 악순환 속에서 즐거움은 사라지고, 어느새 피폐한 일상만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회복과 행동의 변화를 위한 루틴을 정했다.


1.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산책을 한다.
2. 매일 글을 쓴다.


일찍 일어나기에 도전한 적은 많았지만 실패했던 이유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따라서 내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때 즐겨하는 산책을 루틴으로 정하고, 아침마다 하루 계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또한 매일 브런치에 올릴 글을 작성할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나를 구해주던 일이기 때문이다.




3주 차에 여기까지 글을 작성하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정식 발행을 하는 현재는 4주 차의 마지막 날이다. 2주간 루틴을 실행해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 루틴이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진 못했다. 빼먹은 날도 있었고, 시간도 오차 없이 실행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약 효과와 치료에 대한 의지 덕분인지 루틴을 빼먹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실천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상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1.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겨서 늦게 잠들거나 일정이 없어도 6시~8시 사이에 깬다.
2. 하루가 길어지고 활력이 생겨서 오후나 밤에라도 산책을 한다.
3.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사실 이 정도 변화로 adhd가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 전보다 일상을 활력 있게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약물치료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약을 먹으면서 무기력함과 피로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약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작심삼일을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루틴을 정했을 때는 내가 정말 이걸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살면서 무언가를 꾸준히 했던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물의 도움으로라도 일상의 변화를 느끼고 나니, 앞으로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더 근본적으로는 ADHD 진단을 계기로 그동안 원망해 왔던 나 자신을 용서하면서 신뢰가 회복된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치료를 지속할 힘이 생긴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반복된 실수와 실패로 자책감에 빠져있다면,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를 돌봐주길 바란다. 원인이 무엇이든 근본적인 변화는 나 자신과의 화해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는다. 나의 경험으로 전하는 위로가 그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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